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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결사의지 면민 화합으로 풀어낸 창녕 영산

[경남 항일독립운동, 현장을 기억하다] (20) 함안·창녕지역 항일독립운동

김두천 기자 kdc87@idomin.com 2015년 07월 21일 화요일

경남지역에서 3·1항일독립만세운동이 처음으로 이뤄진 곳은 어디일까.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뻗어나간 독립만세 기운이 각 지역에서 언제 열매를 맺었는지 알기는 쉽지 않다.

일본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운동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관련 기록의 혼재 등이 그 이유일 테다. 또한 지역사연구자를 중심으로 한 기록 정리는 자칫 지역이기주의에 빠져 왜곡을 낳을 수도 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지난 2010년 발간한 <부산·울산·경남 독립운동사적지 조사보고서>도 이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다.

창녕 영산 시가지.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여러 조사원이 한 현장조사를 기초로 했으나 결국 관련 사료는 지역사연구자들 연구 결과물을 따르다 보니 도내 3·1항일독립만세운동 최초 발현지가 지역별로 제각각이다.

예컨대 양산 신평장터와 밀양장터 3·1항일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3일 일어났다.

양산지역 조사 보고는 이를 경남 '최초'라고 기록했다. 반면 밀양지역 조사 보고와 같은 날 일어난 창녕 영산면 지역 조사 보고는 이를 최초로 기록하지 않았다. 한데 함안지역 조사 보고에는 1919년 3월 9일 칠서면 이령리(현 칠북면 연개리) 연개장터에서 열린 것이 경남 '최초'라고 적었다. 내용대로라면 양산, 밀양, 창녕 영산보다 4일 일찍 시작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함안 칠북 연개장터를 비롯해 이곳과 가까운 함안 대산과 창녕 영산, 함안장터, 군북면으로 대규모 만세운동이 뻗어나갔다는 사실이다.

경남 '최초' 여겨지는 함안 연개장터 인근 대산·창녕 영산에 영향 미쳐

◇창녕·함안지역 3·1운동 모태 칠북 연개장터 = 지금은 칠북초등학교 이령분교가 들어선 자리는 1919년 3월 9일 군중 100여 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던 연개장터 자리다.

이 지역에 살던 김세민 선생은 세브란스의전에 다니는 사위 배도석이 서울 3·1만세운동을 준비한다는 것을 알고 이령리에서도 관련 모임을 만들었다. 서울 분위기를 살피고자 고종황제 인산(장례식)에 참여하고 3·1만세운동을 직접 본 선생은 3월 6일 이령리교회에서 동리 인사 29명을 모아 만세운동을 준비했다.

함안 칠북초 이령분교에 세워진 독립운동기념비.

김 선생은 3일 뒤 연개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이 지역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이 소식은 인근 함안 대산면으로 퍼졌다. 3일 뒤인 3월 12일 대산면 평림장터에서 만세운동이 펼쳐졌다. 대산면 하기리는 일찍이 기독교가 뿌리내렸는데, 연개 새말교회로부터 연개장터 운동 소식을 통보받은 기독교 지도자 권영수·최말종 선생이 주도했다. 시위는 평화적으로 이뤄졌으나 군중이 해산할 무렵 일본 경찰이 뒤늦게 들이닥쳐 주도자 권영수와 김성근 선생을 체포했다.

옛 함안장터 앞 거리.

닷새 뒤인 17일 장날에는 안효중·최갑률 선생 등이 앞장서고 수백 군중이 합세해 권영수·김성근 선생 석방을 요구하며 면사무소로 몰려갔다. 이때 안효중 선생도 일본 경찰에 체포되자 군중도 해산했다. 평림리 259번지 일대인 평림장터는 현재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일부 공터로 남아 현장을 특정하기 어렵다.

천도교인 중심 23인 결사단 조직 풍물 울리며 700여 군중과 "독립만세"

◇영산서 시작해 남지장터로 이어진 창녕 3·1운동 = 창녕 영산읍에는 3월 초 서울에서 3·1항일독립만세 소식이 전해졌다. 이 덕에 천도교인 구중회·장진수·김추은 선생을 중심으로 일찍이 준비가 이뤄지고 있었다. 13일을 의거일로 정한 이들은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대형 깃발을 준비하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13일 영산면 남산봉에 모인 이들을 포함한 23명은 결사단을 조직해 결사단원 맹세서에 각자 서명했다. 이들은 풍물을 울리며 영산읍내로 갔다. 일대 장꾼과 주민들이 합류해 군중은 7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창녕경찰서는 경관 1개 대대를 영산으로 급파해 구중회·장진수·김추은 선생 등을 체포했다. 남은 결사단은 격분해 회합을 한 후 창녕읍으로 몰려가기로 하고 오후 8시 다시 남산봉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 역시 일본 경찰에 체포·구금돼 6개월에서 2년 징역을 살았다.

창녕 영산 남산호국공원 내 세워진 독립운동기념비.

남산봉에는 3·1운동기념탑과 독립선언서비 등이 서 있다. 매년 열리는 영산3·1민속문화제는 단순한 기억의 장이 아니라 영산지역민들의 화합과 번영, 안녕을 기원하는 축제로 3·1항일독립만세운동을 알려내고 있다. 영산에서 시작한 창녕 항일독립운동 기운은 18일 창녕 남지장터로도 이어진다. 당시 5일장이 서던 곳은 상설시장이 들어서 있고 만세 시위대가 진출해 독립만세를 외치던 주재소 자리는 경찰서 주차장이 됐다. 그러나 이곳에서 항일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장치가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함안장터 3000·군북 냇가 5000명 저항 칠원장터 등 표지 없는 곳 있어 아쉬움

◇규모 크고 격렬했던 함안 3·1운동 = 함안 칠북을 시작으로 함안 대산과 창녕 영산으로 퍼진 만세운동 소식은 멀리 함안장터에 닿았다. 지금은 한우국밥촌으로 유명한 현 함안면사무소 일대가 함안장터 만세운동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함안장터 만세 운동은 1919년 고종황제 인산에 참여해 서울 3·1운동을 직접 경험한 이 지역 유지들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들은 3월 19일 비봉산에 올라 고천제(告天祭)를 지낸 후 봉선동(현 봉성리)에 모여 운동을 전개했다.

이날 모인 시위대 3000명은 함안주재소를 습격한 뒤 함안군청(현 함성중학교 자리) 앞으로 몰려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군청과 등기소, 우편국, 일본인 소학교를 차례로 습격해 일제 억압에 피눈물 흘린 조선 민중의 한을 표출했다. 이 사태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 일본은 마산 중포병대대와 경찰을 급파해 주동자 검거에 나섰다. 이때는 시위가 끝났음에도 일본 경찰은 65명을 붙잡아 43명에게 징역 6개월에서 7년의 중형을 내렸다.

함안장터 만세운동 이튿날인 3월 20일 군북에서도 만세 함성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조상규·조용대·조용규·조경식·조두규 선생 등 함안 조씨 일가는 군북면 거사일을 20일로 정하고 전날인 19일 함안장터 운동에 먼저 참여한 후 검거 시작 전 군북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함안장터서 열린 운동으로 일본 감시가 심해지자 거사를 두 단계로 나눠 진행했다.

조상규 선생 등은 이날 오전 9시 동촌리 신창야학교 교정에서 학생 50여 명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는 일본 경찰 감시망을 분산시키고자 함이었다.

조상규 선생 등은 신창야학교를 벗어나 낮 12시 본 시위가 예정된 군북장터로 이동했다. 한데 이곳에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 혼잡이 예상되자 부득이 장소를 냇가로 바꿨다. 이때 모인 이들은 5000명(일본 기록 3000명)으로 추산된다. 오후 1시 조상규 선생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군북 전역에 울려 퍼졌다. 신창학교 진압에 동원된 일본 군경은 공포탄으로 위협했으나 군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군북면사무소와 주재소로 나아갔다. 이곳에서 군중은 전날 함안읍에서 체포된 이들에 대한 석방을 요구했다.

일본 군경은 그러나 소방차에 검은 물감을 타 뿌려댔고, 화가 난 군중은 투석전으로 맞섰다. 결국 일본 군경은 조준사격을 가했고, 이때 조용규 선생이 손에 태극기를 부여잡은 채 숨진 것을 비롯해 21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군북 냇가에 세워진 3·1운동 기념탑이 이곳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설명하고 있다.

이렇듯 연개, 함안읍, 군북으로 이어진 만세운동 소식은 칠원까지 들렸고, 칠원장터(현 칠원상설시장)에서도 3월 24일(300여 명 참여)과 4월 3일(700~800여 명 참여) 대규모 만세 시위가 펼쳐졌다. 한데 이곳에서 3·1항일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는 흔적과 이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이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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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천 기자

    • 김두천 기자
  • 창원시청과 시의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