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조선소, 절망과 희망 갈림길에 서다] (3)무너진 상권

점심 시간, 식당엔 손님 1명이 전부

윤선영(61) 씨의 젊고 아름다운 딸은 엄마를 걱정했다. 점심시간인 오후 1시. 식당엔 4500원짜리 냉국수를 먹고 있는 손님 한 명이 있었다. 딸은 커피 마시듯 식당 홀에서 맥주를 마셨다.

"엄마, 누가 거제도 가서 장사하라네."

거제도는 이 불경기에도 선박 수주 빵빵한 소위 조선사 빅3 중 2개사가 있다. 통영 미륵도에는 중형 조선소 3개 사가 있었다. 이 중 1개가 문을 닫고 2개사는 워크아웃 상태, 조선소 상황에 따라 이곳, 미륵도 조선소 인근 상권은 현재 '점포세' 중이다.

원룸촌은 '컴컴' 조선소는 더 '껌껌'

김희아(가명) 씨는 남편 퇴직금과 적금을 털어 1억 5000만 원 대출을 안고 3년 전 원룸 주인이 됐다. 10평 안팎의 원룸 10개, 보증금 500만 원, 월세 42만 원으로 임대했다. 먹고 살만했다.

"저 대형 크레인이 바람에 휘청휘청 흔들리다 우리 집을 부술 것 같다"며 삼호조선 크레인을 그는 가리켰다. 그는 "최근 들어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다"고 고백했다.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을 줘도 방을 못 구하던 때가 있었다. 미륵도 조선소 인근 원룸 가격은 원래 이랬다. 1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있던 2년 전까지 말이다. 대거 원룸이 들어섰다. 500만 원에 40만 원으로 떨어졌고, 올해 삼호조선 폐업 이후 40만 원 선이던 월세는 30만 원으로 떨어졌다.

"밤에 불 켜진 원룸은 몇 개 되질 않는다. 원룸촌은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은행대출금 갚고 수리하고 보증금 돌려주고, 다 팽개치고 싶다."

또 다른 원룸 주인 이 모 씨의 말이다.

통영고등학교 아래 원룸형 다가구 주택 수는 130동 정도다. 80%가 원룸형, 나머지가 투룸형이다. 큰 건물은 원·투룸 합쳐 10개, 작은 건물은 7개 정도로 운영한다. 1000개 이상의 방이 있는 셈이다.

26일 저녁 9시께, 이곳 원룸단지 대부분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아예 불빛이 없는 건물도 제법 됐다. 원룸촌은 컴컴했고 조선소는 더 캄캄했다.

미륵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다치를 운영하는 최미숙(가명) 씨는 1시간 인터뷰 내내 담배 반 갑을 피웠다. 그는 "다방도 안 된다. 노래방도 안 된다. 저렴한 다치는 더 안 된다"고 말했다. "일자리가 없어 떠나지 못하고 장사가 안 돼 나처럼 떠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미륵도다."

"대출 내 집을 지었던 원룸 업자가 이자와 대출금을 못 갚아 아예 도망을 친 경우가 있었다. 전세 설정을 못한 세입자들 피해가 컸다고 들었다. 그런 원룸이 2개다. 줄줄이 그렇게 될 것 같다." 이 말은 원룸 세입자 조 모 씨가 했다.

전기료 체납 고지서, 마치 문패처럼

미륵도 ㄱ 교회 한 신자는 "조선소 상황에 따라 신자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했다. 조선소 인근 한 식당에는 전기료 체납 고지서가 문패처럼 붙어 있다.

안봉기(가명·47) 씨는 삼호조선 정규 직원이었다. 삼호조선을 퇴직하고 그는 갑자기 거제도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아파트를 팔고 떠났다. 최근 그는 다시 미륵도로 돌아와 월세 30만 원짜리 투룸을 얻었다.

"아파트 값이 떨어질 줄 알고 싸게 팔았더니 지금은 판 가격보다 1000만 원 정도가 올랐다. 복장이 터진다. 상권 붕괴가 아니라 노동자 멘붕(멘탈 붕괴)이다."

미륵도 부동산 업자 이 모 씨는 "지난해 조선소 노동자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 시내 사람들이 입주하면서 오히려 시세가 올랐다"고 했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지금 놀고 먹는다"고 허탈해 했다.

고작 500미터 거리 두고, 흥망 엇갈려

석가탄신을 낀 3일 연휴, 통영 관광객 연 700만 시대가 주는 황홀한 단상은 미륵도 도로가 증명했다. 미륵도 케이블카로 가는 길은 종일 막혔다. 케이블카는 1년에 130만 명, 개장 4년 만에 500만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112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도 잘돼 비명을 지를 정도다.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직선으로 500m 거리, 승용차로 2~3분 거리에 있는 조선소 거리는 딴 나라 같았다.

통영 강구안과 중앙시장도 관광객으로 넘쳤다. 충무김밥 집은 줄을 서야 했다. 덩달아 음식점과 숙박업도 자리가 없어 아우성이었다. 이 강구안의 반대편, 통영 총생산의 40%를 차지하던 조선소와 관련 업종과 상권은 그저 썰렁할 뿐이었다. 조선소 옆에 서 있는 것조차 우울할 정도로.

"지난주 손님은 하루 평균 7명"

"막히고 덥고 바가지에……. 이 집 찜이 통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릴 정도로 맛있어요."

27일 오후 2시께 관광객 4명이 윤선영 씨가 운영하는 도남식당을 찾아 환호했다.

윤 씨는 10년 전, 남편이 양쪽 무릎 수술로 일을 못하게 되자 식당 종업원 일을 버리고 개업했다.

윤 씨는 조선소 활황기였던 5년 전, 점포 구하기도 어려웠던 이곳으로 이전했다. 조선소는 아들 하나, 딸 셋인 그의 가족을 온전히 먹여 살렸다.

찜 전문 식당으로 매출은 늘 30만 원 이상이었다. 최근 조선소가 어려워지자 윤 씨 가게의 매출도 급락했다. 옆 돼지국밥 집과 2층 상가 대부분은 문을 닫았다.

그는 "지난주 손님은 하루 평균 7명이었다"며 손사래 쳤다.

"조선소 살린다는 의원들, 되고 나면 딴말"

"조선소를 끼고 있는 치킨점 댓 개 모두가 점포세를 내놨다."

치킨점 사장 전선임(56) 씨의 말이다.

그의 점포는 지난해까지 매일 150만 원 안팎의 매출을 올렸다고 했다. 홀은 늘 노동자들로 북적였지만 호시절은 지나버렸다.

딱했다. 24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 모(43) 씨는 체인점 계약이 끝나지 않아 점포를 닫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위약금을 물지 않기 위해 그는 점포 임대 기간을 1년 연장해야 했다.

"2~3년 전까지 하루 매출은 160만~200만 원 이상이었다. 지금은……." 그는 지금 매출을 말하지 않았다.

"조선소 살린다던 국회의원이…"라며 최근 보도를 보고 버럭 화를 낸 사람은 술집 사장 최 모 씨다. "국회의원 되고 나니, 미륵도 상권을 다 죽일 말만 골라한다"고 했다.

삼호조선 앞 식당가, 사람구경도 어려워

문 닫은 삼호조선은 쓸쓸했다. 삼호조선 맞은편, 줄지어 선 수백 미터의 식당가는 1~2개 업소만 빼고 모조리 문을 닫았다.

평일인 26일, 휴일인 28일, 29일 오전 11시~오후 1시까지, 삼호조선 앞 식당가는 지나는 사람을 보기도 어려웠다.

삼호조선 노동자들이 삼삼오오 상가로 몰렸던 이곳, 점포가 없어 개업이 어려웠던 이 황금 상권은 현재, 텅텅 비고 있다.

도남·봉평동 조선소 일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임대' 또는 '점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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