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유일 남북이산가족 상봉단 선정된 김영자 씨
아버지는 2002년 세상 떠나
이복동생·조카만 만나게 돼
"그래도 핏줄 만난다니 기뻐
내복·상비약·과자 챙겨갈 것"

"우리 아버지 기억할 수 있는 사진 한 장이면 나는 만족한다."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사는 김영자(73) 할머니는 20일 금강산에서 열릴 '제21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대상자에 선정돼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1985년부터 2015년까지 20차례 진행돼 온 상봉행사였으나 할머니는 이제야 북에 있는 가족과 만나게 됐다.

남해군 창선면 출신인 할머니는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경남지역 이산가족 1341명 중 유일하게 이번 상봉 대상자에 뽑혔다.

지난 1983년 KBS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방송이 나간 이후 북에 사는 아버지를 만나려고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할머니는 35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피붙이를 만나게 됐다. 하지만 그토록 바랐던 아버지와 만남은 무산됐다. 적십자사로부터 아버지가 지난 2002년 12월 별세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20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이복동생과 조카를 만나는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김영자 씨. /김구연 기자 sajin@

할머니는 "아버지 만나면 맛있는 음식도 내 손으로 직접 해드리고, 보고 싶었노라 큰 소리로 목놓아 부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면서도 "힘들겠지만 북한에 가서 아버지 산소를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었음 좋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버지와 지난 1951년 생이별했다. 당시 7살이던 할머니는 큰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아버지는 '똑똑한 사람', '집안을 일으킬 대들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삼천포에서 면서기를 하던 아버지는 한국전쟁 후 공산주의자로 몰려 일본으로 몸을 피했고, 곧 돌아올 것이라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일본 직물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북한으로 갔고, 그 사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할머니는 친척집을 전전하게 됐다고 했다.

할머니는 "헤어진 시간이 68년이다. 나도 늙었지만 아버지도 함께 세월을 보내 살아계시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면서도 "이복동생이라도 만난다니 기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생이지만 같은 핏줄이니 나와 닮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만나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얼굴도 모르는 이복동생을 위해 내복과 상비약, 초코파이와 같은 과자를 챙겨갈 것이라고 했다. 특히 "한국보다 북한이 추우니까"라며 내복과 상비약을 강조했다.

할머니는 아버지 사진을 꼭 챙겨오고 싶다고 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가슴에 묻어둔 아버지라는 그리운 존재를 잊어본 적 없어서다.

"어릴 때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설움 많이 겪었지. 그때는 노을이 지는 서쪽 하늘만 보면 엄마랑 아빠 그리워서 많이도 울었다. 그래서 아버지라는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더 간절하지. 나도 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 한 장만이라도 가져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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