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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노하우요? 조직하지 않는 게 조직 비결이죠

[독자와 만나다-1 걷는 사람들의 모임]
1999년 11월 첫발 뗀 사람들
회비도 회원 명부도 없지만
지역 구석구석 매력 느끼며
여럿이 함께하는 기쁨 충만
"언론의 기본은 제보 수용
경남도민일보도 성찰해야"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19년 02월 01일 금요일

▲ '걷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다구마을 송문용 회원 처가에서 굴구이를 먹으며 뒤풀이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창간 20년 〈경남도민일보〉와 함께했던, 함께하고 있는 독자들을 지면에 모셨다. 서슬 퍼런 '감시자의 눈'을, 때로는 죽마고우의 막역한 '정'을 기대하면서. 그들이 신문에 대해 담담하게, 혹은 매몰차게 전달할 제안이 창간 20년 이후 〈경남도민일보〉의 방향타가 되지 않을까.

◇혼자서 때론 여럿이서

올해 스무 살이 된 〈경남도민일보〉처럼 창원 '걷는 사람들의 모임'도 스무 살이다.

2000년 11월 모임이 만들어져 열아홉이라지만, 1999년 11월에 모임을 잉태한 첫 발걸음을 했다. 창립멤버였던 박영주(59·지역학자), 송창우(51·시인), 심경애(47·회사원) 씨가 그때부터 걸었다. '숨은 보물'로 표현된 창원시 진동면 광암 바닷길을 지난 20일 함께 걸었다. 김형준(60·치과 원장) 씨 등 창립멤버 4명을 포함해 회원 19명이 그 길을 희한하게 걸었다. '우르르' 몰려 걸을 줄 알았는데 '띄엄띄엄' 걸었다. 혼자서, 둘셋이서, 대여섯이서 '제 맘대로' 걸었다.

▲ 걷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 멤버인 박영주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그래서 그랬나? 모임의 스무 살 성장 비결을 물었는데, 창립멤버들 말이 똑같았다. "자유지요 자유. '비조직'입니다." "어떤 조건도 구속도 없습니다." '매월 셋째주 일요일 오전 11시', 걷는 시간만 정해져 있을 뿐 회칙도, 회비도, 회원 명부도 없다. 당연히 회원 관리는 없다. 점심 도시락만 각자 준비하면 된다.

'제 맘대로' 걷는데 대해 송창우 씨가 덧붙였다.

"혼자 걷는 게 쓸쓸한 맛도 있고, 생각하기도 좋지요. 모임에 오면 처음엔 혼자 빨리 걷다가 그게 재미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그 다음엔 속도를 늦추죠. 5~6개월 같이 걸으면 사람들이 적응을 합니다."

▲ 걷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 멤버인 김형준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모임에 합류한 시기가 다 다르거든요. 그러니 혼자 걷다가, 삼삼오오 붙었다가, 떼를 짓기도 하고 그렇죠. 자기 편한 대로 하는 거죠."

그런데 왜 걸을까? 그것도 번거롭게 뭉쳐서 말이지. 박영주 씨가 아주 쉽게 말했다. "그냥 좋아서요!"

너무 짧았다고 생각하셨나? 좀 더 덧붙였다.

"저는 많이 걷습니다. 일주일 넘게 걸려 전남 강진까지 걷기도 했고, 해마다 네팔 트레킹도 합니다. 이 모임 만들기 전부터 많이 걸었어요."

"함께 걷는 게 번거롭지 않나요? 어떤 매력이 있죠?"

▲ 걷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 멤버인 심경애(왼쪽), 송창우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같이 걸으면 좋습니다. 휴식이 되거든요. 그래서 오전 11시부터 걸어요. 늦잠 자고 오시라고. 이 모임 모토가 '걷는 즐거움, 걷는 자유'거든요."

"한 20년 걸었으니 함께 걷는 데 일가견이 생겼습니까?"

"1년 중 어느 계절에 어디를 걸어야 할지 알게 됐지요. 사시사철 풍경이 다릅니다. 여름에는 주로 산이나 계곡으로, 봄가을에는 강이나 들판으로, 겨울에는 바다로 가게 됩니다. 그게 주변 경치를 즐기기에 훨씬 낫거든요."

◇가슴 뻥 뚫리는 순간

'걸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경남대 앞에서 출발한 71번 버스가 진동면 야촌마을에 섰고, 낯선 야촌 들판을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런 게 보였다. 진주 강씨 열녀비, 잘생긴 스티로폼 허수아비, 수십년 전 용도를 다한 콘크리트건물 벽의 낙서 "Don't worry be happy" …. 그런 게 사람 마음을 아주 한가롭게 한다.

참석자들 걸음도 자유로워졌다. 혼자 가는 사람, 무리를 지어 가는 사람, 띄엄띄엄 떨어져 가는 사람…. 자기들 마음대로였다.

어느새 광암해수욕장 부근, 바닷바람이 매웠지만 사람들은 등대까지 길게 걷고 돌아왔다. 매운 추위를 잊게 한 건, 정말 환상적으로 반짝거리는 진동만의 '윤슬'이었다.

그리고 그 뒤, 박영주 씨의 '숨은 보물'이 펼쳐졌다. 광암해수욕장에서 바닷가 쪽 고개 너머 주도마을부터 중촌, 맞은편 수우도 사이 해안길을 일러 박영주 씨가 이렇게 비유했다.

"마산 해안 중에서 자연 해안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에요! 잘피가 여기 살아요. 해양생태계의 기준 같은 존재죠. 바닷가부터 저 안쪽 갯벌 끝까지 생태계 층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해조류-갯벌-갯잔디-갈대-왕버들-해송, 이런 순서로."

"이렇게 자연해안이 완벽하게 보존된 곳을 이대로 둘 수는 없어요! 인근 구산해양관광단지처럼 자본의 손길이 곧 스며들 겁니다. 자본이 침투하기 전에 자치단체가 조치를 해야 합니다. 공유지로 매입해 갯벌생태학습장으로 조성하는 겁니다."

그렇게 진동면 야촌부터 다구마을까지 3시간 넘게 걸었다. 윤슬 같은, 숨은 보물 같은 구간이었다. 하지만 내 답답한 가슴을 뻥 뚫리게 한 건 그 다음이다.

다구마을 송문용 회원의 처가에서 굴구이를 먹고 있을 때였다. 송 씨 장모님과 부인이 정성스레 구운 굴구이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 기울이는 순간이었다. 따뜻한 햇살보다 더 따스한 기운이 온 몸을 휘감았다.

"그래 이 맛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어울리는 맛이다."

이건 내 마음의 소리다.

걷는 사이 틈틈이 〈경남도민일보〉 이야기가 나왔다.

▲ 진동만 등댓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 /박영주

◇경남도민일보 이야기

"이 모임에서 보행권 운동을 해왔다. 일본 히로시마, 후쿠오카까지 갔다 왔다. 거기서 사람들이 걷는 데 필요한 게 뭔지 알았다. 보도가 있어야 되고, 휠체어길이 있어야 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시청 공무원들에게 해도 안 통한다. 접근 자체가 달랐다. 그들은 걷는 행위를 보행권 차원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 문제로 접근했다. 캠페인을 해도 '에너지를 아끼려면 짧은 거리는 걸어서 다닙시다' 식이었다."(김형준)

"경남도민일보가 기본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제보를 수용하는 것은 언론의 기본이다. 경남도민일보가 기본을 잊은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보행권에 대해 기본을 갖추지 못한 공무원들과 경남도민일보가 뭐가 다른가?"(김형준)

"걷는 사람들의 모임과 경남도민일보는 출발이 비슷하다. 공통점도 있다. 꾸준하다. 발전하고 있다. 둘 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심경애)

"나는 마산 출신이다. 도시의 골목, 아파트단지는 익숙해도 농촌 들판은 익숙하지 않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는데, 한 달에 한번 걸으면서 자연을 접하게 된다. 그게 너무 좋았다." (심경애)

선문답 느낌이었지만, 그런 역할을 해달라는 게 아닐까?

"잘하고 있지요 뭐…."(박영주)

그는 계속 같은 말을 했지만, 정작 할 말이 남았다.

"이 길이 제발 자연해안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경남도민일보가 기사를 써주세요."(박영주)

"시내버스 노선도가 이게 뭡니까? 중간중간 빠진 정류소가 수두룩한데…. 이거 쫌 기사로 써요!"(박영주)

다구에서 경남대까지 시내버스 63번을 타고 돌아올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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