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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그 골목에 갔다] (11) 마산 오동동

굽이진 골목마다깃든 세월 흥건한 사람냄새
1970~1980년대까지 '요정골목'
아귀찜·통술집이 그 자리 대신해
천덕꾸러기 '아귀', 찜으로 변신
안주 푸짐한 '통술'마산브랜드로

이일균 기자 iglee@idomin.com 2018년 07월 25일 수요일

골목을 찾았던 이유?

10년 전에는 "사라져가는 골목을 기록하기 위해서"라고 <경남도민일보>에 썼다.

'피식.'

웃기는 이야기다.

골목에 숨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골목에 숨으면 평화로워졌고, 취재는 은밀해졌다.

유명숙 할매는 그런 나를 돌로 쳤다. 그런 느낌이었다.

2006년 3월 마산 오동동 '요정골목'서 당시 일흔아홉의 할매를 만났다.

옛 오동동 요정골목.

"골목을 찍는다꼬? 머시 좋아서? 빨리 없어져야지!"

"좁은 길에 차가 못 들어오이 이사 한번 하기가 얼마나 어려븐데. 보일러에 기름 넣기도 어렵고, 그라고 똥차는?"

길게 이어진 호스에 콧구멍을 막으면서도 큰길가 분뇨차까지 두리번거려 찾았던 모습이 연상됐다.

그 이후 골목을 취재하면서 골목에 대한 추상은 덜해졌다.

이어진 할매 이야기가 유장했다.

"아구찜 집이야 한참 뒤에 안 생깄나. 내가 중학교 다녔던 6·25전쟁 후부터 요정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큰 요정만 열댓 개가 넘었어."

금방 요정 이름도 떠올렸다. 춘추원, 연정, 별관, 감나무집, 유정, 동촌장, 사과나무집….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구찜 거리.

"그땐 학교 갔다오면 절대로 밖에 못 나갔어. 부모님이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는 자식들 출입을 막은 거야."

오동동 전체로, 또 창동으로 상권이 확산된 이후부터 요정골목의 명성은 기울었다. 작은 요정이나 통술집, 고갈비집 같은 서민 상대의 술집이 창동과 오동동 전체에 생기면서 번창했던 요정골목은 점점 어두워졌다.

골목의 명맥은 1965년 이후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아구찜집이 이었다.

그해에 아구찜을 처음 만들었다는 진짜할매초가집 박영자(당시 75세) 할머니도 그때 만났다.

"그때까지는 아구탕을 안 했나. 주로 요정 사람들이나 손님들이 새벽에 많이 왔지. 근데 어떤 손님이 그걸로 찜을 한번 만들어보라고 했지. 그래서 고추장 같은 양념을 넣어 만들어줬더니 계속 찾는 거야."

그뒤 구강할매집이 아구찜을 따라 하고, 70~80년대 찜집이 줄을 이어 생겼다.

아구찜이 전국의 명물이 된 배경에는 마산 사람들의 질긴 생활력도 한몫 했다. 못생긴 데다 어선의 그물코만 해치는 천덕꾸러기인 '아귀'를 탕으로, 찜으로 만든 배경에 사람들의 독한 생활력이 작용했다.

독한 마산 사람들은 구워서나 먹던 전어를 회로 만들고, 천지로 널렸던 미더덕으로 찌개나 찜을 만들기도 했다.

먹음직스러운 마산아구찜.

◇마산 통술의 산실

골목이 '쇠'하기만 하란 법은 없다.

마산 오동동 통술골목은 지금이 10년 전보다 더 흥하다. 그때 대여섯집 되던 통술집이 지금은 배 이상이다.

통술집은 오동동 브랜드를 넘어 마산의 브랜드가 됐다. 통술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설이 많지만, '처음에 기본요금을 지불하면 막걸리든 맥주든 일정한 양에 안주를 한 상 거뜬히 차려준다' 해서 생겼다는 이야기가 알아듣기 쉽다.

1970년대 이후 '수림'이니 '유정'이니 하는 통술집이 생기게 된 데는 배경이 있다. 맞은편 오동동 '요정골목'의 영향이 컸다. 요릿집이라 불리며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던 요정에 비해 서민들이 만만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이승일(당시 52세) 씨의 설명이 그랬다. "더 싼값으로, 모자라지만 요정 분위기를 내기 위해 통술집을 만들었지 예. 비록 방이 없는 선술집이지만, 안주가 한 상 나오는 형태를 요정에서 본뜬거지 예."

그때 어느 통술집 사장이 이런 말을 했다.

한상 가득 차려진 통술. 꽃게·가오리 찜, 문어 숙회, 도다리 조림, 가자미 구이, 학꽁치 튀김, 호래기 젓갈 등이 눈에 띈다./경남도민일보DB

"젊은 양반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게 뭐이요?"

"…"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답을 못했다.

"나는 마, 돈 많고 애인 많은 기(게) 제일 좋데. 안 그렇소?"

"…"

깊이를 알 수 없는 그 말에도 나는 바로 호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장만큼 오동동타령을 감칠맛 나게 불렀던 이가 없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궂은 비 오는 밤 낙수물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

2절도 바로 나왔다.

"통통 떠는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사공의 뱃노래가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멋쟁이 기생들 장구소리가/ 오동동 오동동 밤을 새우는/ 한량님들 밤놀음이 오동동이요."

"나는 오동동 요정에서 일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사장이 또 말했다.

"오동동타령은 그때 배았던 노래요. 우리 노래지!"

1955년부터 황정자가 불렀던 노래 '오동동타령'이다. 야인초(본명 김봉철)가 가사를 짓고, 한복남이 작곡했다.

통술집은 이곳뿐만 아니라 창동 코아상가 뒤쪽과 코아 맞은편 술집골목, 30집이 넘는 신마산 반월동 통술거리, 합성동 등 마산 전역에 분포돼 있다. 그만큼 마산 고유의 주점 형태로 뿌리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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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3월 25일 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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