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라의 곤드레만드레] (4) 맥주가이드

이번 이야기는 대형마트 맥주 코너 혹은 수제 맥주를 파는 가게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면 좋을지 몰라 혼란스러운 당신, 자신의 입맛에 딱 맞는 맥주를 찾고 싶은 당신, 여행 가서 모르는 언어에 주눅 들지 않고 맛있는 맥주를 고르고 싶은 당신, 맥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맥주 아는 만큼 보인다? 아니, 아는 만큼 맛있다! 

맥주는 스타일에 따라 크게 라거(Lager)와 에일(Ale)로 나뉜다. 라거는 라거 효모를 대개 차가운 온도(9~14℃)에서 하면(bottom) 발효, 에일은 에일 효모를 따뜻한 온도(16~26℃)에서 상면(top) 발효해 만든다. 라거는 산업화를 거치며 대량생산이 용이해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 에일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낮고 밝은 색을 띠며 깔끔함이 두드러진 청량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하이트와 카스가 바로 라거에 속한다. 에일은 라거에 비해 색깔, 맛, 향이 진하며 발효기간이 짧아 탄산이 적다. 수입 맥주의 '조상님' 격인 아일랜드의 기네스와 벨기에의 호가든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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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거 중에서는 필스너(Pilsener), 페일 라거(Pale lager), 둔켈(Dunkel)이 비교적 대중화된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필스너는 1842년 체코 필젠(Pilsen) 지역에서 처음 생산된, 홉의 씁쓸한 맛이 특징인 맥주다. 편의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필스너 우르켈'이 바로 이 맥주의 전형. 필스너는 19세기 후반 독일에 소개되면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페일 라거(Pale lager)는 이 필스너에서 파생된 스타일이다. 필스너 홉의 쓴맛과 맥아의 단맛을 줄인 것이 특징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소비된다. 둔켈은 독일식 흑맥주를 말한다.

라거 가운데 특히 추천하고픈 것은 복(Bock)이다. 복은 14세기 독일 아인 베크(Ein beck)에서 처음 양조된 맥주로 뮌헨 시민들이 아인 베크를 아인 보크(Ein bock)로 발음한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높은데 이를 위해 맥아즙을 많이 함유한 것이 특징이다. '액체로 된 빵'이라고 표현하면 과도할까. 캐러멜과 초콜릿이 연상되는 짙은 단맛은 라거가 에일에 비해 밋밋하고 개성이 없다는 편견을 지워준다. 맥주 주재료인 맥아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은 이에게 특히 추천한다. 재미 삼아 덧붙이자면 '복'은 독일어로 염소를 뜻하기 때문에 복 스타일 맥주 병에는 염소가 그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에일 중에서는 페일 에일(Pale Ale), 바이젠(Weizen), 스타우트(Stout)가 유명하다. 1703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페일 에일은 수제 맥주 세계로 향하는 출입문 같은 맥주다. 페일 에일의 한 종류인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이하 IPA)이 특히 그렇다. IPA는 인도가 영국 식민지였던 19세기 영국에서 인도로 맥주를 변질 없이 운송하고자 항균효과가 있는 홉(Hop)을 많이 넣어 양조하면서 시작됐다. 덩굴식물 일종인 홉은 미생물 번식을 막아주는 것은 물론 맥주에 씁쓸한 맛과 다양한 향을 더해준다. 수제 맥주깨나 마신다는 이들 치고 IPA를 싫어하는 이를 본 적이 없는데 품종에 따라 천차만별인 맛과 향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 짐작해본다. 바이젠은 독일 바이에른 지역에서 시작되는 밀(Wheat)맥주를 칭한다. 효모를 여과하지 않은 탁한 밀맥주는 헤페바이젠(Hefeweizen), 효모를 여과한 맥주는 크리스탈바이젠(Kristallweizen)이라고 부른다. 밀맥주는 독일 외에도 벨기에에서 생산된 것이 유명하다. 예외가 있긴 하나 맥주 라벨에 바이젠(Weizen), 바이스비어(Weissbier)라고 적힌 것은 독일식, 벨지안 화이트(Belgian white), 블랑슈(Blanche), 블랑(Blanc)이라고 적힌 것은 벨기에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독일식 밀맥주는 독일의 맥주 순수령의 영향으로 비교적 최소한의 재료로 양조하는 반면 벨기에식은 허브와 향신료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들기 때문에 개성이 강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 밀맥주인 호가든은 독일식일까, 벨기에식일까. 정답은 벨기에식이다. 한 모금만 마셔도 입안 가득 퍼지는 오렌지와 코리앤더의 풍성한 향이 정답을 말해준다. 물론 블랑슈라고 적힌 라벨만 봐도 알 수 있지만. 스타우트는 18세기 영국에서 유행하던 흑맥주인 포터(Porter)와 연관이 있다. 도수가 높은 포터를 강한 포터, 즉 스타우트 포터라고 부르면서 흑맥주를 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았다. 현재 스타우트와 포터는 혼재돼 사용되는 편이다. 까맣게 태운 맥아를 사용해 탄 듯한 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이쪽 세계'로 더 들어오고픈 이에게는 세종(Saison)과 사워에일(Sour ale)을 추천하고 싶다. 세종은 벨기에 남부 지역 농가에서 시작된 맥주로 우리나라 농촌에서 농번기 마시던 막걸리와 묘하게 닮았다. 밝은 황금빛을 띠며 감귤류와 허브, 향신료가 연상되는 향이 풍성하게 나 화사하면서 산뜻한 맛이 있다. 탄산도 풍성해서 더운 여름 쭉쭉 들이켜기 좋다. 사워 에일은 유럽에서 처음 만들어진, 젖산이나 야생효모를 넣어 발효한 맥주로 이름처럼 신맛이 난다. 내가 머리털 나고 처음 마셔본 사워 에일은 국내 소규모 브루어리인 아키투의 '도깨비'였다. 도깨비는 메주의 젖산균을 이용한 맥주라 청국장이 연상되는 쿰쿰한 향과 요구르트 같은 시큼한 맛이 났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상한 거 같은 맛인데 이게 묘하게 중독성 있다. 수제 맥주를 여러 잔 마시는 경우 디저트처럼 마지막에 마시면 딱 좋다.

창원 '브라이트 브루잉 컴퍼니'의 메뉴판. 맥주명 옆에 쓴맛과 도수 정도를 표기하고 있다. /우보라 기자

맥주 스타일에 대해 몰라도 맥주를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다. 맥주 관련 용어인 ABV(Alcohol By Volume),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 SRM(Standard Reference Method) 이 세 가지만 외우면 된다. ABV는 알코올 도수를 나타내는데 라거가 4~5%, IPA가 7% 정도 된다는 것만 기억하면 맥주의 도수 정도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IBU는 쓴맛을 나타내는 수치로 숫자가 클수록 쓴맛이 강하다. SRM은 맥주의 색 정도를 나타내는데 역시 수치가 클수록 어둡다고 보면 된다.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맥주를 찾았다면 그 맥주의 ABV, IBU, SRM을 기준 삼아 다른 맥주를 마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간편한 방법이 또 있다. 맥주 평가 사이트 '레이트비어(https://www.ratebeer.com/)'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레이트비어는 매년 전 세계 브루어리와 맥주 순위를 발표하는데 이를 기준으로 맥주를 즐겨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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