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때 지어진 걸로 추정, 삼층 석탑·법당 뒤 모과나무…산세 어우러진 풍경 '아늑'

지난 12일 마산3·15아트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우해이어보 학술심포지엄'. 최헌섭 두류문화연구원 원장이 '우해에 남은 담정의 발자취'를 주제로 발표할 때 의림사(義林寺)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담정 김려가 지은 우해이어보는 우리나라 최초 어보(魚譜·물고기에 관한 기록)입니다. 담정 김려가 당시 진해현 외진 바닷가(현재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율티리)에서 유배생활을 한 게 1801년에서 1806년까지 5년 정도라 합니다. 유배객이었지만 비교적 주변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기에 우해이어보를 쓸 수 있었겠지요. 담정이 자주 다녔다는 여항산, 그 남쪽 계곡에 의림사가 있습니다.

절 마당에 삼층 석탑이 통일신라 때 만들어진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의림사도 그즈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합니다. (조선 초기에는 꽤 큰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이름은 봉국사였다고 하는군요. 그러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렸습니다. 이 불탄 절터에 당시 의병들이 숲(林)처럼 모여들었다 해 의림사로 불리게 됐답니다. 그러고는 다시 한국전쟁 때 불에 타 버립니다. 지금 있는 사찰 건물은 모두 한국전쟁 이후 세운 것이랍니다.)

의림사 염불당과 나한전 앞 삼층석탑과 파초가 있고 그 뒤로 모과나무가 보인다. /이서후 기자

24일 오랜만에 의림사를 찾았습니다. 거대한 일주문이 새로 생겼더군요.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규모는 그대로였습니다. 300년 됐다는 모과나무도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었고요. 대웅전은 단청이 선명해 너무 새것 같습니다. 삼층석탑에 가까이 있는 염불당과 나한전이 그나마 천년고찰이란 말과 어울릴 정도로 낡아 있습니다. 한여름 싱싱했을 파초(꼭 바나나 나무처럼 생긴 여러해살이 풀)는 조금 기가 죽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림사는 사찰 자체보다는 사찰이 들어앉은 풍경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사찰을 꼭 안은 산등성이들 말입니다. 대체로 천년고찰들은 계곡을 끼고 있습니다. 창원만 해도 정병산에 있는 우곡사가 그렇고, 불모산에 있는 성주사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의림사만큼 산이 절 꼭 안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은 흔치 않아 보입니다. 의림사에 올 때마다 누군가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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