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자 괴롭힘에 상당수 무대응
야근 지시·회식 관행도 당연시
피해구제 등 법적 실효성 의문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부터 시행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갑질 문제를 해소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거란 기대와 함께 가해자 처벌 조항이 없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폭력이나 부당노동행위, 성희롱 등 현행 법에서 처벌 대상이 되던 행위와 달리 당사자가 고통받으면서도 문제삼기 어려웠던 은밀한 괴롭힘, 상사의 갑질 등을 법적으로 제재하고자 마련됐다. 하지만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감수성은 낙제점 수준에 가깝다. 이는 직장에서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거나 하고 있는데도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직장인 10명 중 7명 갑질피해 =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조사를 보면 1년 이상 직장 경험이 있는 1506명 중 73.3%가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해자는 임원·경영진이 아닌 업무 공간에서 수시로 마주치는 상급자가 42.0%를 차지했다.

괴롭힘의 유형은 성희롱부터 인사 불이익과 같은 구조적 문제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대책 마련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성희롱이나 왕따, 폭언, 폭행이 한꺼번에 이어졌고 구조적인 괴롭힘이 뒤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부당한 업무 지시나 과중한 업무 부여 등으로 괴롭히고 인사 불이익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닥치면 불이익을 당할 우려 때문에 피해자들은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권위 실태조사에서도 피해에 대처한 적이 없다는 응답자가 60.3%나 됐다. 인사 조치 등의 2차 피해를 우려한 것이다. 인권위는 "경영전략 차원에서 괴롭힘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성과를 올리려는 태도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갑질에 둔감한 한국 직장인 =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갑질 실태와 감수성을 조사한 결과를 지난 8일 발표했다.

교수·변호사·공인노무사 등 전문가 12명이 입사에서 퇴사까지 직장에서 겪을 수 있는 불합리한 처우를 종합해 30개 문항으로 만들어 직장갑질 지수를 개발했는데 조사 결과 직장인들의 갑질 감수성 지수는 평균 68.4점으로, 전체 5등급(A~F) 중 4등급(D등급) 수준이었다. 갑질 감수성이 가장 낮은 5개 항목은 △불시 퇴사 시 책임 △업무능력 부족 권고사직 △시간외근무 △부당한 지시 △채용공고 과장 순이었다.

다수 직장인들이 개인사정으로 갑자기 일을 그만둔 직원에게 책임을 따지거나 업무능력이 부족한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하는 것, 맡겨진 업무는 야근을 해서라도 끝내라고 지시하는 행위를 당연하게 여겼다. 이 밖에도 휴일·명절 근무, 신입사원에 대한 위압적인 교육문화, 법정휴가 준수 문제, 휴일 체육대회·야유회, 회식, 음주문화도 직장갑질 감수성이 낮은 항목에 포함됐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은 "직장갑질은 여전히 논란의 중심이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해 온 괴롭힘이 앞으로는 위법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괴롭힘에도 사업주 처벌 부재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문화한 것은 진일보한 것이지만 갑질 근절을 위해 갈 길은 멀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법에 규정하고 법으로 금지하는 행위임을 명백히 한 점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지만 이를 강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 등에 대한 보호조치와 행위자에 대한 조치 등이 회사 차원에서 제대로 이행돼야 피해구제가 이뤄진다. 그러나 법적 강제력이 없다. 취업규칙에 규정된 직장 내 괴롭힘 예방과 발생 시 조치의무가 성실히 이행되도록 담보할 수단도 딱히 없다.

기존에도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 등 인사상 불이익에 대해 부당해고 구제절차로 다툴 수 있었기에 벌칙규정으로 직장 내 괴롭힘에 얼마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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