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정치인의 비판 발언과 언론 보도가 연일 쏟아지는 가운데 문제 본질을 흐리는 여성 혐오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받아봤다는 보도와 관련해 "헌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강남에 사는 웬 아주머니가 대통령 연설을 저렇게 뜯어고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또 지난달 29일 이재명 성남시장은 서울시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시민 촛불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는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의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 버렸다"고 말했다. 이후 '저잣거리 아녀자'라는 표현에 대한 논란이 일자 이 시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과했지만 경솔한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언론은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하는 최순실 씨를 보도하며 최 씨가 '프라다' 신발과 '토즈' 가방을 들었다고 자세히 보도했다. 또 검찰이 최 씨 자택을 압수수색했을 당시 신발장에 최 씨 가족 소유로 추정되는 명품 신발이 꽉 차있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정치인과 언론이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여성혐오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녹색당은 지난 7일 논평을 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이용한 여성 혐오를 규탄한다"고 밝혔다.

녹색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계집'으로, 최순실이라는 '개인'을 '강남 아줌마'로 치환하는 순간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뿌리 깊은 여성 혐오만이 남는다"며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비판에도 계속해서 나오는 여성 혐오 프레임의 보도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혐오가 얼마나 사소한 일로 여겨지는지를, 또한 여성 혐오 콘텐츠가 가십거리로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를 규탄하는 이유는 국민에게서 나온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는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지 그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다"며 "분노는 다른 곳을 향해야 한다. 각종 의혹을 덮기에 급급했던 검찰과 정치인들, 진실에 눈 감았던 수구 언론들, 정권에는 뇌물을 바치고 노동자는 외면했던 재벌들. 박근혜 정권의 독단적 국가 운영에 동조하고 비선 실세의 존재를 묵인했던 그들이야말로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라고 했다.

김경영 경남여성단체연합 회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중이 모인 집회 등에서도 여성 혐오의 맥락에서 비난이 쏟아지고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을 여성 모두의 무능으로 일반화하는 것도 심심찮게 본다"며 "남성 정치인의 문제를 남성 모두의 문제로 치환하지 않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또한 여성 문제로 치환해서는 안 된다. 정치인과 언론뿐 아니라 시민 또한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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