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소득격차… 재난이 재앙으로 변해

뉴올리언스를 지켜보는 미국인들의 심정은 참담하다. 힘을 모아 최악의 재난을 극복해도 부족할 판에 분열과 혼돈이 극에 달했다.

불특정 다수에 발생하는 재난은 통상 사람들을 뭉치게 만든다. 재난을 당하지 않은 이들은 심적, 물적으로 고통을 분담한다. 그래서 재난은 무섭지만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종종 인간승리의 드라마로 연출된다.

재난이 재앙으로 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뉴올리언스 재앙은 인종차별과 소득격차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당국이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린 것은 카트리나가 상륙하기 하루전인 지난달 28일. 피난행렬로 외곽도로에는 차가 꼬리를 물었다. ‘가진 자’들의 피난행렬을 남은 이들은 불안어린 눈초리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뻔히 닥쳐올 위기속에서도 대피하지 못한 이유는 다름아닌 돈문제. 50대의 던바 부부는 한달 벌어 한달 먹고 산다. 차는 물론 없다. 대피령이 내릴 당시 이들 부부 수중에 있던 돈은 400달러. 도시를 벗어나려면 차렌털 등에 수천달러가 든다. 결국 남아서 자켜보는 수 밖에.

같은 재난도 없는 이들에게는 더 심하게 다가온다. 뉴올리언스는 빈곤층이 많고 흑인 비율도 높은 도시다. 사상 최악의 허리케인이 덮쳤고, 구호의 손길은 더뎠다. 떠다니는 시체들은 공포심과 생존욕구를 자극했고, 빈 가게는 코앞에 있다. 난무하는 약탈과 폭력은 경찰마저 손들게 만들었다.

뉴올리언스 사태는 현상 자체도 충격이지만, 미국 사회구조가 재난을 재앙으로 바꿔놓을 근본적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줬다. 침략적 기름전쟁을 중동 민주화로 포장할 수 있는 최강대국이지만 내부적으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위험 사회라는 점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빈부격차는 선택의 문제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자본주의의 본산 월스트리트는 늘 위만 쳐다본다. 수백억 달러의 인수합병(M&A)이 이뤄지고, 수완좋은 최고경영자(CEO)는 수천만 달러의 연봉을 챙긴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운 주주가치는 스톡옵션과 배당을 통해 금융자본과 가진 자의 금고를 풍성하게 만든다.

주주이익 극대화는 비주주들에게는 이익 극소화의 다른 이름이다. M&A에는 구조조정이 뒤따르고, 손쉬운 대상은 인력이다. 사모펀드 등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M&A는 단기수익을 노리고 과감한 비용절감을 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유연한 노동시장을 자랑하는 미국에서 흑인과 소수인종은 임계선상에 서 있다.

지난해 미국의 빈곤층은 3700만명, 전체 인구의 12.7%로 4년 연속 증가했다. 인종별로는 흑인계의 평균 소득이 가장 낮다. 같은 회사를 다녀도 CEO와 근로자의 수입은 하늘과 땅 차이다. 지난해 CEO들의 평균 수입은 1180만달러로 생산직 노동자보다 430배나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스톡옵션으로 돈방석에 앉는 CEO들이 늘어났다. 기업의 수익이 한정돼 있다면 CEO와 주주가 가져가는 이익만큼 비주주 종업원들의 호주머니는 가벼워진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은 크게 늘어났다.

빈부격차의 심화는 사회적 갈등요인으로 발전한다. 배 아픈 걸 못참는다는 건 인지상정일 게다. 잠재된 불만은 치안부재 등 임계상황에 다다르면 뇌관으로 변하고 만다.

뉴올리언스주 사태에서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할 부분은 우리나라에서도 신자유주주의 분위기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IMF이후 자본시장은 꾸준히 개방됐고, 외국 금융자본이 장악한 기업의 CEO들은 주주이익 극대화와 고용 유연화에 누구보다 충실하다. 일부 학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이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라기 보다 기업의 이익을 빼내가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빈부격차와 양극화는 참여정부의 의욕적인 추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확대됐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분열과 반목은 심화되고 있다. 뉴올리언스의 재난이 재앙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보기 딱하지만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용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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