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양 새겨진 칠기 흔적 등 발견
가야 연구·유네스코 등재 호재

사적 제341호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가장 온전한 상태로 귀족무덤이 발굴됐다.

특히,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에서 문양이 새겨진 칠기 흔적을 다량 발굴한 것은 처음이어서 제4의 제국으로 불리는 가야사 연구는 물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대성동고분박물관은 3일 오전 11시 발굴현장에서 학술자문회의를 열고 오후 3시 일반 시민에게 공개한다.

박물관은 문화재청 허가와 발굴비 지원으로 지난해 12월 9일부터 북동쪽 평지 3700㎡에서 제10차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해 이달 마무리할 예정이다.

1990년 첫 발굴 이후 유네스코 등재 잠정 목록에 오를 만큼 가치를 인정받는 가야시대 대표 유적인 대성동고분군은 10차 조사를 통해 시굴조사로 확인한 가야시기 목관·목곽·옹관묘 등 70여 기 무덤에서 철기, 청동기, 토기, 칠기, 옥, 유리구슬 등 다양한 유물을 출토했다.

이 가운데 108호분 목곽묘는 유례가 드물 정도로 보존상태가 완벽해 가야사 연구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108호분이 금관가야 지배계층 집단묘역인 데다 고분군 내 입지와 규모 등을 고려하면 귀족 또는 장군 묘로 추정하는 가운데 가야 무덤 90%가 일제강점기부터 도굴된 현실을 고려하면 목곽묘 유구 어깨선 일부만 훼손되고 내부는 온전한 상태로 보존돼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학계 평가다.

▲ 김해 대성동고분군 108호분 목곽묘 발굴 현장 모습.  /김해시
▲ 김해 대성동고분군 108호분 목곽묘 발굴 현장 모습. /김해시

무덤 규모는 길이 494㎝, 너비 346㎝, 깊이 60㎝ 정도로 비슷한 시기 무덤인 대성동 91호(목곽묘) 등과 비교하면 중형에 해당한다. 축조 시기는 출토 토기와 철기 등과 비교해 가야 중심시기인 4세기 초로 추정된다. 목곽묘를 비롯해 당시 실물화폐로 사용한 대형덩이쇠(10×40㎝) 40매와 둥근고리큰칼, 화살촉 등 130여 점 철기와 토기 17점, 청동그릇 1점, 통형동기(筒形銅器) 1점, 청동화살촉 1점, 방추차형 석제품, 대롱옥장식 목걸이와 굽은 옥장식 목걸이 각 1점 등 모두 2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고분군 내 같은 시기 목곽묘 가운데 그리 크지 않은 중소형 목곽묘임에도 북방대륙계 유물인 청동그릇과 왜계 유물인 통형동기, 청동화살촉 등이 출토된 것은 금관가야의 국제적 위상과 교역활동이 그동안 연구보다 훨씬 더 활발했음을 시사한다.

무덤 주인은 동쪽편에 치우친 덩이쇠 위에 놓고 그 위에 다시 화살무더기를 덮은 형태인데 큰 칼과 창 등 다른 무기도 집중적으로 출토돼 장군 또는 귀족무사로 추정된다.

우측편에는 점토를 깔아 관자리를 마련했는데 방추차형석제품과 굽은 옥으로 장식한 목걸이 등으로 보아 여성으로 보인다. 부부를 나란히 한 무덤에 배치했거나 순장자를 나란히 배치한 사례일 수 있어 앞으로 연구 결과에 따라 밝혀지겠지만 어느 쪽이든 목곽묘 가운데 첫 사례여서 학계의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목곽에 옻칠을 한 흔적이 남아 있으며 출토유물 가운데 상태가 온전하지는 않지만 다량의 칠기 목제품을 부장한 것을 확인했다.

칠기는 나무에 조각을 새기고 조개가루 혹은 뼛가루 등으로 메운 후 붉은색 수은주와 옻칠로 마감한 상자·망태기 등이다. 하지만, 목심이 남지 않아 정확한 수량과 형태·구조를 알 수 없고 가야에서 자체 제작한 유물로 추정된다. 무덤 내부에서 문양과 칠기 흔적이 대량으로 출토된 것은 국내에서도 드문 사례고 가야 무덤에서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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