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시끄럽다"며 아파트 도색작업자 밧줄 끊어 살해
도색작업자, 13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져
경찰 추궁에 12일 오후 범행 일체 자백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 신청

고공에서 도색작업을 하던 노동자가 무료함을 이겨내고자 켜 놓은 스마트폰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발단이 된 양산 아파트 옥상 밧줄 절단 살인사건에 국민이 경악해 하고 있다.

한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우발적인 범행은 불과 채 몇 초가 걸리지 않아 생명줄인 밧줄에 의지해 생계를 이어가는 노동자들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낳게 하고 안일한 작업 안전관리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난 8일 오전 8시 13분 양산시내 한아파트 15층 옥상에서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이 일어났다.

새벽 인력시장에 일감을 구하러 갔다가 일감을 구하지 못하자 소주 1병 반을 마시고 술에 취해 아파트로 돼 돌아온 ㄱ(41)씨는 잠을 청하려는데 자신의 아파트(5층) 창밖 위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자 창문을 열고 "시끄럽다 음악을 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숨진 김씨 등 노동자 4명은 나란히 옥상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본격적인 도색작업에 앞서 아파트 베란다에 실리콘으로 코킹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ㄱ 씨 거친 항의에 가까이 있던 노동자 ㄴ(36)씨는 음악을 껐다.

그러나 숨진 김모(46·부산시)씨는 멀리서 항의소리를 듣지 못하고 음악을 계속 켜고 있었다.

이에 화가 치밀어 오른 ㄱ 씨는 가지고 있던 공업용 커트 칼을 들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옥상으로 올라가 밧줄을 잘랐다.

ㄱ 씨는 ㄴ 씨 밧줄을 반쯤 자르고 나서 이어 숨진 김 모씨 밧줄에 커트 칼을 갖다 댔다.

1.8㎝ 굵기 밧줄은 김 모씨 몸무게 때문에 커트 칼을 대자 말자 실타래가 터지듯 끊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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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 아파트 옥상에 있던 잘려진 밧줄. /김중걸 기자
밧줄에 매달린 의자에 앉아 작업 중이던 김 모씨는 한순간 12층에서 13층 사이 높이에서 아파트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숨졌다.

불과 수초만에 이승과 저승 경계가 갈려 우리 삶의 허망함을 그대로 느끼게 하는 충격 그 자체였다.

ㄱ 씨는 "음악 소리 때문에 홧김에 밧줄을 끊었는데 죽이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겁을 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줄이 완전히 끊기지 않아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ㄴ씨는 "줄이 삐끗하는 것을 느꼈다"고 당시를 상기하며 치를 떨었다.

ㄱ 씨는 경찰조사 결과 3∼4년 전쯤 폭력 등의 혐의로 구속돼 이후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정신감정 결과 조울증 증세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ㄱ 씨는 출소 후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사건발생 초기에는 단순한 추락사고로 알려지다 119구조대가 사고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밧줄을 끊은 흔적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사고현장에서 밧줄이 절단된 것으로 보고 이 아파트 옥상으로 통하는 CCTV 등을 확보해 출입자를 확인했다.

경찰은 아파트 옥상에서 ㄱ 씨 슬리퍼 발자취를 확인하고 ㄱ씨 집 냉장고 위에서 공업용 커트칼 등을 압수해 국과수에 긴급감정을 의뢰했다.

13일 오전 국과수 감정 결과 커트 칼에서 밧줄 성분이, 슬리퍼에서는 옥상바닥에 작업자가 흘린 액체와 같은 성분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ㄱ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자해 등 우발적인 행동을 우려해 12일 오전 ㄱ 씨를 긴급체포해 CCTV 등 증거물을 제시하며 추궁했고, 이날 오후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숨진 김 모씨 등 작업노동자들은 일당 30만 원을 받으며 지난 5일부터 이 아파트 도색작업을 해왔으며 작업 4일째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김 모씨 유족으로는 아내와 어린 자녀 5명이 있어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경찰은 작업자 4명 외에 현장감독과 작업보조 등 2명이 모두 1층으로 내려온 점을 주시하고 작업 중 안전관리위반 여부에 대해서도 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은 13일 ㄱ 씨를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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