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해야 할 것' 벗어난 삶
주변인 눈총 아닌 인정 목말라

나의 무엇을 지워버렸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잃은 지, 잊은 지 오래여서일까 퍼뜩 떠오르지 않는다. '스탠더드'적이게 살려고 물 밑의 발은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유 있는 척 '미소'를 띠는 우리.

<소공녀>(감독 전고운) 주인공 미소(배우 이솜)는 가사도우미다. 일당 4만 5000원으로 살아감에도 담배와 위스키, 웹툰 작가 지망생인 남자친구 한솔(배우 안재홍)을 버리지 않는다.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다. 그래서 2015년 새해 담뱃값이 2000원 인상됐을 때 그녀는 값싼 담배를 피울지언정 끊지 않는다. 오히려 과감하게 집세를 일당에서 지워버린다. 월셋집을 포기해버린다. 그녀는 집을 구하러 나선다. 계란 한 판을 들고 대학생 때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친구들을 만난다.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하려고 애쓰는 친구는 월세와 담뱃값이 오르니 집을 나왔다는 미소의 말에 "스탠더드는 아니지"라고 말하고 결혼해 전업주부로 사는 친구는 "결혼하고 나니 엄마가 보고 싶다"며 남편, 시부모와 함께 사는 자신의 이전 모습을 그린다.

영화 〈소공녀〉 스틸컷.

이혼의 아픔을 겪는 친구는 미소의 방문이 반갑지만 이별의 상처가 돋아날까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고 노총각을 면치 못한 친구네는 미소를 감금하다시피 반긴다. 또 아주 부유하게 사는 친구는 집이 없을 정도로 어려우면 담배부터 끊겠다며 미소 더러 "염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은 미소로부터 잊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미소는 장조림, 계란말이를 해놓고 가사도우미 실력을 발휘하며 그들의 마음마저 한 번씩 닦아준다.

미소는 우아한 백조가 되고 싶어하는 우리를 위로한다. 사회,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사랑하는 것들을, 자신의 취향을 포기한 우리 말이다.

한솔은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다며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고 미소는 사람답게 사는 게 뭔지 묻는다. 결혼하면 집이 생기니 결혼하자고 말하는 친구더러 폭력적이라고 말한다. 맞다. 담배와 술을 사랑하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폭력적이다.

미소는 말한다.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이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이 있어."

"술과 담배를 사랑해."

영화 〈소공녀〉 스틸컷.

죽을 때까지 약을 먹지 않으면 백발이 되는 미소는 점점 머리카락이 새하얘지고 노숙자와 여행자의 경계에 서서 텐트를 친다. 하지만 텀블러(재떨이)를 손에 든 채 한 모금씩 피우는 담배와 위스키 한 잔은 여전히 그녀가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전고운 감독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치솟는 집값에 열을 받고, 담배 피우는 여자에 대한 천박한 시선에 분노해왔다. 일을 하면서도 계급, 남녀차별 같은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막상 그 마음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보니 이 안에 내가 20대 때 좋아했던 것들, 우정, 사랑, 돈, 집, 이런 것들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이 영화의 소재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전 감독은 "집, 직장, 남편 같은 또래의 여성에게 당연히 부과되는 '해야 할' 것들에서 벗어난 미소의 선택을 통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성이 처한 현실 그리고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어 보여주고자 한다. 한국영화에서 부족한 여성 캐릭터를 위해서라도 <소공녀>가 아주 잘 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고운 감독.

그러고 보니 미소가 만난 여성은 링거를 맞아가면서까지 일을 좇고, 요리에 재능이 없는 친구는 시부모의 눈치를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며 산다. 돈 많은 남편을 만나 풍족하게 사는 친구는 자식이 유일한 구원이라고 말한다.

<소공녀>의 영어 제목은 'Microhabitat(마이크로해비타트, 미소서식지)'다. 미소생물이 서식하는 특유의 다양한 환경 조건을 갖춘 장소를 의미하는 말. 나의 서식지는 과연 어디일까.

영화 〈소공녀〉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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