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버리고 떠난 뉴질랜드
귀국을 열흘 남짓 앞두고 행한
인도 비파사나 명상 수행 기록

젊은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건 흐뭇한 일이다.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는 과정이라면 더욱 그렇다.

2018년 4월 한 젊은 친구가 뉴질랜드로 떠났다. 진주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때 그는 20대 초반이었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마치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한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아는 건 많은데, 실제로 해본 일은 별로 없는 아이 말이다.

그가 박채린(29)이다. 자신을 기록자와 수집가로 정의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살았다. <경남도민일보>에 러시아와 이탈리아 여행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문득 뉴질랜드로 떠난다고 했다. 외국을 여행 중인 젊은이들에게 취업 자격을 주는 '워킹 홀리데이'를 통해서다.

◇모든 고통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그가 최근 <사적인 파라다이스(PRIVATE PARADISE)>란 독립출판물을 냈다. 뉴질랜드에서 보낸 1년을 정리한 책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뉴질랜드에서 명상을 하며 보낸 마지막 11일, 2019년 3월 20일 수요일에서 31일 오전까지를 세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이 기간에 체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그가 뉴질랜드에서 겪은 어떤 변화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걸었다고 했다. 뉴질랜드로 떠난 건 학창 시절 아르바이트 한 번 못해본 그가 삶에서 시도한 가장 큰 모험이었고,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었다.

▲ 저자 박채린이 뉴질랜드에서 담아온 고요한 풍경. /박채린
▲ 저자 박채린이 뉴질랜드에서 담아온 고요한 풍경. /박채린

"모험을 위해 직장을 포기했고 가족의 원망을 무릅썼다. 너 미쳤니, 갑자기 뉴질랜드가 무슨 소리니, 지금 일 그만두고 1년씩이나 떠나 있으면 도대체 뭐하면서 먹고살 거니, 등등. 그렇지만, 나는 인생을 걸고 이 모험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10쪽)

드문드문 SNS를 통해 뉴질랜드에서 그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고 있었지만, 아마도 실제는 긴 비움의 과정이었을 테다. 변화는 사실 기존의 것을 그만두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우고 나면 남는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다.

"나는 여전히 답답하고 용기없는 사람이구나. 스스로에 대해 더욱 편하게 드러내고 싶은데 무언가 고질적으로 막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행복하면서도 슬프고 황홀하면서도 불안했다. (중략)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느꼈던 불안과 답답함은 어쩐지 조금 더 지독해지는 것 같았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마음속 물음에 대한 명료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17∼18쪽)

◇비우고서야 보이는 것들

그런 그가 뉴질랜드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일정이 10일 과정으로 온 종일 진행되는 비파사나 명상 코스다.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호흡으로 돌아오려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른다. 이곳에 머무는 235시간 중 70시간을 사용했으니 남은 시간도 어떻게든 잘 흘러가겠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현재에 머무르려는 태도가 이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다. 인내하고 수용하기." (88쪽)

▲ 박채린 작 <사적인 파라다이스>.
▲ 박채린 작 <사적인 파라다이스>.

비파사나는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명상법이다. 코로 드나드는 호흡을 관찰하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얻은 평정심은 불행이나 슬픔뿐 아니라 기쁨과 행복까지도 덤덤히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모험과 새로운 시작으로 차곡차곡 쌓인 스물아홉의 시간을 건너가며 애송이였던 내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유리 온실을 박차고 나가 인생 실험을 떠나고, 삶을 바꾸기 위한 모험을 감수하고, 외부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오롯이 내 안에 있는 호흡과 감각으로 평온을 획득하는 법을 배우고, 홀로 항해를 떠나기까지 많은 고마운 사람들과, 장소, 시간이 있었다." (209쪽)

한국으로 돌아온 박채린은 여전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살고 있다. 하지만, 어른스러운 태도 뒤에 숨어 있던 아이는 부쩍 자라 청춘의 불안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어떤 일이 나와 맞고 안 맞는지는 아무리 걱정스러워도 몸소 경험해보는 수밖에 없다. 해보지 않고 못 하겠다고 하는 것과 하고 나서 결정하는 것은 천지 차이다." (191쪽) 그의 청춘이 부럽다.

독립출판. 210쪽.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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