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조선소, 희망과 절망 갈림길에 서다] (6)조선산업 부활 꿈꾸는 노동자
김중엽(가명) 씨는 통영 21세기조선 노동자다. 김중엽 씨는 요즘 종종 미륵산 꼭대기로 올라가 잠을 잔다. 20일 기자와 김 씨는 미륵산 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함께 잤다. 컴컴한 산을 오르기 전, 술자리에서 그는 숫자가 적힌 표를 보였다.
"통상 통영시 전체 예산이 4000억 원 정도…."
그렇게 말했다. "2008년 기준으로 미륵도 조선 3사 매출액은 통영시 전체 예산 몇 배가 넘어요. 1년 매출이 신아sb 8362억 원, 21세기조선 5200억 원. 한 회사가 인구 14만 중소도시 예산을 뛰어넘는 매출을 올렸잖아요. 재벌이 대한민국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그 논리대로라면 조선소가 수십 년간 통영사람을 먹여 살렸다는 게 맞는 말이죠."
매출은 그렇다고 치자. 통영 지역내총생산(GRDP)에서 조선소는 얼마를 차지했을까.
통영 지역내총생산이 3조 원을 넘어섰던 지난 2009년, 조선소(가공조립업)는 1조 3000억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통영 경제의 40% 이상으로, 통영의 조선소는 그야말로 통영의 근간을 이끌어온 산업이었다.
1998년 법인 설립된 21세기조선은 2002년 벤처기업으로 지정되고, 같은 해 유망중소기업으로 지정됐다. 2005년 3000만 불, 2007년 2억 불, 2008년 3억 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빵빵했던 통영의 능력 있는 조선소는 현재 경기가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배 한 척 수주하지 못하고 대책 없이 망해 가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일본 조선업 쇠퇴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겁먹은 정부가 실업자를 만들어내는 꼴이지요. 살릴 수 있는 조선소인데 선수금 환급보증(RG)을 하지 않아요. 솔직히 채권단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비겁한 정부예요."
김중엽 씨는 말을 이었다.
"21세기조선 노동자들은 노조 결성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요. 일하지 않고 대책도 없는 현 경영진과 채권단을 믿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1200명이 근무하던 21세기조선, 회사 하나가 면 단위 인구만큼 됐다.
조선소로 말미암아 통영은 인구 14만 시대를 열 수 있었다. 조선소 한 개가 면 단위나 읍 단위 인구를 고용한 셈이었다. 조선 경기가 활황이던 2006~2010년 통영엔 매년 1000~2000명 정도 인구 유입 효과가 발생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4월 말 14만 이하로 떨어졌다. 2010년 이후 18개월여가 지난 지금, 통영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다.
인구 비율 등으로 지급되는 지방 교부세 감소 등 불이익, 재산세·취득세 등 세입 감소를 예상할 수밖에 없다.
오수철(가명) 씨는 신아sb 노동자다. 신아sb는 이국철 회장 당시 3800명 정도가 근무했다. 2006년 신아sb, 삼호조선, 21세기조선, 성동조선, spp조선의 연간 매출액은 1조 4000억 원, 2007년도에는 2조 원대를 돌파했다. 통영 예산의 3배가 넘는 매출액이었다.
오 씨는 조선업이 이렇게 정점을 찍던 그 시절, 잔업에 잔업을 더하며 30대 초반, 입사 5년 차에 연봉 5000만 원을 넘겼다. "입사 5년 만에 아파트를 샀다. 재산세가 10만 원이 넘었다. 재산세를 많이 내는 게 뿌듯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통영의 수출입 물품은 수산물 위주였다. 충무상공회의소 조사자료집 〈충무상공〉에는 올림픽이 열린 1988년 통영 전체 수출 실적을 8103만 달러로 적었다. 품목별로는 건어물 등 수산물 5457만 달러로 67.3%를 차지했다. 당시 조선소는 684만 달러(8.4%)를 수출했다. 그러던 1996년, 통영 수출은 선박만 1억 1289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58.6%를 차지했다. 90년대 이후 통영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음을 증명하는 수치였다. 이때 수산물 수출은 고작 12.2%(2356만 달러)였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고 2000년을 넘어, 2006년 이후 선박 수출 물량은 전체 수출 금액의 90% 이상을 차지했다. 2007년 선박 수출은 통영 전체 수출의 96%를, 지난해까지 통영 총수출액 중 선박 수출은 98%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통영 조선소 몰락은 이런 통영의 기반 사업 해체를 뜻하지만 정작 시민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삼호조선이 파산하면서 통영 조선소는 천천히 사라져간다는 느낌, 시민들은 의외로 담담했고 무관심 속에 조선소는 침몰하고 있다.
2008년 이후 침체와 비리로 얼룩진 조선소는 신규 수주를 하지 못하고 미륵도 조선 3사 모두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산업혁명 이후 조선업은 영국이 이끈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조선업을 이끌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일본이 60년대를 풍미한다. 75년 조선 호황은 정점을 찍는다. 80년대 중반 국내 조선업계는 저환율·저유가·저금리로 호황을 누린다. 1993년 엔화 강세 영향에 힘입어 일본을 제치고 한국은 사상 최대 수주 실적을 올렸다.
조선업은 5년, 10년, 20년으로 경기 순환을 타는 대표적 업종이다.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해 온 특성을 가졌다는 뜻이다.
한국은행 등 조선소 동향이나 전망에 관한 보고서에는 2013년, 즉 내년을 조선 경기 바닥을 확인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완만한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은 새로울 것도 없는 정보다. 신아sb 노동자들이 RG발급을 요구하는 중요 논리가 이 경기 회복에 있다. 일단 살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폐업으로 가면 정작 경기가 회복됐을 때 중소조선 물량은 중국이 송두리째 다 가져가 버린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차피 폐업해도 누군가 인수하게 될 사업장이라면 21세기조선이나 신아sb 노동자 스스로 살려보겠다는 뜻이다.
한밤중이었다. 기자를 데리고 미륵산을 걸어 올라가는 21세기조선 김중엽 씨는 취해 있었다. 얼결에 구두 신고 두 시간을 걸어 산을 따라 올라가는데 통영조선소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불 꺼진 조선소는 무섭고 무거웠다.
산꼭대기 텐트 안에서 김중엽 씨는 "회사 망하면 어디로 가 취직합니까. 요새 회사 때문에 잠이 안옵니다"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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