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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백석·김수환… 추억이 깃든 마산을 걷다

■ <도시의 얼굴들>과 함께하는 마산 산책
허정도 저 <도시의 얼굴들>마산을 거쳐간 16인의 얘기
행적·장소 추적해 책으로 옛 거리·풍경 자세히 담아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8년 11월 30일 금요일

지금 창원시 마산합포구 불종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카페 3층입니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아직 노란 잎을 덜 떨어뜨린 것만 빼면 거리는 연말 분위기를 낼 준비를 끝낸 듯하군요. 책 한 권을 들고 나선 길입니다. <도시의 얼굴들>(경상대학교출판부, 2018년 11월). 본업인 건축가보다 도시와 도시의 역사 전문가로 더 활약하는 허정도 박사가 직접 발품을 팔아 쓴 것입니다. 역사 속 인물이 걸었던 마산의 옛 거리와 그 풍경을 자세하게 담았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들이죠. 이 책을 들고 가장 먼저 불종거리를 찾은 것은, 바로 제가 좋아하는 불세출의 모던보이 시인 백석이 젊은 날 이 길을 걸어 지났기 때문입니다.

◇백석 시인이 걸어간 불종거리

"1936년, 시인 백석이 마산 불종거리를 걸었다. 통영 처녀 란(蘭)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그는 그해 이 길을 1월과 2월, 12월, 모두 세 번을 걸었다. 백석의 길은 구마산역(지금의 육호광장)에서 불종거리를 거쳐 구마산 선창(지금의 마산어시장 내 농협 남성동지점)까지 약 1㎞의 비포장 흙길이었다." (154쪽)

▲ 마산 불종거리. 1936년 시인 백석이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걸어서 이곳을 지났다.

당시 백석은 마산역사를 나와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불종거리를 따라 걸어 내려갔습니다. 경성(지금의 서울) 바닥에 유명했던 멋쟁이였지요. 남들이 30원짜리 양복을 입을 때 200원짜리를 사 입었고, 양말도 비싸고 좋은 것만 골라 신었다지요.

"역에서 나와 불종거리에 들어선 백석의 헤어스타일은 여전했다. 올백으로 넘긴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통의 하숙집에서 광화문을 지나 조선일보까지 걸어 출근했던 이 '모던보이'의 멋진 모습이 문인들 입에 오르내릴 때였다." (163쪽)

▲ <도시의 얼굴들> 161쪽에 실린 구마산역 사진.1936년 시인 백석이 통영으로 가는 배를 타려고 이곳에서 기차를 내려 불종거리로 걸었다.

허 박사는 육호광장에서 지금의 코아양과까지 논길이었을 거라고 합니다. 지금 삼성생명 건물 지나면 있는 큰 주차장은 일제강점기 마산형무소 건물이 있던 곳입니다. 백석에게는 아마 대부분 낯선 풍경들이었을 겁니다.

"선창에 도착한 백석이 바다를 바라보니 시야가 확 트였다. ㄷ 자로 오목하게 들어와 있는 호안은 총길이 200m쯤 되는 석축이었다. (중략) 선창가에는 크고 작은 상점들이 줄을 지어 있고, 사람들도 북적거렸다. 파는 사람이 누구인지, 사는 사람은 누구인지, 선창이 낯설었던 백석은 구분하지도 못했다." (171~172쪽)

◇김수환 추기경의 미사길

카페를 나와 이제는 장군동으로 향합니다. 책을 따라 김수환 추기경의 흔적을 쫓으려는 겁니다. 1966년 설립된 천주교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이 바로 김 추기경이었습니다. 외가가 있어 마산과 인연이 깊던 분이시죠. 교구장 재임은 2년으로 길진 않지만, 김 추기경은 나름으로 마산을 사랑했고, 마산을 위해 힘써 정성을 바쳤다고 했습니다.

"주교가 머물렀던 주교관은 1949년에 재개교한 성지여중고 교정에 있었다. 마산교구가 창설되면서 급조한 주교관이었다. (중략) 주교는 사목 방문으로 바쁘고 힘든 날들을 보냈다. 마산교구가 경남 전역에 이르도록 넓었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중략) 주교가 탔던 전용차는 짙은 초록색 미제 윌리스 지프였다. 운전은 완월동 성당 신도였던 정태조 선생이 했다. (중략) 당시 마산에는 모두 세 대의 미제 윌리스 지프가 있었다. 주교 외에 마산방직과 남성모직 사장이 이 차를 탔다." (331~332쪽)

▲ <도시의 얼굴들> 331쪽에 실린 미제 윌리스 지프. 천주교 마산교구 초대 교구장 시절 김수환 추기경이 타고 다닌 전용차로 운전기사를 하던 정태수 씨가 소장하던 것이다.

주교가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주교좌 성당이라고 합니다. 1966년부터 1979년까지는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 남성동에 있는 남성동성당이 주교좌 성당이었습니다. 책은 김 추기경이 주교관에서 남성동 성당으로 미사를 하러 가던 길 풍경을 세세하게 그려냅니다.

▲ 1966년부터 1979년까지 천주교 마산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남성동 성당. 김수환 추기경이 미사를 집전하던 곳이다.

"주교를 태운 윌리스 지프는 성지여중고 정문을 나와 마산시청(지금 마산합포구청) 쪽으로 내려갔다. 곧바른 비포장 길이었다. (중략) 털털거리는 비포장 길이 끝나고 시청 앞부터는 매끈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길(지금 3·15대로)이었다. 길이 넓어졌고 차량도 많지 않았다. 신호등도 없던 때였다. (중략) 대흥주조장을 지나면 곧 성당이었다. 길에는 부림시장 어시장을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직 합포로(지금 어시장 앞 간선도로)가 뚫리기 전이었다. 성당 앞길이 간선도로여서 부산 가는 버스가 이 길로 다녔다. 비포장이라 비가 오면 시커멓게 진창이 되는 길이었다."(333~334쪽, 338쪽)

◇마지막 왕 순종의 행차길

이제 저는 마산종합사회복지관 앞 도로에 서 있습니다. 1909년 1월 10일 대한제국 순종 황제의 마산 행차를 따라온 겁니다.

"옥차가 도착한 마산역(지금 마산합포구 월포동 월포벽산블루밍아파트)의 역사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단순한 직사각형 구조에 벽에는 목재 비늘판을 붙였고 지붕은 일식 기와를 얹은 단층 건물이었다." (21쪽)

▲ <도시의 얼굴들> 35쪽에 실린 마산이사청 사진. 1909년 1월 10~12일 마산을 찾은 순종이 묵었던 곳이다.

당시 순종은 2박 3일 마산에 머물렀습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조선시대를 통틀어 임금이 마산에 올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었겠지요.

"왕이 마산포에 온다는 소문이 나자 원근 각지에서 나라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인파의 혼잡을 피하기 위해 마산포 입구부터는 관민이 열을 지어서 왕의 행렬을 맞았다." (30쪽)

▲ 1909년 1월 10~12일 마산을 찾은 순종과 이토 히로부미 조선통감이 묵었던 마산이사청과 관사가 있던 곳. 마산종합사회복지관 자리에 관사가, 바로 앞 경남대 평생교육원 자리에 이사청이 있었다.

지금 경남대 평생교육원이 들어선 자리가 마산이사청이 있던 곳인데, 당시 순종의 숙소로 쓰였습니다. 원래는 일본영사관이었는데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이사청으로 바뀝니다. 침탈의 첨병이 되던 곳이었지요. 순종의 마산행에는 이토 히로부미 조선통감이 함께합니다. 이토는 지금 마산종합사회복지관 자리에 있던 마산이사청 관사를 숙소로 썼습니다. 마산에 도착한 이튿날 순종은 마산이사청에서 길을 내려가면 바로 나오는 세관에서 일본 군함을 시찰합니다. 이른바 관함식이란 것이지요.

"왕의 관함식을 구경하기 위해 의관을 갖추고 부둣가로 나온 향리와 유지들이 적지 않았다. 난생처음 보는 관함식이었다. 경이롭고 두려운 눈으로 일본 군함에 오르는 왕을 지켜봤다."

책은 당시 순종의 마산행차 풍경을 일정에 따라 자세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이외에도 <도시의 얼굴들>에는 한글학자 이극로, 여장군 김명시, 소설가 나도향, 아동문학가 이원수, 만석꾼 옥기환, 시인 임화와 지하련, 독립지사 명도석, 시인 천상병, 시인 김춘수, 민주열사 김주열, 춤꾼 김해랑이 걸었던 지난 시절 마산의 고샅고샅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네요.

경상대학교 출판부, 370쪽,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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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