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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궐 사람들] (3) 창원 큰선비 모연 김영규 2

나라 망했어도 민족정신 이으려 노력
사미루·구문정 짓고 '시회' 일제강점기 전통 보존활동 나서
시회 가장한 독립운동 모임 참석...독립협회 등 설립 자금도 보태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8년 05월 24일 목요일

대한제국 시기 함안군수, 창원부윤서리, 진남군수에 이어 장례원 전사(오늘날 차관급)까지 승승장구하던 창원 선비 모연 김영규(1857~1931). 1910년 나라가 일본에 망하자 그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 창원으로 돌아온다. 정3품 비서감 승지(임금의 업무를 돕던 직무)로 역시 출세 가도를 달리던 큰아들 정헌, 제주목 주사로 있던 작은아들 병헌과 함께였다.

이후 그는 부친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토대로 집안 경영에 힘을 쏟는다. 일제강점기라는 가혹한 시절이었지만, 소출이 적으면 소작료를 줄이고 땅을 나눠주는 등 가능하면 다 함께 더불어 살려고 노력했다. 기부도 열심이었다. 독립협회나 대한학회 같은 단체와 교회나 학교 설립에도 자금을 보탠 것이 확인된다.

그러면서도 그는 학문과 풍류를 즐기는 조선 사대부가의 가풍을 유지하려 애썼다. 문중 선산과 재실을 마련하고, 지금의 김종영 생가인 본채와 손님을 대접하던 사미루, 구문정을 지은 이유다.

올 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모연정지>를 찾아낸 모연 김영규의 고손자 김세욱 씨. /김세욱

사미루와 구문정은 지금은 살림집 노릇을 하고 있지만, 원래는 손님을 대접하고 모임을 열던 장소다. 1926년 현재 자리에 건물을 올렸고, 1928년 4월 구문정에서 처음 시회(詩會·시 모임)가 열렸다. 이때 참석한 이들이 지은 시를 시판으로 만들어 구문정에 걸어놓았다. 이들 시판은 김종영미술관에서 가져가 지금은 없다. 시판에는 참석자들의 본관과 이름이 적혀 있다. 이 중에는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단발령에 반발해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난 시기 안동에서 의병 활동을 한 학운 김진의(1855~1930)도 있고, 구한말 문신이자 학자인 탁운 김용복(1857∼1933)도 있다.

이후 구문정과 문중 재실인 영모재에서 자주 시회가 열렸다. 영모재 시회에는 일산 조병규, 눌운 이병화 등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선비들은 시를 짓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는 공부를 많이 해야 가능했던 문학적 소양이기 때문이다. 선비들은 경치 좋은 야외 정자나 누각에서 시회를 자주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시회가 열렸다. 나라 잃은 조선 선비의 소극적이지만 묵묵한 민족 전통 보존활동이었던 셈이다. 실제 시회를 가장한 독립운동 모임도 있었다. 모연 김영규도 만년에 마산과 창원 주변 여러 시회에 참석했다. 남전재시회(옛 남전부락, 현 소답동 일부), 남산시사, 김해수시회, 함안 서산정시회(이 시회는 독립운동 무대이기도 했음), 남산시회, 북악시사, 북악시회, 부산음사, 단산시사(정병산을 이름), 달천동시회, 문창음사, 회산시사 등이다.

▲ 구문정에 걸려 있던 시판들./김세욱

이때 지은 시들은 그가 남긴 유일한 문집 <사산시집(史山詩集)>에 담겨 있다. 사산(史山)은 모연과 함께 김영규가 사용한 별호(別號)다. 사산시집은 동국대 중앙도서관 고서실에 보관된 것을 2008년 그의 고손자 중 한 명인 김세욱(49·사천시) 씨가 찾아냈다. 김 씨는 직장생활 틈틈이 고전번역원을 통해 사산시집 번역본을 10년째 만들고 있다.

1917년 김영규가 마산 노비산 자락에 짓고 말년을 보낸 모연당(慕淵堂)이란 집에서도 사람들과 끊임없이 왕래하고 모임이 자주 열렸던 것 같다. 노비산은 마산합포구 상남동 현재 마산문학관이 들어선 야트막한 언덕이다. 그가 굳이 창원 소답동 종가를 두고 이곳에 또 다른 거처를 마련한 이유는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가 지은 모연당기에 '종족과 빈객이 자리에 가득하게 하는 것이 모연당을 지은 처음의 뜻'이라고 한 점과 '열두 번 기차가 시간을 정하여 왕래하고'라고 적은 것을 볼 때 당시 마산역(현재 교보생명 마산영업소 자리)에 가까운 자리에 집을 마련해 사람들이 편리하게 오고 가도록 배려한 것이 아닐까 한다.

▲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된 <사산시집>./김세욱

1931년 김영규가 세상을 떠나고 그다음 해 1932년 지인들이 모연당에서 추모 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1937년 그를 기억하는 지인들이 모연당 앞에 유허비를 세우고, 추모문집인 <모연정지(慕淵亭誌)>를 발행한다. 발행자는 마산 진전 출신으로 경제학자며 교육자인 권오익(1905∼1998)이다. 책 뒤에 방명록 서명자가 138명에 이른다. <모연정지>도 국립중앙도서관에 보관된 것을 올해 초 김세욱 씨가 찾았다. 유허비는 자취를 찾을 수 없고 모연당 집터는 현재 흙담이 일부 남아 있다. 다음은 유허비에 적혀 있었다는 문장 일부다.

"늘그막에 학문하는 정자를 짓고는 영재를 기르고 후학을 인도하는 곳으로 삼고는 당시 문장가 시인들과 시를 주고받았으며, 별도로 노산 아래에 정자 하나를 짓고 편액을 사산(史山)이라 하고는 꽃과 국화를 심어놓고 유유자적하였다." 

※참고문헌

<김종영, 그의 여정>(김종영미술관, 2017)

<모연정지>(권오익 편저, 1937)

<사산시집 번역기>(김세욱, 미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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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