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치는 바다에서 암초가 드러난다
지금은 바이러스 같은 것들 걸러낼 때

하필 이런 때 감기에 걸렸다. 마스크를 쓰고 나가지만 길에서 몇 번 콜록거리기만 해도 마주 오던 사람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진다. 괜히 미안하다. 걱정을 보태 주었을까봐 '그냥 감기예요'라고 일일이 설명해주고 싶다.

남쪽 지역 일상은 아직 대체로 차분한 모습이지만 불안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마트에서도 약국에서도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 곳곳에서 품귀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역 내 크고 작은 행사는 연기되거나 취소되고 있다. 초중고교 개학이 겹쳤으니 학부모들은 더욱 애가 탈 터. 이 와중에 옆동네에 확진자가 숨어있다더라, 뒷동네에 감염자가 다녀갔다더라, 가짜뉴스가 창궐한다. 이 악랄한 것들을 걸러줄 마스크는 어디 없나.

관련 뉴스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 압도돼 집안에서도 나까지 쪼그라드는 느낌이다.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한 예능 방송에서 멈췄다. 몇 가지 단서만으로 음치와 정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진짜 직업도, 나이도 숨기고 그럴싸하게 꾸며낸 인물로 위장한 출연자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노래와 거리가 먼 중년 아저씨로만 보이는데 록 가수 뺨치게 멋진 노래 실력을 선보이기도 하고, 한눈에 봐도 아이돌 연습생 같은 어느 20대는 정해진 음정 박자를 떠난 자유로운 노래로 발등을 찍기도 한다. 한정된 정보만으로 사람과 상황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지, 확실하게 배우게 된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다. 진짜 정보와 거짓 선동이 뒤섞여 흘러 다니고, 가짜를 골라내는 데에 근거가 될만한 것들마저 참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 뒤에 교묘히 숨긴 잔혹한 폭력과 그릇된 욕심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평온한 시절에는 더 그렇다. 파도가 잔잔한 바다에선 수면 바로 아래 거대한 암초가 있어도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는 것처럼.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때에 '내 편'이 뚜렷해진다.

두 눈 크게 뜨고 관찰하자. 그리고 기억하자. 겉으로는 공공의 알 권리를 위한다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정보를 흘리고 제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언론사가 어디인지, 우리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외치면서 과장된 언어로 분노와 공포를 조장하고 한 자리를 차지하려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 습격을 피해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승객들까지 위험으로 몰아넣은 것도 그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출입문을 걸어잠그고 자기 살길만 도모하던 버스회사 상무가 좀비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우린 똑똑히 보았다.(그리고 그는 결국 좀비가 돼 기차에서 추락한다.)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오늘도 방송이며 신문, SNS, 행사장에 얼굴 비치기 바쁜 저 인물들 중에 앞으로 4년간 국민의 대표로 일할 자와 국민의 왕으로 군림하려들 자가 섞여있다. 진짜 국민의 편이 아닌 '바이러스보다 더 바이러스 같은 것들'을 가려내기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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