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다룬 영화 <나쁜나라> 22일 창원 노동회관서 상영회…유족 '예은이 아빠'유경근 씨 "진상규명만이 유일한 치유"

영화 <나쁜 나라> 상영이 끝난 후 불이 켜졌다. 사람들 눈은 모두 벌겋게 변해 있었다. 곧바로 간담회가 이어지며 세월호 유가족을 마주해야 했다. '잊지 않겠다'는 그 말을 조금씩 잊어가는 자신을 발견한 탓인지, 대부분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유가족이 오히려 다독였다.

"밀양 할매들이 그러데요. '맨날 울어봐야 아무것도 안 되니, 무조건 웃으라'고 말이죠. 이제 사람들을 즐겁게 만나고 많이 웃으려 합니다."

지난 22일 오후 창원시 성산구 노동회관 4층 대강당에서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상영회가 열렸다.

종영 후에는 '예은이 아빠' 유경근(세월호 가족대책위 집행위원장) 씨와 대화 자리가 이어졌다.

역시 세월호 유가족들은 사람들의 망각을 마음 아파하고 있었다. 한 참석자가 "사고 당시 아이들 동영상이 많이 공개됐지만, 저는 너무 무서워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예은이 아빠'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22일 오후 창원시 노동회관에서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 상영회 및 유가족 간담회가 열렸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왼쪽) 씨가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솔직히 전혀 신경 안 씁니다. 정말 힘들게 하는 것은 피하는 거더군요. 사람들이 마음은 아니지만 감정적으로 힘드니까 옆으로 제쳐놓게 되고, 시간 지나면 또 미안해하고…. 유가족 중에는 지금도 분향소 들어가는 걸 정말 힘들어하는 엄마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약해진 것 같다'며 어떻게든 꾸역꾸역 들어갑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죄송하고 어려운 얘기지만, 힘들더라도 아이들 나오는 동영상이 있다면 회피하지 말고 보셨으면 합니다."

'예은이 아빠'가 지난 1년 반 동안 외친 건 딱 하나, '독립적인 국가조사기구를 통한 성역없는 진상 조사 보장'이었다고 한다.

"유가족들은 '이걸 밝혀라', '저 사람 처벌하라'는 얘길 단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저 정도 조사했으면 더 파헤칠 게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과정만 밟는다면 그 결과를 신뢰할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유가족, 그리고 함께 눈물 흘린 국민이 수긍해야 끝나는 것 아닌가요? 그 유일한 조건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거죠."

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특별법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특별법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조사권만 있고, 유가족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수사권·기소권은 끝내 빠졌다. 하지만 '예은이 아빠'는 부족한 특별법이지만 냉소하거나 가벼이 받아들이지 않길 바랐다.

"현실적으로 반쪽짜리 특별법을 받아들였습니다. 저희도 실망했죠. 하지만 그때 저희는 그랬습니다. 그 한계가 드러나면 특별법 자체를 개정하거나 다른 특별법을 만드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이죠. 지금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저는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끝을 볼 수 있으니까요. 진상규명만이 우리를 치유해 줄 겁니다."

참석자 가운데 '도와드릴 방법'이라는 표현을 썼다. '예은이 아빠'는 생각의 폭을 좀 더 넓혀주길 바랐다.

"저희는 궁극적으로 '안전한 나라'를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세월호는 우리만이 아닌 전 국민이 겪은 내 일이기도 합니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고자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우리를 돕는다고 생각하면 금방 지칩니다."

2시간짜리 다큐 영화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우는 이유와 과정에 중점을 두고 있다. 현재 전국에서 1만 명 이상 관람했지만, 상영관을 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세월호경남대책위, 경남여성단체연합 등 지역 단체가 나서 마련한 이번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 창원 내 일반극장 상영을 추진했지만, 영화관 쪽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노동회관 4층에 상영 자리가 마련됐는데, 300여 명이 참석해 자리가 모자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영화를 본 한 여고생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세월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이제야 알게 되어 죽을 만큼 부끄럽습니다. 내가 학생이라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너무 미안해요"라며 고개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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