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희의 드롭 더 비트] (2화) 힙합으로부터의 사색
자취하던 고교·대학교 시절 고민있거나 마음 힘들 때
'팔로알토'음악 들어 마음의 안식처이자 영감을 주는 존재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했던가요. 한 분야를 집중해 파고들면 자기나름으로 이치를 깨치게 됩니다. 여기에 재미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일반인 중에도 재밌게 격물치지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개인 취미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개인적인 일상에 활력을 주기도 하지요. 독자 여러분과 함께 색다른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김설희 객원기자는 힙합이야기 <드롭 더 비트>를 들려드리는데요. '드롭 더 비트( Drop the beat)'는 힙합 음악에서 래퍼들이 랩을 시작하기 전에 쿵짝쿵짝 하는 '비트를 달라'는 뜻으로, 일종의 유행어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격물치지도 열렬히 환영합니다. 어느 분야든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는 분은 언제든 문정민 기자(minss@idomin.com)에게 연락주십시오.

하루일과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면서도, 생산적인 유일한 시간은 '멍 때리는 것'이다. 멍하니 앉아 힙합까지 듣고 있노라면 사색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사색'은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힙합으로부터 사색이라니….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힙합과 사색이라니 이 사람 정신이 이상하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 바탕에는 '힙합'이라고 하면 '정신없는 음악' 인식이 깔려 있을 게다.

서운하기보다 공감이 간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여긴다. 나도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를 종일 듣고 있는 이들을 보면 "저 사람 정신이 이상하다"라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과 내가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은 아마도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각자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 다를 뿐인데, 편견에 사로잡혀 괜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힙합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이나마 버리고 이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래퍼들의 '고백의 언어' 즉 가사에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생각하는 힙합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성격이 있다. 1인칭 시점의 음악이고, '나는 뭐가 될 거야', '어떻게 살아라' 등의 의미가 담긴 곡이 무수히 많다. 그래서 어떤 힙합아티스트의 앨범을 듣기만 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삶을 겪어 왔는지 대략 알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나에게 '내 삶에 저런 태도를 받아들여야지',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같은 종교가 주는 것과 비슷한 형태로 영감을 주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때론 교과서보다 더 교과서적인 삶의 지침서가 되어주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자취를 시작했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야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동안 공부의 방식은 배울 수 있었지만 삶의 방식에 대해 배울 순 없었다. 물론 내가 자청한 일이다. 나의 고민이 행여 부모님에게 짐이 될까봐, 항상 고민이 있을 때면 부모님의 목소리 대신 래퍼들의 목소리를 선택해야만 했다.

나의 귀를 장악한 목소리로 단연 팔로알토(Paloalto)를 꼽을 수 있다.

팔로알토는 나의 '최애(최고로 애정)'아티스트다. 데뷔작이었던 <발자국 EP>(2004)부터 지금까지 래퍼로서 내뱉는 적당한 스웨거와 당대를 사는 젊은이로서 느끼는 것들을 감정의 과잉 없이 담백하게 담아냈다. 사실 이런 거창한 설명보단 팔로알토의 가사를 살펴보면 당신도 팬이 될 수 있다. 어쩌면 나처럼 삶의 지침서로 삼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그의 가사 전부를 읊을 수 없으므로 내가 학창시절부터 꾸준히 들어온 몇몇 곡의 가사들을 소개하려 한다.

제일 먼저 소개할 곡은 팔로알토가 래퍼 더 콰이엇(The Quiett)과 함께 꾸민 '상자 속 젊음'이라는 곡이다.

학창시절 가장 많이 들으며 사춘기를 그나마 순조롭게 헤쳐나갈 수 있게 원동력이 되어준 노래이기도 하다.

'난 남다른 삶을 원하진 않았지만, 남과 같은 삶은 더욱더 원하지 않아', '신념 없는 가르침 속에서 무너져버린 우리의 정체성의 모래성. 혼자 있길 두려워하며 유행의 바람에 흔들려', '스무고개가 넘도록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군중의 목적 잃은 행진을 따라가네. 알아야 해. 삶은 우리 자신의 것'과 같은 사춘기 세대들이 공감하는 가사들이 담겨 있다.

이런 가사들로 질풍노도의 끓어오르는 반항심을 스스로 다스려왔다. 지금도 여전히 목표의식이 흐려질 때면 가끔 듣는 곡이다.

대학에 입학하던 해에 나왔던 팔로알토의 앨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앨범에는 자신의 꿈을 실천하고 살면서 하게 되는 끝없는 고민과 고군분투를 담은 곡 'City Lights'와 '가뭄' 그리고 잠들기 전 자기반성을 담은 곡 '죄인'이 있다.

깊게 공감했던 가사 몇 가지를 꼽자면 '한때는 진실함을 추구하며 밤을 지새웠지. 물질적인 것에 현혹되어 잃어버린 시대정신', '사람들과 있을 땐 애써 목소릴 높였지만 어쩌면 그들 중에서 내가 제일 겁쟁이야', '선택은 항상 나의 주위를 맴돌아. 매순간 갈림길에서 나를 재촉하네. 걸음이 느린 내 등을 미는듯해. 둥글게 살고 싶었지만 함께 물드네…' 등의 노랫말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정쩡한 기분과 수많은 고민으로 숱한 밤을 지새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 중 가장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항상 팔로알토의 음악을 들으며 깊이 생각하고 어떠한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이것을 계기로 나의 젊음은 힙합에 열광했고 무엇보다 힙합이 나의 삶을 조금이나마 바꾸었다. 그리고 청춘의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는 친구들에게도 팔로알토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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