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정동 골목상인들 기획
빨래터 '정당샘' 공연 인기
주민과 자연스레 웃음꽃

기가 막힌 공연장을 찾아냈구나 싶었다. 지난달 30일부터 1일까지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주 공연장으로 쓰인 정당샘 말이다.

◇주민들의 사랑방을 공연장으로

정당샘은 여러모로 독특한 공간이다. 다른 이름으로 명정(明井)이라고 불리는 쌍둥이 우물이다. 1670년에 팠는데, 하나는 일(日)정, 다른 하나는 월(月)정이다. 두 한자를 합하면 명(明)이 된다. 충렬사를 부르던 다른 이름이 정당(正堂)이었는데, 그래서 정당샘이라고도 불린다. 통영 사람들은 정당 새미라고 한다.

똑같은 물줄기겠지만, 일정에서 나오는 물은 충렬사에서 이순신 장군 제사를 지낼 때 쓰고, 주민들은 월정에서만 물을 길어다 썼었다. 우물에서 연결된 수로가 넓은데, 비교적 최근까지도 주민들의 빨래터였다. 지난 시절 빨래터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이런저런 소식을 나누던 사랑방이다.

이번 통영인디페스티벌 공연이 열릴 때 명정동 주민들이 공연장 입구에서 파전과 막걸리 같은 걸 팔았는데, 이런 빨래터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페스티벌 기획단에서도 생맥주를 팔았는데, 수익은 전부 명정동 발전기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그러니 '명정동을 위해 맥주를 많이 드십시오'란 소리가 들렸다.

정당샘은 아주 훌륭한 공연장이기도 하다. 우물과 수로가 있는 곳은 충렬사 앞 교차로 바로 옆 움푹 낮은 곳에 있는 제법 너른 공간이다. 일단 우물가로 내려가면 시끄럽던 자동차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지면서 갑자기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기분이다. 높은 돌담에 둘러싸여 있지만 햇볕이 잘 들어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객석에 있으면 뭔가 폭 들어앉은 느낌이라 마치 실내 공연장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머리 위로 뻥 뚫린 통쾌함이 있다. 실제 공연을 하는 음악가들도 이 공연장이 맘에 든다고 여러 번 말했고, 그래서 그런지 잔뜩 고취된 기분으로 연주를 했다.

직접 지켜보면서 정당샘 공연이 특히 좋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는데, 우물 주변 높은 담벼락으로 동네 주민들이 공연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공연장에서 쿵쾅쿵쾅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주민들이 '오늘 무슨 행사하나?' 궁금한 얼굴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다 공연이 무르익으면 같이 손뼉을 치기도 한다. 물론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놀랄 수 있어 행사를 준비한 이들이 주변 주민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특히 정당샘 바로 앞에 주택이 한 채 있어 '아이고 여기 사는 분들은 불편하시겠다' 싶었는데, 웬걸 나중에 보니 그 집 식구들이 다 집앞에 자리 잡고 앉아 '앙코르'를 외치고 있었다.

▲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주 무대인 정당샘에서 펼쳐진 공연을 명정동 동네 주민들이 담장 위에서 구경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 제2회 통영인디페스티벌 주 무대인 정당샘에서 펼쳐진 공연을 명정동 동네 주민들이 담장 위에서 구경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십시일반 나눔과 참여가 만든

올해로 두 번째 치르는 행사고, 비싸진 않지만 그래도 유료 행사였다. 셋째 날에는 공연시간에 장대비가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제법 많은 사람이 모였다. 도대체 이런 행사를 어떤 사람들이 준비한 걸까. 행사 내내 검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바삐 움직이던 진행 요원들은 알고 보면 모두 통영에서 저마다 공간을 운영하는 젊은 사장이다.

"저희는 전문 기획자들이 아닙니다. 강구안 주변에서 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뭔가 해보자고 힘을 합쳤습니다."

팸플릿에 나온 걸 보니 다들 통영에서 유명한 곳이다. 수제 맥주를 파는 호스텔 '미륵미륵', 통영에 있는 독립서점 '삐삐책방'과 '고양이쌤책방', 동피랑에 유명한 수제 햄버거집 '버거싶다', 쌍욕라떼로 유명한 '카페 울라봉', 젊은 감각의 통영 사진관 '245스튜디오' 그리고 이런 통영 젊은 사장들의 사랑방 노릇을 하는 '삼문당커피컴퍼니(옛 커피로스터즈 수다)'. 여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이들과 어울려 노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또 있다.

어쩐지 최근 통영에 재밌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람들이 함께하는 거였다.

명정샘 말고도 카페 울라봉, 삐삐책방, 고양이쌤책방, 삼문당커피컴퍼니, 버거싶다, 미륵미륵 등에서도 공연은 물론 강연회, 전시회 같은 아기자기한 행사가 많았는데, 다들 조금씩만 힘을 보태니 이런 일들이 가능했던 거다.

"명정동 동네 분들 며칠 동안 많이 시끄러우셨을 텐데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요, 우리 내년에도 이거 계속 할깁니다!"

본 공연 사회자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 돌아오는 길, '아이고 한판 잘 놀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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