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정한 작품 속 배경따라
증산·산서동·물금들녘 둘러보니
자연·삶 엉긴 시골 모습 반가워

양산시 물금읍을 돌아보기에 좋은 책자를 하나 찾았습니다. 양산에 있는 이헌수 씨가 쓴 <문학 속 양산 이야기>(시루문화방아터, 2019년 11월)입니다. 지난해 '다함께 깔깔깔'이란 코리아문화수도 지역문화활동가 지원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제작한 것이랍니다. 책자에는 소설가 김정한(1908~1996)의 작품 속 양산 물금읍 마을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 물금역 주변 서부마을 풍경.
▲ 물금역 주변 서부마을 풍경.

◇증산에 오르다

김정한은 <사하촌>으로 유명하죠. 일제강점기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을 다룬 단편소설입니다. 그가 쓴 작품은 주로 양산을 지나 부산에 이르는 낙동강 하류 지역이 배경으로 나옵니다. 이 중에 양산 물금과 관련이 있는 게 <그물>(문학건설, 1932년), <수라도>(월간문학, 1969년), <산서동 뒷이야기>(창조. 1971년), <사밧재>(현대문학, 1971년)입니다. 아마 더 있을 것도 같은데 일단 이 책자에는 이것만 다루고 있습니다.

낙동강변에 있는 황산공원을 제일 먼저 찾았습니다. 엄청나게 넓은 공원입니다. 캠핑장도 있고, 야구장, 배구장, 농구장, 족구장 등 운동시설도 많네요. 선착장도 있습니다. 여기만 슬슬 돌아다녀도 한나절이 다 갈 것 같네요. 캠핑장 쪽 입구에서 물금 쪽을 바라보면 산이 하나 있습니다. 증산(133m)입니다. 물금 신도시 안에 있는 유일한 산이라고 할까요. 신도시가 생기기 전에는 들판 한가운데 우뚝하니 도드라져 보였겠습니다. 그리 높지는 않은데, 무언가 오래전부터 사람의 흔적을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신비한 느낌이 있습니다.

"133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증산이란 어엿한 이름이 있고, 이 산에 기대어 여러 마을이 안겨 있습니다. (중략) 증산에는 정유재란에 쌓았다는 왜성이 있고, 물금을 휘돌아 볼 수 있는 둘레길도 있습니다. 역사의 무게와 삶의 장면이 엉겨 있는 곳이라 언덕이라 얕잡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6쪽)

사실 양산 물금 하면 아파트 숲으로 이뤄진 신도시가 먼저 떠오릅니다. 근데 증산 둘레길을 돌다가 보이는 풍경은 영락없는 시골입니다. 이게 원래 물금이구나 싶네요. 물론 낙동강 반대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바로 아파트 숲이 보입니다.

▲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의 배경인 남부마을.
▲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의 배경인 남부마을.

◇산비탈 남부마을 이야기

황산공원 방향으로 증산 산비탈에 남부마을이 있습니다. 이 남부마을이 소설 <산서동 뒷이야기>의 배경입니다. 일제강점기 농민봉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지금 남부마을이 소설 속 산서동입니다. 소설 시작 부분에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경부선을 타 볼라치면 기차가 별안간 꽥- 소리를 내지르며 마을 턱받이를 마구 스쳐가는 데가 몇 군데가 있다. (중략) 낙동강 하류에 있는 ㅁ 역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산서동이란, 벼랑에 매달린 듯한 작은 마을도, 바로 그러한 곳이다. 그다지 많찮은 집들이 흡사 층층이 붙어 있기 때문에 차창에서 보면 거의 모든 집 안방이나 뜨락들이 손에 잡힐 듯 똑똑히 들여다보인다."

벼랑 같은 산비탈에 사는 사람들이라 이웃 마을에서는 벼랑마을, 명매기마을이라고 불렀습니다. 명매기는 제비를 말합니다. 제비집을 보셨나요? 보통 천장 아래 집을 짓잖아요. 산서동 집들이 꼭 그런 제비집 같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게 집이 얼마 없습니다. 대신 크고 번듯한 카페 건물이 두 개나 있습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그래도 옛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도 합니다.

▲ 양산시 물금읍 황산공원. 왼쪽에 보이는 산이 증산이다.
▲ 양산시 물금읍 황산공원. 왼쪽에 보이는 산이 증산이다.

◇물금역에서

산서동(남부마을) 앞으로는 지금도 기차가 지납니다. 앞에 인용한 소설 내용 중에 'ㅁ 역'은 물금역을 말합니다. 1905년 일제가 경부선을 개통할 때 함께 시작된 역입니다. 지금도 계속 운영되고 있습니다. KTX 정차역은 아니고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만 다닙니다. 열차 시간표를 보니 부산역에서 출발해 서울 방향으로 가는 기차가 제일 많네요. 그리고 목포, 보성, 순천 등 전라도 쪽으로 가는 기차도 있습니다.

역사 앞 안내판에 물금역 역사와 함께 물금이란 지명 유래에 대해서도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한자로 '勿禁'이네요. 무언가 강하게 '하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있네요.

신라와 가락국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할 때 물금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고 자유롭게 왕래하자고 했다는 게 하나고요. 이 일대가 낙동강 습지로 물난리가 많이 났기에 수해가 없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물을 금한다'는 뜻을 담았다는 것도 있습니다.

▲ 증산 둘레길을 걷는 중 왼쪽에 신도시 아파트가 보인다.
▲ 증산 둘레길을 걷는 중 왼쪽에 신도시 아파트가 보인다.

◇상리마을에서만난 사람

물금역에서 다시 증산리 들판을 낀 상리마을로 향합니다. 상리마을 앞으로 들판이 넓습니다. 물금 신도시에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은데, 사실은 이 들판이 원래의 물금이었겠죠.

"양산천이 낙동강을 만나는 자리에 펼쳐진 곳이 물금들녘입니다. 지금은 아파트가 빼곡하게 들어서 여느 신도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나 예전에는 꽤 너른 들녘이었습니다. 아파트에 논밭을 내어주고 지금은 상리마을과 남평마을, 서들마을로 둘러싸인 남평들녘만이 농지로 겨우 남아 있습니다." (51쪽)

우연하게도 상리마을에서 책자를 만든 이헌수 씨를 만났습니다. 상리마을을 거니는데 책자를 발간한 시루문화방아터란 곳이 마을 안에 있더라고요. 시루문화방아터 대표가 이헌수 씨였고요. 지난해 마을 분들과 함께 꾸민 공간이랍니다. 지금은 마을 사랑방도 되고, 문화센터도 되고 합니다. 그렇다고 관에서 운영하는 건 아니고요. 이 씨처럼 지역사와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함께 운영하는 거죠.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이 씨의 본업은 고등학교 국어교사입니다.

언제든 이 공간을 찾으면 이 씨에게서 조곤조곤 지역 역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음, 동네 사학자라고 해야 할까요. 어느 지역이든 이 씨 같은 분들이 많이 계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분에 양산 물금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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