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조선소, 절망과 희망 갈림길에 서다] (4)국토대장정 앞장선 제진성 씨
600㎞. 서울로 걸어가야 했다. 알아주는 것도 아니다. 힘들게 걸었다고 RG(선수금 환급 보증)를 발급해 준다는 것도 가당치 않다. 국회의원, 채권단, 정부와 대통령이 몰라주어도 '내 아들은 알아주리' 그리 생각했다. 1만 4000여 명 통영시민 서명지를 지고 떠나는 기분…. 도산 직전 회사, 10년을 일했지만, 회사를 위해 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뒤척이고 뒤척이다 노동조합을 찾아 국토 대장정을 제안했다.
"내가 청와대까지 걷겠소." 안경식, 김종주, 김상원, 정성남, 지원팀 정영국…. 6명이 모였다.
지난달 11일, 출정식에서 삭발했다. 통영 토박이, 군 생활 5년 외에 통영을 걸어 떠나본 적이 없었다.
떠나기 전 아이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학원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단 말을 들었다. 돈이 없어 학원 보내지 못한다고 하면 아이가 상처받는다고, 아이가 고등학생쯤 되면 그렇게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마디만 해 달라는 말, 통영시민이 지켜보고 있었다. 벅찼고 속이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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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아웃 후 잔업이 줄면서 급여는 3분의 1이 줄었다. 회사가 어려워지자 통장은 마이너스 2000만 원이 됐다.
길에서, 땀은 항상 머리에서 시작됐다. 볼을 타고 목을 타고 배를 지나 사타구니로 흘러내렸다. 신발은 질퍽거렸다.
첫날에 이어 이틀, 사흘, 금속노조 마산 stx조선 지회를 거쳐 부산으로 희망버스가 가던 길을 따라 걸었다.
309일을 고공 시위했던 김진숙 지도위원의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이 숨이 막히게 눈앞에 있었다.
금속노조 20%, 어용노조 80%. 한진중공업 필리핀 공장은 물량이 넘쳐나는데 부산 영도 조선소는 물량을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올 10월이면 단체교섭권이 어용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울컥이게 했다.
울산을 지났고 경남도에서 경북으로 도 경계선을 넘었다. 19일, 경주시 만도발레오 현장을 거쳤다. 투쟁 현장은 '일하고 싶다'와 '자본의 횡포'라는 구호로 축약돼 있었다. 우울했다.
23일, 전자제품 부품 납품 세계 1위라고 하는 구미 KEC 공장.
6명의 대장정 동료는 공장 입구 선전전(피케팅)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휴가를 보낸 뒤 직장을 폐쇄했다고 들었다. 이런 공장이 삶의 현장이 될 순 없었다. '무덤…….'
걸어서 지친 몸은 눕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꿈을 꾼 적이 없었다. 깨면 걸어야 했다. 하루 평균 40㎞ 정도를 걸었다. 일어나면 지나온 현장들이 속을 헤집고 번뇌하게 했다. 떨쳐내기가 너무도 어려웠다.
충남 아산 경남제약 직원들은 사거리 선전전을 6년째 펼치고 있었다. KEC가 2년 6개월, 이들은 6년. 뭐가 이 긴 세월을 투쟁하게 하는지. 비타민 레모나를 만드는 충남 아산 경남제약은 신아sb와 같은 향토 기업이었다. 2007년 hs바이오팜이 인수하면서 직장을 폐쇄한 적도 있었다. 용역을 고용해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 시도했다고 들었다. 현재 어용과 금속노조의 비율이 50대 50, 어용에 가담했던 이들이 점점 금속노조로 옮겨오는 사례가 늘고 있었다. 일은 힘들고 임금은 적다 보니 주장하고 관철하고, 하소연할 노조를 노동자들이 인식했던 결과였다.
16일째인 27일, 평택 쌍용차동차 공장은 스산했다.
유명 회계 법인이 쌍용차 부채 180%를 500%로 회계조작해 정리해고의 빌미를 줬다는 이야기, 쌍용차를 인수한 중국 상하이차는 먼저 투자 약속을 깨뜨렸다. 기술만 빼간 채 회사는 방치되다시피 했다. 대규모 감원이 시작됐고 노동자는 단결했다. 이런 해고와 파업 과정에서 무려 22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해고는 살인'이란 말, 세상은 무서웠다. 자본은 더 무섭다는 말이 잘근잘근 씹히는 현장이었다.
밥알이 씹히지 않았다. 몹시 쓰렸다. 가족을 위해 걷는다고 생각한 것이 투쟁 사업장을 거칠 때마다 자꾸만 달라져 갔다.
"우리가 무너지면 전국 투쟁 현장이 모두 무너집니다."
걸으면서 내내 신아sb RG 발급을 생각했다. 신아sb는 협력업체 포함 3800명 근로자가 일했다. 이국철 회장은 1조 2000억 원의 빚을 내 회사를 빚덩이로 만들었다. 계열사를 통해 돈을 빼갔다. 감시를 소홀히 한 채권단도, 정부도 책임이 있지만, 이들은 선박 수주 의향서를 체결한 신아에 보증을 서주지 않고 있다.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 걷다가 억울해 뚝 서버리기도 했다.
수염은 길었고 얼굴은 탔다. 아들 성호(10)·완호(8)는 잘 있는지…. 사진을 본 아내(박춘녀·39)는 "당신 탈옥수 같아.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듣기 좋았다.
도보 16일째 5월 27일, 6명 중 막내인 정성남 동지의 목 편도에 고름이 찼다는 의사 진단을 들었다. 도로 위를 걸으며 매연에 목이 망가진 경우였다. 모두가 자는 새벽에 그는 택시를 타고 몰래 병원을 찾았다. 밤새 링거를 맞고 말없이 대장정에 합류했다. 그가 고마웠다. 마음은 무척 아팠다. 그는 계속 항생제를 복용했다.
아산-평택-오산-수원-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코오롱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했다. 어디를 가도 해고 노동자는 있었다.
'해고는 살인…. RG 미발급도 살인….'
서울로 들어서자 RG 발급에 대한 기대치는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청와대 앞에서 간이 집회에 참석하고 다시 걸어 한국무역보험공사로 왔다. 31일 오후 1시 40분께, 버스를 타고 올라온 신아sb 조합원 700여 명이 건널목을 가득 채우고 무역보험공사 앞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길고 긴 행렬이었다.
집회 도중 협상단이 한국무역보험공사로 들어가 협상을 시작했다. 대표단은 협상 결렬을 알렸다.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집회가 해산되자 울컥 치밀어 올라 주체할 수 없었다. 무역보험공사 화단으로 뛰어올랐다. "동지 여러분, 그냥 가실랍니까. 억울하지 않습니까. 나만 일하고 싶은 겁니까."
경찰이 지키는 무역보험공사 정문을 향해 내달렸다. 내달리는 순간 눈물이 터져 앞이 보이질 않았다. 전국에 투쟁을 이어가는 사업장의 사연과 신아sb 상황이 파노라마 쳤다.
그는 자신을 "분노할 줄 모르는 순진한 노동자였다"고 말했다. 600㎞를 걸어 채권단 앞에 선 신아sb 노동자, 제진성(40) 씨는 주 채권단인 한국무역보험공사 앞에서 절규했다. 분노하지 않으면 눈알이 뒤집힐 것 같다고도 했다.
"나는 배 만드는 일밖에 모르는 노동자다. ×새끼들아…. 나는 일하고 싶다…. RG를, RG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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