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결보다 우리 안 차별문화 직시해야
불평등한 '갑을관계'속 성폭력 고발 사회운동 이어져
1호 법안 원안서 후퇴…모두의 안전·평등 공론화 필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바람이 유난히 거셌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하면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았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면서 미투 운동은 법조·문화예술·대학·종교계·정치권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강타했다. 1년간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놨을까? 그리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는 어떤 것인지 짚어본다.

◇권력형 성폭력 수면 위로 올라 = 미투 운동은 그동안 만연해 온 '권력형 성폭력'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미투 운동은 기본적으로 '갑을 관계' 문제이기도 하지만 남성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회 구조에서 여성을, 정확히는 '상대를' 힘으로 억누르는 게 남성성 증명으로 여겨지던 남성 우월주의를 근거로 하는 젠더 문제로 보아야 한다.

특히 한국 미투 운동 키워드는 '권력형 성폭력'이다. 고은 시인을 비롯한 연출가 이윤택·오태석 등 문화예술계 거목들이 성 추문 폭로로 지탄받는 인물로 전락했다. 김해 극단 번작이 조증윤 대표 역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청소년강간 등),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추행) 혐의로 처벌 받았다. 그런가 하면 정치권으로 번진 '미투 운동'은 유명 정치인들을 낙마시켰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대권 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수행비서가 "네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함에 따라 30년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6·1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 중이던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부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제도 마련에 나섰다. 여성가족부는 '공공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특히 권력형 성범죄 처벌도 강화됐다. 업무상 위계, 위력에 의한 간음죄의 법정형은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서 7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상향됐고, 추행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됐다.

◇'스쿨미투'와 '페이미투' 계속 = 올해 미투 운동이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다면 내년에는 학교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와 남녀 임금격차가 운동의 의제가 될 전망이다.

스쿨미투는 학내에서 벌어지는 차별, 혐오,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페이미투는 심각한 남녀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하는 사회적 운동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성별임금격차는 36.7%다. 남성이 100만 원 받을 때 여성은 같은 일을 하고도 63만 원만 받는 셈이다.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여성단체연합은 내년 두 가지 미투운동을 적극 전개할 예정이다. 미투운동이 사회적 문제를 제기했고, 이제는 대다수 국민이 미투운동의 당위성을 이해하고 있다"며 "단순한 성 문제를 벗어나 일상에서 일어나는 차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미투가 위드유(#With You, 당신과 함께한다)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 지난 8월 미투경남운동본부가 창원지방법원 앞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1심 선고 무죄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손팻말을 붙이고 있는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모두의 문제로 인식해야 = 대책은 여전히 미비하다. 제도개선을 비롯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논의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법안 통과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미투 운동 후 국회에 '미투 법안'이 쏟아졌다. 지난 2월 정춘숙(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미투 1호 법안' 여성폭력방지 기본법이 지난 7일 통과됐다. 이 법안 주요 내용은 △여성폭력 개념 규정 및 피해자 지원·보호체계 강화 △여성폭력방지 기본계획 및 연도별 수행계획 수립 근거 마련 △일관성 있는 국가통계 구축 △여성폭력 특수성 반영한 피해자 지원 시스템 마련 △여성폭력 예방 위한 폭력예방교육 체계 재정립 등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도, 남성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단체는 여성만을 피해자로 한정한 것과 원안보다 후퇴한 점을 비판했다. 처음 발의한 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여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시행한다'고 했지만 국회를 통과한 법은 '수립·시행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윤 처장은 "미투와 함께 법안이 생겼으나 반쪽짜리에 그친다. 또 법안을 떠나 제도나 체제 개선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지극히 적다. 법은 최소한의 보장책이지 최적의 결과물이 아니다"며 "각 직장과 조직 등에서 제도 마련에 나서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소영 강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여성 인권에 관한 의식보다 법이 앞선 역설적인 사례"라며 "엘리트 중심으로 법이 먼저 마련되다 보니 이를 적용할 젠더 감수성이나 실천의지가 따라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법이 만들어졌지만 성폭력이나 육아부담, 고용차별과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법과 현실의 괴리만 커지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젠더 전쟁'으로 이어지는 성 대결 문제도 숙제다. 전문가들은 소모적 논쟁 뒤에 가려진 모두의 안전과 성평등 요구가 공론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공론화를 위해서는 오랜 역사 동안 남성 중심으로 기울어진 논의보다 여성이 실제 겪는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여성이 제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한 일시적 반동이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실제 나타나고 있지만 그렇다고 논의를 포기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도 "사회적으로 양측의 의견과 주장을 중재할 방법이 없어 갈등이 벌어지는 사안마다 의견이 양쪽으로 극단화되기 쉽다"면서 "대표적인 성차별 문제인 일자리 문제나 임금 문제 등 다양한 사안들이 제각기 사안의 특성에 맞는 논의가 필요한데 이를 젠더 문제로만 국한하면 오히려 해결해야 할 핵심 문제를 덮어버리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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