중-서방 사이 '회색지대'퇴색
미국 정부 보장 '특별지위'박탈
추가 제재 예고에 불안감 엄습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대표적 금융 허브인 홍콩이 더는 '특별한 곳'으로 대접받지 못할 것이라는 정치적인 선언이 나왔다. 미국 정부가 29일(현지시각)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강행과 관련해 홍콩이 미국으로부터 누려온 특혜의 일부를 제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홍콩의 특별 지위 박탈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어떤 구체적인 일련의 조처를 내놓을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앞서 미국이 '긴 제재 목록'을 갖고 있다고 경고한 만큼 홍콩에서는 미국 정부가 보장하는 '특별 지위'라는 보호막이 걷힌 이후 닥쳐올 경제 충격에 관한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다.

중국 역시 30일 미국의 강력한 경고 속에서도 홍콩보안법 법제화를 마무리했다. 중국의 사법 질서가 홍콩으로 전면적으로 확대되면서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의 역사적 유산인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역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중국화된 홍콩…"회색지대 사라졌다" = 전문가들은 우선 홍콩보안법 강행과 이에 따른 미국의 홍콩 특별 지위 박탈이 국제사회에서 홍콩의 전략적·상징적 지위에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오랜 홍콩의 번영은 서방과는 상이한 질서의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외부 세계를 잇는 '회색 지대'로서의 매력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따라서 '중국화된 홍콩'이라는 위상 변화는 홍콩 번영의 대전제를 뿌리째 흔드는 요인이다.

중국의 대외 무역 분야에서도 홍콩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많은 세계 기업이 달러 거래의 편리성, 세제 혜택, 규제 위험 회피 등의 다양한 이유로 홍콩을 거쳐 중국에 상품을 수출한다.

'국가안보' 사안에 한정된다고는 하지만 중국의 사법 질서를 홍콩으로 전면 확대하는 홍콩보안법은 홍콩 주권 반환 이후 유지돼온 일국양제 원칙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게 됐다.

◇'골칫덩이' 홍콩에 덜 의존하고 싶어하는 중국 = 전문가들은 홍콩보안법 시행과 미국의 홍콩 특별 지위 박탈이 오늘 당장 대혼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홍콩의 발전에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더군다나 중요한 부분은 홍콩의 명운을 쥔 중국이 홍콩을 더는 '특별한 곳'으로 육성하고 싶어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중국은 홍콩을 분리된 별도의 특수 지역이 아니라 광둥성, 마카오와 한데 묶은 '웨강아오 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의 일부분으로 묶어 육성 중이다. 홍콩의 경제 규모는 이미 2018년 광둥성의 핵심 도시이자 홍콩과 경계를 맞댄 선전에도 추월당했다.

홍콩보안법 제정 바로 전날, 중국 정부는 전격적으로 중국인의 하이난 면세 쇼핑 한도를 기존의 연간 3만 위안에서 10만 위안으로 올리고 면세 대상도 스마트폰 등 전자 제품까지로 대폭 확대했다. 이는 중국 본토 관광객에 크게 의존하던 홍콩 쇼핑 업계에 사살상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홍콩 은행 세컨더리 보이콧 '핵버튼' 누르나 = 일각에서는 미국의 '결심'에 따라서는 홍콩 경제에 비교적 이른 시일 안에 '핵폭탄'에 비교될 수 있는 큰 충격이 닥쳐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가장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것은 미국이 홍콩의 특정 은행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미국 상원이 최근 통과시킨 '홍콩 자치법'에 따라 향후 홍콩 자치권 억압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된 중국 관리와 홍콩 경찰 등과 거래한 은행에도 세컨더리 보이콧이 가해지는 상황이 더욱 우려된다고 전했다.

과거 미국은 2005년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의 북한 정권 계좌를 동결하면서 BDA를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이에 따라 세계 모든 금융 기관이 BDA와 거래를 기피하고 고객들이 대량으로 현금을 인출하는 '뱅크런'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은행은 즉각 파산 위기에 몰렸다.

다만 이 같은 조처는 홍콩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도 막대한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 버튼'을 누를 수 있을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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