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통영시민이 소반장 공방 철거 반대하는 까닭

추용호 소반장 공방 철거에 왜 경남 통영시민들은 반발할까? 왜 통영 시민사회와 종교계까지 나서 이 문제를 지적할까. 그리고 인지도가 높은 국회의원까지 공방 현장을 방문하고 이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하려고 하는 것일까.

통영시는 '추용호 소반장이 문화재이지, 공방 자체는 문화재적 가치가 없어 철거는 당연하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집을 비워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공방 철거 문제는 단순히 '공방을 옮기는' 문제가 아니란 지적이 있다.

추 소반장과 시민단체, 시민들은 이 도로 개설로 사라질 이곳의 역사와 상징성을 크게 주목하고 있다.

우선 추용호 장인이 통영 12공방을 대표하는 장인 중 한 명이란 점과 국가가 인정한 무형문화재란 점, 100년 이상을 소반장으로 살아온 추 소반장 부자의 삶이 묻어있는 곳이다.

추용호 소반장의 공방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시민단체 회원들이 언론 인터뷰를 하거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길은 추 소반장 공방 앞 도로다. 통영시는 공방을 뜯어 이 도로를 2차로로 넓힌다는 계획이다. /허동정 기자

특히 공방 대들보에 무진년(1868년) 4월 18일 보를 올렸다는 상량문이 있어 통제영시대 150년이 된 공방 건물이란 것과, 이 공방이 통제영 저잣거리 공방 모습의 원형이자 마지막 건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철거를 위해 통영시가 건 공탁금 7000여만 원도 문제다. 감정평가에 의한 공탁금이겠지만 실상 이 돈으로 무형문화재 공방을 차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통영시민단체 등은 "통영시가 허물려는 것이 '공방으로 대표되는 통영 문화 예술'"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추용호 장인 공방 바로 옆집이 세계적 작곡가이자 통영국제음악제를 있게 한 윤이상 선생 생가 터다. 생가 터는 현재 공터이고 지금 소반장 추용호 장인이 천막을 치고 앉은 자리다. 종교계와 시민들은 이 도로로 말미암아 공방과 함께 윤이상 이름도 지우려 한다며 더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추용호 장인 공방 옆집이 통영 독립운동가 허장완 선생과 허승완 장군의 생가 터다.

허승완 장군은 1922년 고려혁명군을 조직하고 일본 관리 처단 목적으로 암살대를 조직하는 등 1920년대 왕성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허 장군의 동생 허장완 열사는 1919년 3월 통영읍 독립만세운동을 결의하고 격문 1200여 장을 배포하려다 체포돼 같은 해 감옥에서 고문으로 순국했다. 열사 시신이 배편으로 통영으로 옮겨오자 당시 일제 감시하에 있던 시민들 중 일부가 통곡을 하고 만세까지 불렀던 일화가 있다.

허장완 선생 생가 터를 표시한 표지석은 현재 도로 개설로 뜯긴 채 방치돼 있다. 시민들은 이런 역사적인 장소와 문화 공간을 쓸어버리고 '직선 도로'를 내려 하는 통영시의 기본 개념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통영시민단체는 8일 오전 11시 추 소반장 공방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곳에는 음악가 윤이상 생가 터도 있다. 이 좋은 곳을 문화벨트로 만들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통영시는 시각이 완전히 다르다. 시는 '이곳이 상습침수구역이어서 도로를 개통해야 하고, 소반장 집이 8평 정도이고 실제 가치가 있는 집은 2~3평 정도여서 문화재 의미가 없다. 직선 도로를 내 시민 통행권과 소방도로 기능을 하게 하는 것이 낫다'는 견해다. 시 관계자는 "공방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추용호 소반장은 2014년 말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인 2014년 7월까지 집을 비워주겠다고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이후에 태도를 바꿨다"고 말했다.

추 소반장은 "이곳이 상습침수구역이라는데 지금은 지반이 높아져 그렇지 않다"고 분개했다. 그는 "7월까지 집을 비워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통영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