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부서지지 않은 그윽한 윤기
창원다호리유물 이관 계기 기획
당시 '명품' 옻칠 유물 280여 점
국보·보물 포함해 9월까지 선봬
나전칠기 탄생시킨 뛰어난 기술
재료 채취부터 제작과정 한눈에
무기·악기 등 다양한 활용 눈길

개인적으로 옻닭을 세 번 먹고, 세 번 다 옻이 올라서 옻이라면 기겁을 한다. 그런데 고대 그릇에 단단하고 기품 있게 칠해진 이런 옻이라면 말이 다르다. 국립김해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열리는 특별전시 '고대의 빛깔, 옻칠'전에서는 우아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우리나라 옻칠 유물 280여 점을 볼 수 있다. 물론, 옻이 오를 염려는 전혀 없다.

▲ 김해박물관 '고대의 빛깔, 옻칠'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옻칠 유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 김해박물관 '고대의 빛깔, 옻칠'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된 옻칠 유물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서후 기자

◇천연 고분자 코팅제

이번 옻칠 전시는 지난해 중앙박물관에서 김해박물관으로 창원 다호리 유물을 이관하면서 구상됐다. 창원 다호리 유적은 우리나라 원삼국시대(변한 또는 초기 가야시대) 최대 규모 유적이다. 특히 제기 등 나무로 된 그릇 종류가 많았는데, 옻칠이 잘돼 있던 까닭에 2000년 동안 썩지 않고 있다가 발굴됐다. 다호리 옻칠 유물은 우리나라에 중국, 일본과 다른 독자적인 옻칠 문화가 발전해왔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옻칠이란 게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 싶어 자료를 찾다가 다음과 같은 논문을 발견했다.

"최근 환경호르몬, 화학첨가제에 대한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면서 친환경 코팅제의 개발에 대한 연구개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에 전통 한옥과 문화재 유물에서 코팅제로 쓰였던 옻칠과 명유가 천연 친환경 고분자 코팅소재로써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중략) 놀라운 것은 옻칠의 고강도, 내열성, 고광택, 내화학성, 방수성, 방충성 등 우수한 도막 특성으로 인해, 이러한 유물들이 20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도 부패하지 않고 그 형태가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 논문 <전통과학 고분자 코팅 소재 : 옻칠과 명유>(화학공학연구정보센터, 2019)

옻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일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자란다. 옻나무에 상처를 내면 그 상처를 치료하려고 진액이 나오는데 그것이 옻칠의 재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옻칠 유적은 여수 적량동 비파형청동검 아래 흙에서 확인된 옻칠 흔적이다. 이게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신석기시대인 6000~7000년 전 것이 확인됐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고, 옻나무가 자라는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에 옻칠 문화가 시작됐을 것으로 추정만 하고 있다. 여수 적량동 이후 제대로 된 옻칠 문화가 발견된 게 앞서 말한 창원 다호리 유적과 광주 신창동 유적이다.

▲ 국보 제164호인 나무 봉황모양 꾸미개. /이서후 기자
▲ 국보 제164호인 나무 봉황모양 꾸미개. /이서후 기자
▲ 보물 제1151호인 청동 옻칠 발걸이. 경주 황오동에서 발굴됐다. /이서후 기자
▲ 보물 제1151호인 청동 옻칠 발걸이. 경주 황오동에서 발굴됐다. /이서후 기자

◇금보다 귀했던 고대 명품

옻칠은 재료를 구하는 과정이나 만드는 과정이 까다로워서 고대에는 신분과 재력이 있는 이들만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예컨대, 백제나 신라, 고구려 삼국시대 청동기와 비교했을 때, 지금이야 청동기가 더 값어치 있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옻칠 물건이 더 귀하게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다음은 아마도 중국 옻칠 유물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고대 옻칠 그릇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질 좋은 옻칠 제품은 놀라울 만큼 매끈하면서도 거의 부서지지도 않았다. 이 정도로 훌륭한 그릇을 만들려면 칠을 각각 최소한 30회 이상 해야 한다. 매번 칠을 할 때마다 오랫동안 말려 굳히는 작업이 필요했으니, 완성하는 데 한 달 이상 걸렸을 것이다. 이런 그릇이 터무니없이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청동 그릇을 열 개 넘게 살 수 있는 돈으로 옻칠 그릇을 겨우 한 개 살 수 있었다. 따라서 옻칠 그릇은 고위 관리, 즉 제국의 변방을 감독하는 총독이나 소유할 수 있었다." -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닐 맥그리거, 다산호당) 254쪽.

실제로 옻칠 물건은 색깔도 은은하고 윤기가 흘러서 미적으로 아주 아름답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 통일신라 때 유물인 청동 꽃 동물 무늬 붙인 옻칠 거울. /이서후 기자
▲ 통일신라 때 유물인 청동 꽃 동물 무늬 붙인 옻칠 거울. /이서후 기자
▲ 백제 무령왕릉 왕과 왕비의 베개와 발받침. 화려한 고대 옻칠 기술을 잘 보여준다. /이서후 기자
▲ 백제 무령왕릉 왕과 왕비의 베개와 발받침. 화려한 고대 옻칠 기술을 잘 보여준다. /이서후 기자
▲ 옻칠을 한 청동검 손잡이와 칼집. /이서후 기자
▲ 옻칠을 한 청동검 손잡이와 칼집. /이서후 기자

◇옻칠에 관한 모든 것

김해박물관 기획전시실에는 이런 고대 명품 옻칠 유물이 28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지금까지 이런 옻칠 전시는 없었다'고 할 만하다. 옻칠 재료 채취 방법, 옻칠 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옻칠의 다양한 활용, 대표적인 옻칠 문화재, 고대 옻칠 기술을 계승한 나전칠기 등 옻칠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옻칠 문화재의 아름다움이란 섹션은 이번 전시 중 가장 핵심이라 할 만하다. 우리나라 옻칠 문화재를 대표하는 백제 무령왕릉 출토 나무 봉황모양 꾸미개(국보 제164호),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청동 꽃 동물 무늬 붙인 옻칠 거울, 경주 황오동에서 출토된 청동 옻칠 발걸이(보물 제1151호) 등 유물 8점을 세세하게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실제 옻칠은 그릇뿐 아니라 무기, 농기구, 악기 등 다양한 물건에 했다. 전시실에는 이런 유물과 함께 복원한 것도 나란히 놓아두었는데, 예컨대 백제 무령왕릉 왕비 베개 봉황장식(국보 제164호)이나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발견된 검은 색과 붉은색 옻칠을 한 방패 복원품은 아주 멋지게 생겼다.

▲ 옻칠 과정을 12단계로 나눠 보여주는데, 은은한 광택의 검은빛이 서서히 드러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서후 기자
▲ 옻칠 과정을 12단계로 나눠 보여주는데, 은은한 광택의 검은빛이 서서히 드러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서후 기자

우리나라 고대 옻칠 문화는 고려와 조선시대로 와서 중국인들도 극찬했던 나전칠기 전통으로 이어진다. 고려 나전칠기 기술의 정수라는 나전경함(보물 제1975호)도 이번 전시를 통해 볼 수 있다. 또 옻칠 물건이 구하기 어려우니 옻칠 색깔을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토기가 있었다는 재밌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무료다. 9월 29일까지, 문의 055-320-6832.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