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 곳곳서 드러난 외국인 배척
오스카조차 백인 일색 벗어던졌는데

"오스카는 로컬(지역 시상식)이잖아"라는 봉준호 감독의 말 한마디가 분명히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차지했다. '황색 감독'의 말 한마디에 얼굴이 화끈한 '백색 아카데미'는 국제 영화 시상식으로 거듭나고자 놀라운 변화를 택했다. 봉준호 감독은 줄곧 한국 영화가 국외 시장에 과감히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언어 장벽(이라 쓰고 백인 장벽이라 읽음)'으로 꼽았고, 상을 받은 후에는 "그 장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시점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빨리 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생충>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말처럼 "뭔가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였"음은 분명하다. 우리는 백인·언어 장벽을 깬 황색 돌풍에 환호하고 있다.

"한국말 잘 못해요"라는 중국인 노동자 말 한마디에 한국인은 오감에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지난 3일 한 중국인 노동자가 춘제 연휴를 보내고 인천공항에 입국했지만,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경기도 한 중소기업에서 2년간 일한 고용허가 제조업 노동자다. 사측은 그가 회사 근처에 얼씬도 못하도록 공항에 내리는 시간을 확인하고 전화로 "14일 후 증상이 없으면 연락을 해라"고 통보했다. 모텔에서도, 교회에서도 진입 장벽을 느낀 그는 한국 내 중국인과 연락이 닿고서야 두 다리 펼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350㎞ 떨어진 창원의 이주민센터에서 격리 생활을 하고 있으며, 현재 의심 증상은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우리 사회 곳곳에 장벽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백인 우월주의, 아시아계 배척은 비단 아카데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감염병이 의심되면 질병관리본부 전화상담실(1339)에 연락하게 돼 있지만, 한국어와 영어로 녹음된 음성만 나와 정작 중국인은 알아들을 수 없다. 중국어로 번역된 신종 코로나 지침도 뒤늦게 만들어졌지만 이를 중국 교민에게 일일이 전달하는 체계는 없다. 자국민 보호,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급급한 나머지 회사로부터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민에 대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중국을 다녀오지 않은 교민은 한국인 상황과 다름없음에도 취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이전까지 아카데미가 글로벌한 시상식 면모를 갖추려 띄엄띄엄 아시아 작품에 상을 주며 들러리 세웠듯, 우리 역시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면 찾는 보조 인물쯤으로 이주민을 대하는 건 아닐까. 아카데미가 백인 일색의 편협한 시상식이란 오명을 벗고 '시의적절한 역사를' 쓰고 있다. 몇 년을 한국에서 지낸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 출입을 꺼리는 우리는 언제쯤 스스로 장벽을 깰 수 있을까.

창원의 이주민센터에서 격리 생활 중인 중국인이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을 들었는지 궁금해진다. 14일 강제 격리 시간이 지난 후 "사장님, 나 괜찮아요" 이 말밖에 할 수 없을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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