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을 권리' 평등한 책방 열립니다'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내걸고 내달 개관…중증장애인에 우편·방문 대출 서비스

창원시 용호동 24-9번지 반지하. 20∼30권가량의 책 묶음 백수십 개가 40㎡ 남짓한 공간 한 구석에 어지러이 널려 있다. 어른 키 높이 만한 책장 십여 개는 자기 자리를 찾은 듯 가지런히 놓였다. 지난 4일 오후 경남장애인연맹(이하 경남DPI)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대여섯 명이 바쁘게 몸을 놀리고 있었다. 국제장애인단체인 경남DPI는 현재 사무실 겸 도서관을 꾸미는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도립미술관이 있는 도청 후문과 가까웠던 기존 사무실에서 거리는 그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면적이 조금 더 넓은 이곳으로 최근 이사를 하면서 지난 한 해 준비해왔던 도서관 개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남DPI 박태봉(60) 회장은 이날 "이르면 3월 말 문을 열려고 한다. 도서관을 알차게 꾸미려면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책 기증이나 후원을 적극 환영한다"고 말했다.

창원시는 다른 도시와 달리 마을도서관이 제법 많다. 1990년대 중반 마을도서관을 만들자는 시민사회운동이 벌어져 지금은 대부분의 읍·면·동에 1곳 이상 마을도서관이 생겨 집 가까운 곳에서 편하게 책을 빌려볼 수 있는 도시가 창원이다. 이런 도시에 도서관을 따로 만들겠다니, 속으로 고개가 많이 갸웃거려졌었다.

   
 
 
이런 속내를 읽었을까. 박 회장은 "우리가 만들려는 도서관은 마을도서관과는 다르다. 비장애인·장애인 구분 없이, 책을 읽고 싶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역할은 혼자 움직이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등에게 직접 책을 가져다주고, 또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책 읽는 운동을 벌이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중증장애인은 책을 읽고 싶어도 혼자 움직이기 어려워 일반도서관을 이용할 수가 없고, 일반적인 문화를 접하기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중증장애인은 대개 집에서 종일 TV를 보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TV를 일컬어 바보상자라고 하지 않느냐. TV에만 의존하면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다. 그래서 중증장애인에게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을 만들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그러면서 "책은 지혜와 용기를 심어준다. 장애인도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권리를 찾고 또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려면 장애인 스스로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책과 신문 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남DPI가 만드는 도서관 이름은 '새날도서관'이다. 새날도서관은 중증장애인을 위해 책을 우편 배달해주거나 집으로 직접 책을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현재 새날도서관은 서울과 제주에 1곳씩 있다. 한국DPI 산하 서울·제주DPI가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서울은 1993년, 제주는 1994년에 만들어졌다. 경남에선 뒤늦게 만들어지는 셈이다.

박 회장은 "경남에 DPI가 만들어진 건 지난 2006년 11월 한국DPI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으면서다"며 "3년 전부터 장애인·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교육사업을 벌여왔는데 지속적이고 스스로 하는 교육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 새날도서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증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방치되고 버려진 채 사육당하는 실정이다. 새날도서관은 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또 편하게 찾아와서 정보도 나누고 놀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한다"며 "한 번에 인식이 크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책을 통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남DPI는 새날도서관을 만들려고 지난 한 해 동안 책을 1만여 권 모았다. 경남DPI회원들이 지인이나 다른 단체, 도내 서점 등을 통해 기증을 받은 것이다.

1만여 권 중 너무 낡은 책은 고물상에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새날도서관에서 쓸모가 없는 책이나 똑같은 책은 이를 필요로하는 다른 곳에 주고 현재는 4000여 권 된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쓸 공간도 새로 마련했다.

하지만, 새날도서관을 개관하고 운영하려면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은 아직 여럿이 되어 보인다.

박 회장은 "창원은 자전거도시다. 그래서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거리는 자원봉사자를 통해 집으로 직접 배달을 가려고 한다. 그래서 책도 전해주고 말벗도 되어주려고 한다. 자전거로 갈 수 없는 거리는 우편배달 등으로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대목이다.

달마다 새책을 마련하려면 책을 기증받거나 따로 사야 한다. 또 새날도서관이 사랑방 노릇을 하려면 운영 경비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새날도서관을 꾸준히 후원하는 이들을 찾고 모아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기엔 힘에 부칠 듯하다. 그래서 자치단체에 지원해달라는 계획을 냈었는지를 물었다.

박 회장은 "지난해 창원시에 새날도서관 설립·운영 관련한 사업계획을 냈었다. 그런데 왜 만들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등 제출한 사업계획에 대해 시에서 물어오는 이가 아무도 없더라"면서 "허허허"하고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래도 올해 또다시 새날도서관 사업 계획을 내려고 한다. 그리고 문고로 등록해야 자치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기에 요건을 갖춰 문고 등록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경남DPI라는 단체를 보다 잘 알려면 www.dpikorea.org를 방문하거나 055-264-3289, 3290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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