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드리블 장애는 없다...체력·자긍심 향상 '효과만점'

겨울 문턱을 느끼게 하는 비가 오전 내내 내린 지난달 26일.

하지만 창원 한국전기연구원 잔디밭에서는 창단 2주년을 맞은 경남직장장애인축구단 '어시스트'가 한구전기연구원·경남에너지·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 직원팀과 친선 경기를 펼치며 뜨거운 열기로 차가운 비를 뚫고 있었다.

   
 
 
'어시스트'는 지난 2004년 3월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이 직장에 다니는 장애인들의 주말 여가 선용과 건강 증진을 위해 추진한 사업.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함께 본인의 의지 부족도 높은 벽이 되고 있는데다, 특히 주말 관리·몸 관리가 힘들다는 판단에서 여가활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지체·시각·청각 장애인 주축..."이젠 받기보다 베풀 것"

멤버를 모으는 작업부터 시작해 8개월여 준비 기간을 거쳐 11월 창단했다. 현재 팀원은 감독과 코치를 포함해 20여명.

하지만 팀원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격렬한 신체 움직임이 필요한 운동이다 보니 팀원을 뽑는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복지관에서 직업훈련을 하던 정신지체 장애인까지 팀원으로 합류시켰다.

보통 장애인 스포츠팀은 단일 유형의 장애인으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인 장애인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농아·정신지체 등 한가지 유형의 팀으로만 가능하기 때문. 하지만 어시스트는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지역 사회의 '자원'이 되려는 취지로 시작했기 때문에 지체·시각· 청각·정신지체 등 팀원들이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다.

경남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있는 김형준 씨는 "이들은 대부분 경증 장애로,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복지사는 그 자신이 어시스트팀의 선수로 뛰고 있는 동시에, 복지관 직원으로써 어시스트를 지원하고 있다.

팀원들은 날씨가 추운 1∼2월을 제외하고 3∼12월에는 한달에 2회 연습을 한다.

어시스트 팀의 알아주는 스트라이커는 주장인 곽기훈 씨. 곽 주장은 시각 장애인이지만 센터포드로 맹활약하고 있다.

회원들 중 가장 의욕적인 선수로 꼽히는 박순열 씨는 정신지체에 신체장애까지 있다. 평소 걸음걸이도 넘어질 듯 불안했던 박 선수는 창단멤버로 어시스트와 함께 하고 있는데, 의욕만큼은 프로 선수 못지않아 그 누구도 그의 연습을 막을 수 없었다.

뛰는 것이 힘들어 평소 연습할 때 운동장 뛰기에서 빼주려고 해도 박 선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려 운동장을 뛰고야 만다. 처음에는 1∼2바퀴도 힘들어하던 박 선수였지만 요즘은 경기 전 몸풀기 3∼5바퀴와 경기 후 운동장 돌기를 다 해내는 등 체력이 많이 향상됐다.

창단 2주년을 맞아 친선경기를 앞두고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선수단.
경기를 할 때 선수 교체를 통해 모든 팀원이 그라운드를 밟게 하는 어시스트팀. 지난해 1주년 경기 때 경기 투입 5분도 안돼 탈진했던 박 선수는 올해는 한참을 뛰어도 거뜬할 정도로 2년만에 눈에 띄게 달라졌다.

이러한 박 선수의 모습은 다른 회원들을 자극하고 있다. 또 선수가 아닌 다른 장애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 최근 들어 당당하고 자긍심을 갖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축구단을 시작하면서 유니폼·스포츠용품 등을 준비할 때 만난 사람이 바로 지금 코치를 맡고 있는 이지섭 씨다. 스포츠용품점을 운영하는 이 코치는 지역 생활체육의 축구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데, 발이 넓어 감독도 소개하고, 다른 후원회원도 소개하는 등 어시스트팀의 든든한 지주 노릇을 하고 있다.

감독은 전 청소년 국가 대표였던 이호주 씨가 맡고 있다. 경남축구협회 경기 이사로 있다 현재는 경남FC의 경기진행팀에서 일하고 있는 이 감독은 바쁜 와중에도 어시스트팀을 위해 열심히 자원봉사하고 있다. 축구에 대해 배운 적이 없이 '그저 좋아서 공만 차던' 어시스트 팀원들에게 이 감독은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축구'를 가르친다.

주위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복지관 예산 말고도 우리은행 측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우리은행 여자프로농구단 한새농구단의 김계령 선수.

국가대표이기도 한 김 선수는 '사랑의 리바운드'를 통해 2년째 어시스트팀을 후원하고 있다.

경남에너지와 한국전기연구원 등도 창단 당시부터 정기적으로 어시스트팀과 친선경기를 하며 후원금을 전달하고 있다.

복지관의 신정희 제노베파 관장 수녀는 훈련할 때마다 운동장을 방문해 팀원들을 격려하는 등 안팎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어시스트.

팀원들은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물론 지역 사회에서 다른 축구팀과 몸으로 부딪혀 스스로 편견을 깨고 있다는데서 자긍심을 갖고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개인적으로 만나면 거리감이 있지만 운동을 통해 접근하면 어느새 해소가 되죠. 장애인들이 축구를 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신기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패스를 하고 어떻게 저런 기술을 구사하느냐 하는 거죠. 하지만 곧 편견의 벽은 걷히고 호응을 해줍니다."

어시스트팀이 한가지 아쉬운 점으로 꼽는 것은 공식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대회는 장애 유형 제한 때문에 출전할 수 없고, 비장애인 대회는 실력 차 때문에 힘들다.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훈련이 어렵죠. 지금은 주로 친선경기로 실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내실을 다지고 좀더 실력을 키워 꼭 공식 대회에 나갈 겁니다."

그런데 창단 2주년 기념 친선 경기에서는 "다른 팀들이 많이 봐줬는지 모두 비겼다"며 김 복지사는 환하게 웃었다.

어시스트의 내년 계획은 공공기관·큰 기업 등 지역 사회의 여러 축구팀과 보다 많은 경기를 치르며 교류하는 것이다.

"또 하나, 내년에는 농아인 축구대회 등에 참가해 경기용품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이제는 받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지역 사회의 소외 계층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