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과 갈등 겪던 네팔인 숨져
계약 중도 해지 권한 사업주에
이주노동자에 불리 "개선해야"

"형이 사고 나기 이틀 전에 문자를 보내왔다. 사장에게 '한 달 동안 휴가를 주면 네팔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는데, 사장이 허가를 안 해줘서 형이 힘들어 했다. 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용허가제 서류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지난 15일 밀양시 한 농장에서 일하던 네팔인 ㄱ(30) 씨가 농장 창고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유서를 남기지 않았다. 강원도에 머물던 ㄱ 씨 친동생이 지난 17일 밀양경찰서에 왔다. 경찰은 이날 유족과 사고 현장에 가보고 다시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사업주(농장 사장) 말에 따르면 ㄱ 씨가 '네팔에 있는 처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면서 힘들어했다고 한다. 대구에 갔다가 네팔에 가겠다고 해서 며칠 전 사업주가 밀양시외버스터미널에 ㄱ 씨를 태워줬는데, 지난 14일 ㄱ 씨가 부산 한 파출소 지구대에 있다고 연락이 와서 다시 ㄱ 씨를 밀양 농장으로 데려오게 됐고, 15일 오전 밀양시내에 나갔다 오후 4시쯤 귀가하니 사고가 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해이주민의 집 대표인 수베디 여거라즈 목사는 "2년 전 충북 청주에서 일어난 사고와 비슷하다.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문제점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업주 얘기를 들어보니, ㄱ 씨가 네팔 가족에게 일이 생겨 본국에 다녀와야겠다고 했는데 사업주가 5월 말 계약이 끝나니 그때 가라고 했고, 몇 달 전부터 ㄱ 씨와 사업주가 갈등을 겪은 듯하다"고 했다.

정확한 경찰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ㄱ 씨 죽음은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허점 탓이라고 수베디 목사는 추정했다. 고용노동부, 사업주, 외국인 노동자 등 관련자 대부분이 이 제도의 문제점을 아는데도 정부가 제대로 개선하지 않고 방치해왔다는 지적도 있다.

시행된 지 17년 된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고용노동부가 인력을 구하지 못한 사업주에게 외국인 노동자를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는 제도다. 주로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의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자 활용된다. 노동자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3년까지 일할 수 있으며, 사업주 도움으로 1년 10개월 연장하면 총 4년 10개월 한국에 체류할 수 있다.

수베디 목사는 "ㄱ 씨는 올해 5월 말 계약이 끝나는데, 계약 끝나기 전에 본국으로 돌아갈 사정이 생겼을 때 법적으로 사업주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사업주 허가를 받았을 경우에만 나중에라도 한국의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가를 받지 않고 본국에 가거나 다른 업체로 가면 불성실한 이력이 남아 재취업할 수 없다. 이 부분을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다. 이에 노동자는 계약한 사업주와 갈등이 생길 경우 자유롭게 업체 변경을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양산지청 관계자는 "(노동자 또는 사업주가) 계약 중도 해지를 원하면 고용 변동 신고를 해야 하는데, 신고 주체인 사업주가 사인(허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임금 체불과 폭행 사례는 사업주 사인(허가) 없이도 노동자가 계약을 중도 해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베디 목사는 "이번 사고의 경우 노동자나 사업주가 현장의 어려운 문제들을 고용노동부에 알려서 해결하려 노력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노동자를 사업자에게 전적으로 종속시켜 놓은 고용허가제도의 반인권성과 열악한 노동 환경이 극단적인 선택을 낳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남이주민센터·김해이주민의 집은 2017년 네팔인 사망 사고가 났을 때 "고용허가제가 사업장 변경(사유·횟수·기간 등)을 과도하게 제한해 이주노동자들이 해당 사업장에서 문제가 생겨도 다른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정부가 이주민 관련 법제와 정책들을 과감히 개선하고 올바르게 추진해갈 정책 컨트롤타워를 구성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진명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는 "법과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도 실제 현장에서 잘 가동되지 않는 부분들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인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사업주 처벌과 교육을 강화하고, 근로 감독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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