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기대 이상 '눈부신 출발'
모순된 구조·제도 근본적 혁파 나서야

애청해 온 MBC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지난 16일 막을 내렸다. 반역의 성공과 연산군의 죽음, 홍길동 세력의 행복한 일상을 그린 마지막 회는 빤한 해피엔딩 속에서도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았다. 적을 죽이고 응징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닌 '적마저 살리고' '적마저 끌어안는' 혁명. 나의 눈엔 연산군이 피를 토하며 세상과 작별하는 장면보다 연산군 편에서 홍길동을 괴롭힌 장녹수와 김자원, 모리 등에게 다시 한 번 새 삶의 기회를 주는 길동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 한 가지. 길동은 왜 모든 비극의 근원이 된 신분제도를 깨부술 생각을 하지 않거나 못했을까. 새 임금 하에서 권력 실세인 평성군을 쥐고 흔들 힘까지 있으면서 말이다. 길동은 어린 시절 자신의 '주인'인 조수학이 노비로 몰락해 죽을 위기에 놓이자 "겪어보니 어떤가. 참말로 힘들지? 우리 아버진 평생 노비로 살았다"고 원한 섞인 말을 건넬 뿐이었다. 진정한 혁명은 사적 복수나 한풀이 따위가 아니라 더 이상 불행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세상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의 끝과 함께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출발이 좋다. 공정거래위원장(김상조), 서울중앙지검장(윤석열), 청와대 민정수석(조국) 인사에 담긴 강력한 재벌·검찰 개혁 의지, 7000여 명에 달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약속, 야당·언론·국민과 끊임없는 소통 등 무엇 하나 흠잡을 게 없었다.

물론 이제 시작이고 갈 길이 멀다. 적폐 청산과 '나라다운 나라'를 위해서는 인적 쇄신과 탈권위적·일회적·문화적 파격을 넘어 모순된 사회구조의 혁파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검찰 개혁을 예로 들어보자. 신선한 인물의 요직 배치와 "검찰 독립성을 보장하겠다"는 원론적 언급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의 새 정부도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같은 제도적 대안을 검토 중인데 이 역시 검찰 조직을 뿌리째 바꾸기엔 미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검사장 직선제'를 결단할 수는 없을까.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검찰, 국민적·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검찰을 만들 실질적 수단은 이것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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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해결, 양극화·불평등 해소에도 제도 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다. 비정규직 관련 악법의 개폐, 단결권·파업권 보장, 최저임금 현실화, 그리고 무엇보다 대기업·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증세.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계속 비판받은 것 중 하나가 '재정 계획'의 부재였다. 세출 구조조정 등을 말하긴 했으나 이것만으로 늘어난 복지 수요는 물론 대통령 자신의 각종 공약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첫걸음을 뗀 지 보름밖에 안 된 새 정부에 너무 많은 걸 바란다고 질타할지 모르겠다. 변명하자면 '다른 세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어느 때보다 큰 정부이기에 그렇다. 이번마저 좌절하거나 패퇴하면 그 후과는 매우 잔인할 것이다. 5년,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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