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양당 체제 '적대적 공생'
정책보다 권력 지키기 몰두
기득권 타파 장치 논의 부상
"총선 물갈이부터"목소리도

국회에 대한 평가에는 항상 '최악'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지만 20대 국회에 대한 국민 평가는 더 야박합니다. 변화와 쇄신에 대한 기대가 더 컸지만 국회는 정당과 기득권 논리에 파묻혀 개혁의 흐름에 역행하고 국민 요구를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이념 전쟁터에 국민을 끌어들여 여론을 양극화하고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4월 15일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석 달가량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20대 국회를 평가하고 21대 국회에서 요구되는 쇄신에 대한 기대를 짚어봅니다.

국회선진화법이 난타 당하고 있다. 20대 국회를 지금 같은 몰골로 망가뜨린 주범이라는 것이다. 전직 국회의장인 정세균 새 국무총리 후보자의 말이 그랬다.

그는 지난 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선진화법이 19대 국회에서 '동물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었고, 20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로 만든 원인 중 하나"라며 "국회선진화법만 지키다 보면 국회가 국정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된다"고 했다.

◇국회선진화법이 원흉? = 근거는 충분하다. 2012년 국회의 각종 폐단을 뜯어고치고자 도입된 국회선진화법(국회법 개정안)의 핵심인 신속처리안건 지정(패스트트랙)과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제도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정 정당의 반대로 중요 법안이 고사하는 것을 막기 위한 패스트트랙이지만 상임위원회 심의(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90일) 등 본회의 표결까지 최장 330일 이상 걸린다. 또 지난해 4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의 신속처리안건 지정 과정에서 본 것처럼 회의장과 국회의장실 점거, 동료 의원 감금, 고소·고발 남발 등 물리적 충돌을 근본 차단하지도 못했다.

소수 정당의 반론권 보장을 위한 필리버스터도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개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을 저지코자 민생법안 등 총 199개 안건에 무더기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올해 정부 예산안 심의 및 통과 등 현안 해결은 늦어졌고, 2~3일 단위로 국회를 열고 닫고 또 열어 법안을 처리하는 초유의 '쪼개기 국회'가 탄생했다.

다른 목소리도 그러나 만만치 않다. 물리적 충돌을 아예 없애지는 못했지만, 회의 진행 방해 등을 처벌하는 국회선진화법 조항에 따라 전기톱, 쇠망치, 최루탄까지 동원된 험악한 폭력이 난무했던 과거보다는 나아졌다는 평이 있었다. 국회선진화법과 패스트트랙이 없었다면 선거제도 개편과 공수처 설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필리버스터도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해 국회선진화법 이후 최초로 총 192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펼친 적이 있었다.

지난 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기초·장애인연금 지급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연금 3법'을 비롯한 총 198건의 민생법안을 의결했다. 한국당이 '윤석열 사단 학살'로 불린 검찰 인사에 반발하며 불참하긴 했으나, 표결을 막지는 않았고 필리버스터 철회 또한 번복하지 않았다.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거대 양당 중심의 승자독식 정치가 약화될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청이 도로표지판 너머로 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거대 양당 중심의 승자독식 정치가 약화될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국회 본청이 도로표지판 너머로 보이는 모습. /연합뉴스

◇정쟁만 있고 정치는 없고 =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조금씩만 물러서면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데 왜 20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며 국민을 분노케 한 것일까.

기회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말 소위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가칭 대안신당)가 주도하는 선거법·공수처법 처리를 앞두고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반격'이 있었을 때, 이견이 적은 민생법안부터 일단 의결하고 싸우자는 목소리가 있었다.

문제는 불신이었다. 민주당은 한국당 말만 믿고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열 경우 곧장 필리버스터가 시작돼 회기 내내 표결조차 할 수 없는 사태를 우려했고, 한국당도 뒤에 오해라고 해명했지만 선거법 상정 철회를 민생법안 통과의 전제조건처럼 언급함으로써 불신을 자초하고 증폭시켰다. 말 그대로 '치킨 게임'이었다.

민주당과 한국당 두 거대 양당이 서로를 악마화해 강성 지지층을 결집함으로써 그간 숱한 '재미'를 봐왔던 점도 짚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가 그것으로, 이번 패스트트랙·필리버스터 정국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국당 내엔 협상과 타협을 주장하는 의원이 일부 있었으나, 황교안 대표의 선택은 오직 강공, 강공뿐이었다. 민주당 역시 새 선거제와 공수처가 한국당 등 반대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는 비판을 불식시켰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지금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논란을 비롯해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등 청와대의 각종 의혹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한창인 와중이다.

불완전하나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 독자적인 원내 과반이 어려워지고 다양한 정치세력의 국회 진출이 가능해져 약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거대 양당 중심의 적대적 공존체제, 승자독식 정치구조가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양당은 물론 그 지지자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남겼다. 말로는 '보복은 없다' '극복하고 상생하자' 하지만 누가 봐도 지금 한국정치를 지배하는 건 원한과 증오, 복수의 정서다.

대안은 없을까. 사실 십수 년 이상 한국정치의 문제가 지속하면서 그에 대한 대책은 무수하게 나와 있는 상태다. 특히 제도적 측면에서 그렇다. 작게는 상시국회 제도화와 법안 심의 정례화, 교섭단체 요건 완화 등 국회 운영과 관련한 사항부터 세비 동결 및 지원·혜택 축소, 국민소환제 도입 등 국회의원 기득권 타파를 위한 장치, 그리고 대통령 중심제 개선과 분권형 개헌 같은 더욱 근본적인 해법까지 대안이 없어서 답답한 상황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오는 4월 15일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있다. 대안은 있는데 실행이 안 돼 문제라면, 결국 사람이라도 바꿔 변화와 혁신을 재촉하는 게 현명한 접근일 수 있다. "국회의원 몇 명 바꾼다고 정치가 달라지냐"는 냉소와 회의가 벌써 귓전을 때리지만, 더 나은 정치에 도움이 된다면 지푸라기 한 장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현재 각 정당이 진행 중인 인적 쇄신 또는 물갈이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지, 새로 영입된 인물들이 겉만 번드르르한 누군가의 꼭두각시는 아닌지 더욱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