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나이 마흔 둘. 이름은 최영호, 아이 둘과 아내…. 11년 6개월을 한일합섬에 있었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는 직장을 떠나야 했다. 한일합섬은 파산했다. 30대 초반, 한일합섬을 떠난 그는 직장을 찾아야 했다. 직장을 잃은 동료들은 대부분 일용직으로 갔다. 통영으로 왔다. 21세기조선 노동자가 됐다. 승진을 했고 그렇게 먹고 살았다. 잘나가던 조선소는 어려워졌다.
한 여자가 있다. 이름은 최경숙, 나이가 얼마인지 모르지만 통영의 시인이다. '…용접공 불꽃 사위어가네/ 이천십일 년 십이월 K-10000의 가슴에 새겼던 별빛마저 잠든…아! 통영사랑 21C/ 그대 고백 받아줄 너른 가슴 가진 이 어디…'. 21세기조선 대형 크레인 'k-10000' 상부에 빛났던 '통영사랑 21C'라는 전광판 글귀가 꺼졌음을 안타까워한 시다. 시인은 한일합섬을 떠나 21세기조선으로 간 최 씨의 사촌누이다. 망해가는 동생의 일터를 바라보며 시를 썼다. 이 시는 조선소 기획기사를 쓰던 지난주 내게 전달됐다.
또다른 남자들이 있다. 21세기조선에서 일하던 1500명 중 떠난 1300명이다. 남자들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이 됐다. 주로 협력업체로 들어갔다. 실업자가 되거나 직종을 바꾸었다. 놀지 않으려 떠났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또 다른 남자가 있다. 김광철(가명). 김 씨는 최 씨가 다닌 한일합섬 과장이었고 괜찮은 인생을 살았다. 김 씨는 몇 년 전 21세기조선소에 왔다. 김 씨는 철판 깎는 일(사상공)에 지원했고 나이도 있었다. 그는 비정규직이었다. 최 씨와 김 씨는 21세기조선 교육장에서 만났다. 최 씨는 그때 신입사원 안전을 교육하는 강사였다. 직장 상사였던 김 씨, 그를 보는 최 씨는 안타까웠다. 얼마나 돌아 여기까지 왔나 싶었다.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자리를 옮기고 또 옮겼을 전 직장 상사를 보는 그의 마음은 아팠고 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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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21세기조선은 파산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남자다. 조선소가 망하면, 아마 그는 두 번째 회사마저 망하고 마는, 그런 아픔을 가질 수밖에 없는 남자가 된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뜨겁게 일한 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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