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조선소, 희망과 절망 갈림길에 서다] (5)신아sb·삼호·21세기…닮은 꼴 조선 노동자

삼호조선은 녹슬고 있다. 21세기조선은 희망이 없다. 신아sb는 꿈틀댄다.

조선소의 이상한 웃음과 이상한 표정들. 13일 조선소 체험을 빙자해 종일 노동자들의 애환을 졸졸 따라가 봤다.

통영 미륵도 조선소 3사, 공장은 지치기 쉬울 만큼 넓다. 거대 쇳덩이 아래에 사람이 있고, 속에 있고, 쇠 벽에 달라붙어 있다. 신아sb 본관 근처 전기 관련 일을 하는 전장운전 3반이 있다. 20여 년을 조선소에서 일한 박성환(43) 반장은 치질이 심했다. 경남도민일보 지난 4일 자 1면에 실린 신아sb 사진 중 파란 모자를 쓴 사람이 그다.

4월 말에 수술한 그는 서울 집회 당시 "그냥 흘러내리는 중"이라고 난감해 했다. 신호가 오면 10분을 넘기지 못했다.

신아sb 노동자들이 철판 작업을 하고 있다. 수주가 안 돼 일이 없는 타 부서 노동자들까지 합세해 일을 한다./허동정 기자

"솔직히 못 갈 상황….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는 회사라 생각해 참가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생리대 3장과 거즈(gauze)를 챙겼다.

"회사도 살려야겠고, 똥은 샐 것 같고…."

끝까지 집회 현장에 남아 'RG발급을 요구'했다. 일이 없어 현장이 자꾸만 멈추는 회사보다 그는 당장 뒤가 더 괴로웠다. 거즈와 생리대를 모두 썼다.

"궁딩이가 돌 바닥에 앉은 느낌이라…. 나이 사십에 똥구멍 때문에 내가 울었소."

장비운영팀 지원 1반은 회사 한복판에 있다. 이종훈 조장은 주말부부다. 배 부분 부분을 덩어리로 만든 블록을 운반하는 일, 그는 3인 1조로 일했다. 이 운반차 이름은 트랜스포터다. 딱 로봇으로 변신할 것 같은 이 차는 거대 블록 덩이를 싣고, 땅바닥에 납작 붙어 기어가듯 전진한다.

2008년 이후 회사가 선박수주를 못하자 그의 용돈은 20만 원이 됐다. 3년을 그리 살았다. 20만 원의 쓰임은 기숙사비 7만 5000원, 관리비와 수도료, 전기료 등이다. 술 한 번 마시지 못했고 겨울에 보일러를 튼 적도 없었다. 200만 원쯤 월급에 20만 원 용돈 떼면 자식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면 부산 세 식구가 먹고 살기도 빠듯한 돈, 그래도 벌어야 했다. 인터뷰를 위해 앉은 자리 뒤에 '이것도 지나가리라'란 글귀가 매직펜으로 적혀 있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 쪽팔리지만, 나 용돈 좀."

받은 돈 200만 원, 그는 아내 몰래 생존을 위해 이 돈을 썼다. 그런데 누나와 통화를 했는지 아내가 눈치 챈 듯했다. "용돈은 무슨." 그는 박박 우겨야 했다.

"아내가 울까 봐서…."

신아sb노조 박기정 사무장이 삭발 뒤 딸에서 받은 문자를 보이고 있다. 내용은 '아빠 집에 오지마'이다./허동정 기자

신아sb 노조사무실은 서쪽 끝에 있다. 금속노조 신아sb 지회 박기정(38) 사무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집회에서 삭발했다. 통영과 부산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사는 그는 마이너스 통장 1800만 원, 30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초등생인 아들 찬웅과 딸 시현이 있다. 아빠만 보면 뭔가를 사 달라던 딸은 최근 "회사 어렵잖아, 아빤 돈도 없잖아"라고 했다. '아빠, 힘내세요'란 편지를 써 전해준 딸, 통영으로 가는 길에 초콜릿 10개를 종이에 싸서 "배고플 때 먹어"라고 한, 춤에 끼가 있고 신동으로 불리는 딸이었다.

삭발 후 딸 시현과 영상통화 했다. 딸은 아빠를 보자마자 당황했고 "아빠!"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문자가 왔다.

'아빠 집에 오지 마.' 아빠의 삭발을 딸은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바지선을 끄는 배, 예인선을 모는 부서는 선거팀이다. 예인선 선장 고승학(51) 과장은 규정에 따라 진급하면서 노조를 탈퇴했다. 종업원지주회사 당시, 그는 예인선에 바지선을 끌고 한 번 부산행으로 150만 원 벌기 위해 폭풍도 마다치 않고 배를 몰았다. 그는 "회사를 진정 사랑했다"고 했다. 부산까지 한 달 15회를 운행했다. 거제대교 교각 사이 25m를 너비 22m짜리 물건을 싣고 지나다녔다. 거제대교를 지나지 않으면 기름 값 100만 원이 손해였다. 회사를 위해 죽음을 각오했다.

"난 우리 회사 포기 못 해요. 이 배도 포기 못 해요. 회사 망하면 이 배를 끌고 가든지, 빠져 죽든지 할 거요."

지난 10일 신아sb 본관 앞 천막 농성 현장에 주저앉았다. "내가 비조합원 대표로 삭발할 거다. 나는 신아가 망하는 꼴을 볼 수가 없어."

지난 2월 파산한 삼호조선은 멈춰 있다. KBS1 사극 〈무인시대〉 123회와 124회가 연속 방영 중이었다. 삼호조선 경비실 입구. 1년째 컨테이너로 출근하는 이들은 저 연속극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최소 다섯 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는 이들, 이들은 압류 딱지와 함께 사는 인생들이다. 1년 전까지 꽤 괜찮게 살았던, 삼호조선 협력업체 '사장님'들이다. 3억~17억 원의 미수금이 있는 이들은 매일 이곳으로 와 〈무인시대〉를 본다. 각 선박에 압류와 유치권 등 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해놓고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뭘 먹고 살아요?"

"라멘!"

딱 잘라 말하곤, "××놈들……." 이어, "삼호조선 사주가 범인 아니요. 부산에서 회사 잘 꾸려가고 있고 잘 먹고 잘 살잖아요. 이 큰 회사가 20억 때문에 부도를 내, 이런 데 오지 말고 그놈 취재해 조져야지…"

이들이 지키는 컨테이너, 그리고 바깥, 건조 중단된 삼호조선 4만 톤급 강선은 녹슬고 있었다. 가끔 선박 브로커가 찾아와 배를 살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장들의 말처럼 "택도 없는 소리"다. 2월 법적 청산한 삼호조선은 텅 비어 있다. 거리도, 상가도, 공장도, 사무실도. 경비실 옆 협력 업체 사장 서너 명이 무인시대를 보고 있는 컨테이너만 빼고.

21세기 조선 입구. 차량을 드나들 때 말고는 이 철문은 닫혀 있다./허동정 기자

21세기조선은 망해간다. 10m쯤 철문 입구는 성벽 같고, 언제나 닫혀 있다. 21세기조선은 현재 협력사 직원 130명 정도를 포함 250명 정도가 일한다. 현장은 넓은데 사람은 귀했다. 이 상태라면 21세기조선은 삼호조선과 똑같은 길, 청산절차를 밟을 게 뻔하다.

"현 경영진은 회사를 살리기보다 만들던 배를 다 만들고 접겠다고 생각을 하는 거지……."

노동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말, 이들은 담담해도 너무 담담했다.

"왜, 범시민대책위는 신아조선소만 살리려 하는지, 21세기조선은 조선소도 아닌 것 같다."

노조는 없고 노사협의가 있는 이곳, 그들의 푸념은 경영진에게 가 있었다. 능률도 의미도 없는 사업장, 21세기조선은 절망의 구릉이었다.

조선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을 밝힐 순 없다. 그는 질문에 짧게 대답하고 대신 길게 미래를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식당을 열어야 하는데…."

계속 그랬다. 질문하면 짧게, "그렇죠. 뭐" 정도일 뿐, "도롯가에 좋은 땅 없어요?"하곤 기자 얼굴만 쳐다봤다. 그의 표정은 다의적이고 복잡했다. 할 말을, 참아야 하는 것이 그의 직분인 듯했다.

지난 12일, 취재를 위해 21세기조선을 방문했을 때 한 노동자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질문에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당황해 했고 난감해 했다. 흑자색의 얼굴빛, 뭔가에 쫓기는 듯했고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13일, 다시 찾은 해거름의 21세기조선, 그곳은 페스트가 휘몰아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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