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받았으나 계약자 잠적
땅 주인은 계약 해제됐다 판단
재판부 "배임 고의 없었다"

땅을 팔기로 계약하고 일부 돈을 받았지만 기한이 지나도록 잔금을 다 받지 못하자 계약이 끝났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겼더라도 '배임'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ㄱ(60) 씨는 지난 2009년 4월 고성군 동해면 땅을 3억 5000만 원에 ㄴ 씨 측에 팔겠다고 계약했다. 계약을 맺은 날 10%(3500만 원) 계약금을 받고, 나머지 잔금을 7월에 받겠다고 했다. 땅은 ㄱ 씨가 해양레저사업을 준비하다 포기한 곳이었다. 당시 ㄴ 씨는 이를 알고, ㄱ 씨와 알고 지내던 대리인을 내세워 계약을 맺었다. ㄴ 씨가 당시 신용이 나빴던 점도 대리인을 세운 이유였다.

ㄱ 씨는 그해 6월 대리인으로부터 6500만 원을 더 받았다. 대리인이 해양레저사업에 필요한 공유수면 점유와 사용계약서를 요구했고, ㄱ 씨는 잔금 중 6500만 원을 먼저 지급하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후 ㄴ 씨는 지급 날짜가 지나도록 나머지 잔금(2억 5000만 원)을 주지 않았다. 2013년 3월 고성군으로부터 전답으로 등록된 땅에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지처분명령 등 불이익 처분이 있을 수 있다고 고지받은 ㄱ 씨는 ㄴ 씨로부터 4년 가까이 아무런 연락이 없자, 2013년 12월과 2017년 2월 다른 사람에게 땅 소유권을 넘겼다.

ㄴ 씨는 사기로 했던 땅이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는 것을 2015년 들어 알게 됐고, ㄱ 씨에게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ㄱ 씨는 돌려주지 않았다.

ㄴ 씨는 ㄱ 씨가 계약금과 중도금 등 1억 원을 얻고, 자신에게 그만큼 손해를 끼쳤다며 배임(형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ㄱ 씨는 오랫동안 연락이 없어 계약이 해제됐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에게 땅을 넘겼으니 배임의 고의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 ㄴ 씨가 계약 당사자인 줄 몰랐다고 했다.

창원지방법원 형사5단독(김주석 부장판사)은 ㄱ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ㄱ 씨는 잔금을 주지 않은 채 장기간 연락을 하지 않은 점에 따라 매매계약이 해제됐다고 판단해 다른 사람에게 소유권을 넘겨줬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에 따라 계약이 적법하게 해제됐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배임죄는 명백한 고의성이 있을 때만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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