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초등학교시절 '고향의 봄' 노래를 모르는 한국인은 아무도 없을듯싶다, 나도 어린 시절 많이 불렀고 그냥 아름답고 좋아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모자라서 형들 따라 먼 산을 오가며 수없이 부르던 노래였다. 하지만,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야 이런 동시도 알게 되었다.

"지원병 형님들이 떠나는 날은 / 거리마다 국기가 펄럭거리고 / 소리높이 군가가 울렸습니다. (중략) 우리도 자라서, 어서자라서 / 소원의 군인이 되겠습니다. / 굳센 일본 병정이 되겠습니다."('지원병을 보내며' 1942년 8월 <반도의 빛>)

역사속에서 이원수가 친일 작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원수의 친일행적은 1940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동시 2편 자유시 1편 수필 2편 모두 5편의 친일 작품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에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는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이원수의 친일 동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표현했으며 자유시에는 농민시 형식을 빌려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의 완수를, 수필에서는 편지글 형식을 써서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이원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 지역에서는 이원수기념사업과 이원수의 문학 업적을 찬양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여러 일이 진행되고 있다. 창원시는 이원수와 '고향의 봄'을 창원시의 가치를 부여하고 도시브랜드화한다고 발표하고 철의 고장으로 공업화를 이룬 야철의 성지를 버리고 고향의봄 축제로 개명했다. 이에 더더욱 이원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 2억여 원의 국민돈을 지원하며 청소년들의 공부방인 고향의봄 도서관 내에 이원수 흉상을 설치했다.

어떤 이유로든 이원수 문제의 본질은 그의 친일 행적이다. 어떤 무엇으로도 친일 반민족행위는 정당화될 수가 없다. 필자는 창원시가 많은 예산을 지원하면서 과연 이런 일들을 해야 하는지, 우리의 청소년들에게는 과연 나라사랑이 무엇이라고 가르칠 것인가를 묻고 싶다.

/자흥(열린사회희망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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