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히로시마'합천서 울린 평화 목소리
원폭 피해 2세, 생전 부모 고향서 환우들과 교류·실태 알려
일본 '피폭자청년동맹'도 참석 "전쟁 반대 공동행동 펼쳐야"

히로시마 원폭 피해 2세이자 인권운동가인 김형률(1970~2005)을 알게 된 건 지난해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리틀보이 12725>(김지곤 감독, 2018)를 통해서였다. 어릴 적부터 학교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약했던 이유가 어머니가 히로시마에서 당한 원폭 피해의 유전병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원폭 피해 2, 3세 실태를 알리는 일에 이바지한 이다. 영화 촬영 기간 창원 지역 미술가와 음악가가 참여한 부분이 있기도 하고, 부산국제영화제 초대작이기에 영화 담당으로 몇 번 취재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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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김형률 14주기 추모제에서 일본 전국피폭자청년동맹 고바야시 하츠에 씨(앞에 선 이들 중 오른쪽 흰 옷)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지난 25일 오후 3시 김형률 14주기 추모제가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렸다. 지난해까지 13년간 부산민주공원에서 진행하던 행사다. 어머니, 아버지는 합천이 고향이지만, 김형률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고,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납골함이 부산민주공원에 있었다.

2017년 4월 5일 부산민주공원에 있던 김형률의 납골함이 합천 묘역으로 옮겨진다.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리고 2년 후 합천에서는 처음으로 추모제가 열린 것이다. 추모제는 앞으로 계속 합천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형률과 합천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라고 불린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노역을 당하거나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히로시마로 갔다가 원폭 피해를 본 이들 중에 특히 합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원폭 유전병을 자각한 김형률은 자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찾아 원폭 2세들과 만났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2005년에는 처음으로 국가인권위가 원폭 2세 피해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 25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김형률 14주기 추모제에서 일본 전국피폭자청년동맹 고바야시 하츠에 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그리고 2010년에는 합천에 국내 최초로 원폭 피해 2세 환우 쉼터인 합천평화의집이 개관한다. 이 모든 일들이 김형률이 노력한 덕분이었다.

"김형률은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을 거점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마음은 항상 합천에 와 있었습니다. 합천을 중심으로 환우회를 결성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니 합천에서 추모제를 이어가는 게 마땅합니다."

전진성 김형률을 생각하는 사람들 대표(부산교육대 교수)의 말처럼 모두 이제야 추모제가 제자리를 찾아왔다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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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열린 김형률 14주기 추모제에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전 김형률추모사업회 회장)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 /이서후 기자

추모식에서 특히 일본 전국피폭자청년동맹에서 온 고바야시 하츠에 씨의 추모사가 인상적이었다. 이 단체는 일본 원폭 피해 2세 모임인데, 일본에서는 제법 강경하게 반전 평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모든 나라의 원폭피해자들이 김형률 동지의 삶을 배우고, 그가 살고 싶었던 삶을 따라 단결해야 한다"며 "우리가 공동으로 전쟁을 막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고 했다.

김형률의 삶을 다룬 영화 <리틀보이 12725>는 전국 곳곳에서 초대를 받아 상영되고 있다. 특히, 지난 23~26일 부산에서 열린 제10회 부산평화영화제에서 최고상인 꿈꾸는 평화상을 받았다.

"나의 병은 역사적인 것이다." 김형률이 원폭 유전병을 자각한 후 한 말이다. 그리고 이후 원폭 피해자를 위한 그의 삶 역시 역사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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