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잃은 여주인공 연기한 손예진
눈빛·표정으로 정통 멜로 진수 보여줘
<클래식> 등 이전 작품과 다른 감동 선사

손예진이 울고 있다.

14일 개봉한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 속 그녀의 얼굴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대사가 없어도)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붉어진 눈시울, 흘러내리는 눈물, 슬픔을 거둬들이는 눈빛. 손예진은 정통 멜로에 강했다.

동명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서 손예진은 수아 역을 맡았다. 세상을 떠난 수아가 장마가 시작될 때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남편 우진(소지섭), 아들 지호(김지환) 앞에 나타난다는 이야기는 2004년 일본에서 영화화해 이듬해 국내에서 개봉한 동명의 작품 덕에 낯설지 않다.

영화는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느 리메이크 영화가 그렇듯 원작에 한국의 정서를 살짝 곁들여 완성했다. 그래서 원작과 비교해 영화를 보겠다고 한다면, 재미와 감동은 떨어질 수 있다. 주인공의 일상과 관계로 전체 이야기를 끌고가기 때문에 수아, 우진, 지호의 캐릭터를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몰입할 수 있다.

영화 초반 전개는 빠르다. 비의 계절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수아는 비 오는 초여름날 거짓말처럼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기억을 잃은 채 우진과 지호와 함께 일상을 보낸다. 집안에 고스란히 남은 수아의 옷과 지갑, 일기장은 그녀를 그리워한 우진과 지호의 마음을 대신한다.

우진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수아에게 둘의 첫 만남, 첫 데이트, 첫 키스를 들려준다. 둘은 다시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수아는 작은 창고 속에서 그녀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펼친다. 곧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고 아들에게 홀로서기를 연습시킨다. 그리고 장마가 끝이 나고 햇볕이 드리울 때 수아는 떠난다.

손예진이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이후 10여 년 만에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정통 멜로를 보여줬다. /스틸컷

우진과 지호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영화는 후반부에 이르러 수아 입장에서 이야기를 다시 시작한다. 우진보다 자신이 먼저 좋아했던 그에 대한 에피소드, 우진의 이별 통보를 들은 후 그를 찾아가는 이유를 설명한다.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였다 깨어난 그녀가 바로 다가올 미래의 현실을 안다는 것을, 수아는 이렇게 적는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영화 초반부 수아는 기억을 잃었기 때문에 가족에게 섞이기 전 모습이 다소 어색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전체 과정을 통해 들여다보면 자연스럽다. 억지로 감정을 쥐어짜거나 어느 정도 울어야 하겠다는 계산이 보이지 않는다.

손예진은 여러 매체와 인터뷰에서 "멜로 영화는 배우가 보여주는 감정의 수위로 달라진다. 배우 감정이 관객보다 앞서거나 뒤처지면 안 된다.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촬영했다"고 했다.

그녀는 15년 전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하고 교복을 입고 나왔던 <클래식>(감독 곽재용), 긴 머리를 뒤로 쓸어넘기며 소주잔을 들이켰던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감독 이재한)와 또 다른 멜로를 보여준다. 10여 년 만에 다시 찍는 멜로 영화에서 30대 중반이 된 만큼 소녀에서 벗어나 아내·엄마라는 옷을 잘 입었다.

손예진은 연기력과 티켓 파워를 동시에 지닌 충무로의 흔치 않은 여배우라고 평가받고 있다. <타워>(감독 김지훈), <공범>(감독 국동석), <해적>(감독 이석훈),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덕혜옹주>(감독 허진호) 등 매년 한 편 이상 관객과 만나며 서사, 스릴러, 액션을 넘나든다.

그럼에도 '손예진 인생 영화'가 또 바뀌었다고 말하는 관객의 평처럼, 충무로에 뜸했던 멜로에 숨을 불어넣었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보는 또 하나의 방법, 바로 배우 손예진이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영화는 21일 기준 관객 수 107만 명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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