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신호위반차 치인 2명
산재·직장건강보험 미가입
특수고용직 사회보장 못 받아
현실 뒷받침할 제도 개선 필요

최근 대리운전 기사 2명이 귀갓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다 신호위반 차량에 치여 참변을 당한 사건은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난달 28일 창원역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대리운전 기사 2명이 신호를 위반한 차량에 치여 한 명이 숨지고, 한 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들은 모두 산재보험과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부분 대리운전 기사가 교통사고 등 업무상 재해를 당해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기 어려운 현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나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리운전 기사는 현행법상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특수형태종사자로 분류돼 있다. 다만, 산재 가입을 해야 산재 처리를 받을 수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9개의 특수고용직은 △보험설계사 △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다.

그러나 의무가입 대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월을 기준으로 전국 대리운전 기사 중 산재보험에 가입된 이는 24명뿐이다. 대리운전 기사 정확한 수도 파악이 안 돼있다. 노동 3권뿐 아니라 산재·고용보험 가입 등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다.

최영주 노무사는 "특수고용 노동자에 한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뒀지만 의무가입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리운전 기사는 산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으면 산재 적용이 어렵다"라면서도 "이번에 사고를 당한 대리운전 기사는 업무 상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산재 처리 등도 가능하다"고 했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사회보장 제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정부 정책이 현실을 뒷받침하지 못한 탓이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은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문제는 전속성에 있다. 대리운전 기사는 업계 특성상 한 업체 요청만 받는 것이 아니다. 전속성을 부여받으려면 특정업체 콜만 받아야 하는데 대리운전 업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무늬만 정책"이라면서 "대리기사뿐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 모두가 처한 현실"이라고 했다.

또 대리운전 업계는 사업주가 산재보험료 전액을 납부하는 일반 사업체와 달리 대리기사와 사업자가 각각 보험료 절반을 내도록 하고 있다.

하루벌이에 급급한 대리기사들이 산재보험료를 내려 하지 않고 더욱이 절반이라도 보험료를 내려는 사업자도 드물다.

김 회장은 "대리업체와 대리기사의 소속관계는 그 형식적 유사성에도 일반 사업장의 고용과 피고용관계가 아님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수원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대리운전노조 경남지부장은 이번 대리운전 기사 사고와 관련해 "산재 보상이 가능한 길을 찾고 있다.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산재가 가능하다고 하니 방법을 강구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번 대리운전 기사들 사고와 관련해 산재 보상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스마트폰으로 주문을 받아 음식을 배달하는 소속원에 대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보호 대상'이라는 판결을 한 바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가 갑작스러운 사고 등 업무상 재해를 당했을 때 산재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특수고용 노동자 대책회의는 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특수고용직 문제는 소수집단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적 문제"라며 노동기본권 보장을 촉구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죽어도 산재보상 권리가 없고, 현장에서 잘려도 당장 생계 대책이 없으며, 체불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며 "최소한의 기본권과 인권 보장을 위한 특수고용직 노동자 요구를 즉각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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