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어민의 삶] (3) 나랏일 묵묵히 받아들인 결과가…정부 대책 마련 요구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답변만

낙동강은 1980년대 하굿둑, 그리고 25년 후 4대 강 사업으로 고기 씨가 말랐다. 40여 년 전 낙동강 어부가 된 김무생(69·김해시 상동면 매리마을) 씨는 이제 어부이면서도 더 이상 어부 아닌 신세가 됐다.

그래도 손 놓고만 있을 수 없었다. 4대 강 사업 이후 더 악화한 어업 현실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해야 했다. 수자원공사, 부산지방국토관리청 등을 수없이 찾아 어떠한 대책이라도 내달라 요구했다. 하지만 희망 섞인 답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최고책임기관을 찾기로 했다. 이달 초 김해·양산·부산 어민 50여 명과 함께 무작정 국토교통부가 있는 세종시로 향했다. 어민 대표 몇 명이 국토교통부 관계자와 면담을 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 씨는 당시 오간 이야기를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4대 강 사업 이후 고기가 완전히 없어졌으니 정부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대책을 세워달라고 했지. 저쪽에서는 '현재 정부에서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어민들이 지금 고기가 사라졌다는 걸 입증해서 소송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민들 스스로 용역을 해서 신뢰할 만한 자료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거다. 황당하지 않나? 우리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용역을 하라니 말이다. 학계·환경단체에서 그동안 내놓은 자료가 많은데, 그건 또 안 된다는 거다. 아이고, 어민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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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어민은 하굿둑 조성 때 한 번, 4대 강 사업 때 또 한 번 나라에 속았다. 김무생 씨는 이제 김해 상동면 매리마을에서 40년째 이어온 낙동강 어민 삶을 어쩌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남석형 기자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스스로들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굿둑, 4대 강 사업 추진 때 모두 나랏일이라 생각하며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마다 정부의 달콤한 말에 속았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나라에서 두 번 다 거짓말을 했어. 하굿둑 만들 때 설계한 교수가 '완공되면 고급 어종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지. 그런데 2년 만에 재첩·장어가 완전히 사라졌고, 잉어·향어도 계속 줄어들었어. 4대 강 사업 때도 학자들이 '완공 후 4년 지나면 고기가 100% 복원될 것'이라고 했거든. 내일모레가 4년째 되는데, 복원은커녕 있는 것마저 씨가 말랐어. 그래서 이런 참담한 현실을 알아달라는 거다. 무턱대고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대책을 세워달라는 거야. 그런데 정부에서는 직접 증명해서 소송하라는 얘기나 하고 있다."

그랬다. 나랏일 앞에 언제나 피해를 보는 건 오랫동안 삶의 터전을 지킨 이들, 그리고 힘없는 자들이다. 자신들도 그렇지만, 낙동강이 앓아가는 모습에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진다.

김 씨는 "옛이야기 하면 무엇하랴"라면서도 말을 이어간다. 잠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낙동강 하면 곧 1급수지. 배 타러 나가서도 먹는 물 챙겨 나갈 필요가 없어. 강물 바로 떠먹으면 되니까. 그런데 아무래도 강가 사람들이 간디스토마가 많았지. 민물 회를 안 먹는 애들도 학교에서 대변 검사하면 줄줄이 검출됐거든. 물을 날것 그대로 먹은 영향이겠지. 그건 그렇고, 지금 생각해보면 재첩 사라진 게 참 아쉬워. 그때는 물 빠지면 백사장에 뿌연 묵 같은 것이 깔렸어. 재첩 수정하는 과정인 거지. 참게도 많았는데 지금처럼 고급으로 쳐주지도 않았어. 그때는 낙동강이 우리에게 마냥 내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김 씨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는지 표정이 굳어졌다. 시선은 녹색으로 변한 낙동강을 향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먼 산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일모레 일흔인데 이젠 다른 일은 하지도 못해. 돈 남아있는 거 조금씩 뜯어먹으며 살고 있는 거지. 그래도 애 둘 공부며 결혼까지 시킨 배를 버릴 수는 없어. 어떻게든 다시 고기를 잡을 수 있게 문을 계속 두드려봐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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