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회 흰 지팡이의 날을 앞두고 시각장애인 서정복 씨와 활동보조인 이미화 씨를 만났을 때 일이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셋이서 밥을 먹기로 했다. 메뉴는 해물찜. 서 씨는 이 씨 팔을 가볍게 잡고 걸음을 뗐다. 하지만 이 씨를 무작정 따라가는 건 아니었다.

둘은 봐둔 가게가 있는 듯했다. 하지만 가게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헛걸음을 한 지 몇 분이 지났을까, 서 씨가 말했다. "이 정도에 찜을 파는 가게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 씨가 말했다. "아, 여기에 있네요. 하여간 정복 씨 기억력은."

서 씨는 시각을 잃은 뒤 자신이 어디에서 어느 쪽으로 몇 걸음을 걸어왔는지 본능적으로 기억한다며 익숙한 곳은 길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고 했다.

청각은 더 예민해졌다고 했다. 목소리만 듣고 상대방 나이도 가늠이 된다고도. 호기심에 내가 몇 살인 것 같으냐고 물었다. 서 씨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서른 한두 살 된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난 올해 서른한 살이다.

대화를 나누던 중 수첩에 필기를 하느라 고개를 숙였을 때 서 씨가 "(저를) 봐요"라고 했다. 서 씨는 상대방이 자신에게서 눈을 떼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말이 들리는 방향으로 상대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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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씨가 말했다. "제가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옆에 누가 있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를 보고도 인사하지 않고 지나가버리는데 솔직히 상처가 되죠."

서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따금 내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시각장애가 있으니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할 수 없을 거라고 쉽게 판단하는 마음은 얼마나 누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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