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어여쁜 길 사라진다니 한참 두리번거렸다

참 예쁜 동네입니다. 하지만, 쓸쓸하게 버려진 것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있는 곳은 김해시 봉황동 유적지 바로 앞 동네, 지난해 봉황동 유적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된 집들이 있는 곳입니다.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는 말은 토지 수용을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주민들이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합니다. 이미 버려진 집들이 꽤 됩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곳 역시 철거 지역 같은 폐허가 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집을 모두 허물고 문화재 발굴 작업을 하겠죠.

발굴 후에는 아마 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말끔하게 잔디밭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전에 동네를 한 번 둘러보고 기록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야사 문화재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라질 지금 삶의 모습 또한 어떤 의미에서 소중한 문화재일 테니까요.

▲ 황새와 여의의 사랑이야기를 품은 김해 봉황동 골목과 2015년 도시정비로 예쁘게 변한 봉황동 주택가. 봉황대 유적 보호구역 추가 지정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이서후 기자

◇러브스토리를 품은 골목

봉황동 유적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된 곳은 봉황동 원도심의 중심 같은 곳입니다. 대개의 원도심이 그렇듯 역사 오랜 주택이 많죠. 낡아서 멋진 그런 집들 말입니다. 물론 그런 낡은 집을 허물고 지은 번듯한 2층 벽돌집들이 더 많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야, 느낌 있다' 싶은 집들이 제법 보입니다.

바로 근처가 '봉리단길(장유가도)'입니다. 예쁜 카페나 식당, 가게들이 많이 생겨 요즘 김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거리죠. 이 거리에 가장 먼저 자리 잡고 활기를 만들어 낸 이들이 있는데요.

이 사람들이 원래 주목한 것이 지금 보호구역으로 추가 지정된 주택가였습니다. 낮고 낡은 지붕의 집들, 그리고 이 집들을 중심으로 아기자기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다 사라지게 생겼으니 맥이 빠진다고 합니다. 심지어 봉리단길을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도 하더군요.

아무튼, 직접 돌아다녀 보니 낡았기는 한데 느낌이 산뜻하네요. 알록달록 칠해진 대문들, 유치하지 않은 벽화와 재치 있게 배치된 물고기며 고양이 같은 동물 조각들이 걷는 재미를 더합니다. 2015년에 이뤄진 골목재생 사업 덕분이네요. 이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가야국 황새 장군과 여의 낭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 있어요. 봉황대 유적 안에 이 둘의 이야기를 담은 황새 바위와 여의각이란 사당도 있습니다. 봉황대 패총 옆에 두 사람을 형상화한 큰 조형물과 함께 이야기도 자세하게 적혀 있고요.

골목 벽화도 아기자기한 조각들도 대부분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통일성 있게 만들었네요. 지역 설화를 활용한 이 방식, 맘에 듭니다.

▲ 황새와 여의의 사랑이야기를 품은 김해 봉황동 골목과 2015년 도시정비로 예쁘게 변한 봉황동 주택가. 봉황대 유적 보호구역 추가 지정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이서후 기자

◇봉황동에 있는 동네 방송국

지금 봉황동에는 보호구역 추가 지정으로 사라질 동네를 기록하는 동네 방송국이 있습니다. 바로 '봉황방송국'인데요. 방송국이 들어선 집 역시 굉장히 오래된 것입니다. 곽지수(50) 씨가 스태프 2명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분 예전에 김해에서 열린 문화 행사에서 몇 번인가 뵌 적이 있는데, 굉장히 유쾌하신 분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연극 하시는 분이라 별명이 '곽배우'입니다. 인형극과 창작극을 만들고 공연하는 JJ창작예술협동조합 대표이기도 하죠. 지난해 말부터 봉황동에서 동네방송국을 운영하고 계셨네요. 방송은 유튜브 계정으로 하고 있네요. 지난해 11월 계정에 올린 첫 방송에서 방송국을 열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2016년 이 동네에 우연히 왔다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있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로 어린이극을 만들어 공연을 했어요. 많은 이들이 사랑해 주셨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동네에 들어와서 열정을 불태우리라, 그러면서 없는 돈 탈탈 털어서 봉황동 265번지에 집을 샀습니다."

1920년대 즈음에 지어진 오래된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이 곽배우 마음에 쏙 들었었나 봐요. 조금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서 작은 공연장을 만들 계획이었다고 해요. 곽배우가 봉황동 집을 산 게 지난해 4월입니다. 그런데 이 집이 하필 봉황동 유적 보호구역에 지정이 됩니다. 공고가 난 게 지난해 8월이니까 4개월 만에 맞은 날벼락이네요.

"드디어 나에게 작은 무대가 생겼다! 작은 공연장이 생겼다! 구름 위를 걷던 기분이었죠. 그런데 보호구역 지정 통지서를 받고는 정말 제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저로서는 큰 빚을 지고 집을 매입해 꿈을 키웠던 건데요. 충격으로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열한 끼를 굶었습니다."

한 달 정도 충격에 빠졌다가 정신을 차린 곽배우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현재에 충실하자고 다짐합니다. 그렇게 힘을 내서 남편과 함께 열심히 집을 꾸몄습니다. 원래 공연장으로 쓰려고 했던 곳은 꾸며 봉황방송국을 마련했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겠다는 뜻이었지만, 이왕 하는 거 마을 방송국을 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따라 동네 이야기를 하는 동네 방송을 하기로 했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50개가 넘는 콘텐츠가 올라와 있습니다. 마을 행사를 기록하거나 봉황로드 같은 동네 예쁜 길을 소개하거나 내용은 다양합니다. 개중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 있는데, 봉황대 유적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에 사는 주민들 인터뷰입니다.

▲ 사라질 동네를 기록하는 동네방송 봉황방송국과 운영자 곽지수 씨. /이서후 기자

◇사라지는 삶의 역사 아쉬워

번지수와 실명이 들어간 이 인터뷰는 그야말로 봉황동의 산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대부분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이십니다.

"50년 전에 이 동네 왔을 때는 아무것도 집도 없었고 전부 포도밭이었거든요. 우리는 담배포(鋪·가게)도 하고 부식 가게도 그랬어. 그때 장사할 때는 학교 선생들도 월급이 적어서 외상으로 먹고 그랬어." (봉황동 164-1번지 권태자 님)

"38년 정도 됐는데, 모친이 시장에서 고기 장사를 했습니다. 모친이 몸이 불편해져서 같이 들어와 살았어요. 여기는 조용하고 분위기 좋고 참, 사람 살기 좋은 동네입니다." (봉황동 164-2번지 장용수 님)

지금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집마다 조그만 펼침막이 하나씩 걸려 있습니다. 김해봉황동유적보호구역주민대책위원회 이름으로 된 이 펼침막에는 '봉황동 주민이 바라는 가야사 복원의 철학'이란 좀 거창한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런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가야사를 발굴하고 복원하는 일은 물론 소중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갑작스레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처지를 조금만 더 헤아려 주면 안 될까요?'

과연 문화재와 지금의 삶이 공존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아쉬운 마음으로 이 골목 저 골목을 한참 두리번거렸습니다. 아마,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봉황동 주택가 골목이 사라지기 전까지 자주 가서 거닐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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