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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울음이 타는 강 보겄네

[남강오백리] (27) 함안군 함안천~함안·의령 잇는 마지막 다리 송도교

권영란 기자 kyr65@idomin.com 2015년 06월 19일 금요일

초여름 해 저물 무렵이면 내처 걷고만 싶은 악양둑방길이다. 둑방은 남강 물길을 따라 곧장 낙동강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이내 함안천에서 끝난다. 함안천은 함안군 남쪽 샛강들인 검암천·신음천·운곡천·옥열천 등 물길을 다 보태 북쪽 남강으로 흘러왔다. 함안군 법수면과 대산면의 경계를 이루며 이곳에서 남강 물길과 합수하고 있다.

바위 틈 빠져나오니 쏟아지는 푸른빛

함안천과 남강이 합수하는 두물머리 강변 언덕에는 악양루(岳陽樓)가 있다.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초행길에서는 좀체 찾기가 힘들다. 악양둑방을 나와 악양교를 건너와 도로변에서 표지판을 봤음에도 쉬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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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는 함안천이 끝나는 강변 어귀 큰 식당과 주차장 뒤에 있다고 했다. 강으로 난 덱 아래에는 두 대의 보트가 매여 있다. 옛 나루터가 여기였는가 짐작만 될 뿐이다.

"요새는 별로 사람들이 안 찾아오는데…. 이쪽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됩니더."

악양루로 가는 진입로는 정비돼 있지 않고 주차장은 어수선했다. 기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갈까 하던 시큰둥한 마음은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건물을 돌아서자 금세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바위를 절단해서 마치 그 틈새를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벌려놓은 듯한 입구였다. 돌계단을 올라 틈새를 빠져나오니 눈앞이 훤해지며 함안천과 남강이 차례로 들어온다. 악양루는 어디 있는지 뵈지도 않으나 눈앞에는 겨우 한 사람 지날 만한 풀숲길이고 두물머리 강변 유역은 눈이 아릴 정도로 푸른빛들이다.

그리고 악양루. 중국 악양의 풍광과 비길만한 곳이라 여겨 '악양'이라고 했단다. 조선 철종 8년(1857년)에 세워졌다고 하나 지금 누정은 한국전쟁 후에 복원했고 1963년에 새로 보수·개축한 것이다. '악양루'라는 현판은 청남 오재봉(菁南 吳齋峯)이 쓴 것이다. 1992년 문화재자료 제190호로 지정됐다.

악양루에서 바라본 함안천과 남강이 합수하는 두물머리 풍경.

악양루는 동남쪽에 들어앉아 서북쪽을 바라보고 있어 저물 무렵 누정에 오르면 고즈넉한 강변으로 지는 햇살과 잔잔한 물결에 온갖 시름을 다 털어낼 수 있을 듯하다. 남강 건너 너른 들판이 편안하고 넉넉하기만 하다.

이곳 악양루에서 보이는 남강 건너는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이다.

"북실이라 했는데 마을 앞에 평평한 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앞으로 남강이 흐르지예. 누구네 집 마당에서도 강이 보인다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앞들에 나가모는 강이 훤하게 보이지예. 마을 뒷산은 흙이 빨개가지고 붉은 산이지예. 옛날부터 부미동이라고 했고예."

백곡보건진료소에서 만난 이기석(65) 아재는 남강변 가현리에서 백곡, 적곡리는 죄다 부자동네라고 했다. 충적층이라 농사가 잘 되고 상류에 댐이 생긴 이후로는 물난리 걱정 없이 하고 있단다. 예전에는 악양마을에서 적곡리를 잇는 악양나루가 있어 이곳 함안 사람들이 의령 적곡리에 닿고 다시 정곡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새나루'라고도 했다.

건립 뒤 수시로 의혹 제기된 노래비

함안천을 가로지르는 악양교를 건너 악양루에 닿기 전 도로변이다. 오른쪽 산자락 아래 빗돌이 서 있다. '처녀뱃사공 노래비'이다. 윤부길 작사, 한복남 작곡, 황정자 노래의 '처녀뱃사공'이 이곳 악양나루가 무대라 한다.

뜻밖의 사실이었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군인 간 오라버니 소식이 오네 큰애기 사공이면 누가 뭐라나 늙으신 부모님을 내가 모시고 에헤야 데헤야 노를 저어라 삿대를 저어라~ …'

노래를 끝까지는 다 부르지 못해도 다같이 '떼창'을 하면 또 다 아는 것처럼 부를 수 있는 것이 또 이 노래지 않은가.

함안천변에 있는 '처녀뱃사공' 노래비.

'처녀뱃사공'은 60년 넘는 세월 동안 국민애창곡이 되었다. 애달픈 사연의 노랫말과 구성진 가락으로 한국전쟁 이후 상흔만 남아 있는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고 근대 개발 바람에 고단한 마음을 달래주었던 노래라 할 수 있다.

노래비 앞면에는 '처녀뱃사공' 노랫말이 새겨 있고 뒷면에는 유래가 새겨 있다. 비문에 따르면 이곳 악양나루 뱃사공이던 오빠가 한국전쟁 당시 참전하고 그 후 두 여동생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오빠가 돌아올 때까지 사공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도 오빠는 돌아오지 않고…. 노랫말을 쓴 윤부길 씨는 가수 윤항기·윤복희 남매의 부친으로 1952년 이곳을 지나다 이야기를 듣고 노랫말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노래비는 2000년 건립 후 지난 15년 동안 수시로 의혹이 제기돼왔다. 노래의 배경이 되는 무대는 이곳 함안천을 오가는 악양나루가 아니라 악양마을과 의령군 정곡면 적곡리를 잇는 남강변 악양나루라는 것이다. 의혹을 제기한 이는 또 처녀뱃사공의 실제 주인공이 의령군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실공방이 붙은 것이다. 함안군으로서는 이곳을 국민애창곡 '처녀뱃사공' 무대로 알려나가며 인근 악양루와 함께 문화관광 개발을 구상했을 것인데 그만 제동이 걸려버렸다.

노랫말 속의 '낙동강'에 대한 의문도 가시지 않는다. 혹자는 '낙동강 강바람에 치마폭을…'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생각하면 처녀뱃사공은 당연히 낙동강변에 있는 작은 나루가 무대이지 않겠냐고 말한다.

"여기가 남강 끝자락이라 여기 부는 바람이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기도 하지만…. 그게 어째 끼워 맞춰보려니 그리 말하는 거고요. 노래 가사라는 게 사람들이 쉽게 잘 알 수 있게 쓰지 그리 머리 굴리게 쓰지는 않아요. 남강을 낙동강이라고 착각했는지도…."

'처녀뱃사공'에는 한국전쟁이라는 현대사가 있고 그 속에 한 가족의 애달픈 사연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동시대를 겪은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이야기 같아서 좋아하고 불렀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전쟁에 나간 오라버니를 대신해서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고 처녀가 노를 젓고 있으니, 이게 이야기이고 역사라고 말한다.

'처녀뱃사공' 노래비 앞에 서서도 이곳이 진짜 이야기 속 배경인지 긴가민가했다. 함안천은 기대했던 것보다 강폭이 좁고 수량이 많지도 않았다. 함안군에서는 2006년부터 해마다 '처녀뱃사공 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한다.

낙동강 가까워지니 잔잔해지는 물결

악양루를 돌아 다시 이어지는 둑방길은 하기제이다. 둑방에는 삐삐(삘기)가 지천으로 하얗게 피고 있다. 보릿고개 시절 찔레순 따먹던 아이들이 더는 따먹을 수 없을 정도로 찔레순이 억세어지면 이제 갓 올라와 부드러운 삘기를 뽑아 껍질을 까고 속엣것을 발라 껌처럼 질겅거리며 하루종일 씹곤 했다.

하기제 다안나루터는 찾기가 힘들었다.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에서 남강 건너 의령군 지정면 성당리 가는 뱃길이었다. 마침 남강에 떠 있는 한 척의 배가 눈에 들어온다. 노를 저으며 건너가는 건지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옛 나루터가 이곳 어디쯤에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당리 강변길은 남강 하류에서 보기 드문 길이다. 둑방길이 아니라 물길을 따라 강과 가장 가까이에서 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다. 높이도 굽어지는 강폭도 욕심 없이 흘러가는 듯하다. 성당리 보건지소 옆 언덕길을 타고 오를 때만 해도 이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주 편안해서 겸손함까지 느껴지는 길이다.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강변 텃밭에는 무성하게 뻗은 푸른 이파리 사이로 흰 감자꽃이 피고 있었다. 낙동강이 가까워질수록 남강 폭은 점점 넓어지고 높이는 눈에 맞춰지고 물결은 순해지고 있었다.

낙동강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강변 횟집이나 가게 이름들에 낙동강이라는 상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표지판을 보니 남강댐에서부터 81km 정도 내려왔다.

금세 송도교가 보인다. 옛 송도교와 새 송도교,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다. 정암진에서 정암철교와 정암교가 나란히 있듯이 꼭 그와 같은 모습이다. 옛 송도교는 정비되지 않은 채 가끔 주민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나 트럭만 드나드는 낡은 다리이다. 의령 쪽 다리 입구에는 예전에는 검문을 했었는지 빨간 벽돌의 검문소가 방치돼 있다.

다리 아래에는 두 척의 보트가 매여 있어 나루터였음을 짐작게 한다. 송도나루터는 남강이 낙동강으로 나갈 때 가장 끄트머리에 있는 나루이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과 부산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으로 북한군과 국군이 격전을 벌였던 곳이기도 하다.

송도나루터 근처 묶여 있는 배.

"전쟁통에는 여기가 피바다였다더구만. 인민군들이 여기 수천 명이 물에 빠지고 국군, 미군들도 억수로 많이 죽었다고 했제. 전쟁 끝나고도 사람들이 밤에는 무서워서 이 근처에 못왔다더라. 그래도 여기 나루가 있으니 사람들이 드나들 수밖에 없었제. 엄청 큰 배가 다니기도 했어."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주민의 말이다. 처음 송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이곳 나루에는 큰 도선이 있었다. 미군이 버린 도하용 철선 2척을 묶은 배였다고 한다. 버스를 실을 수 있는 배여서 하루에도 몇 차례 버스가 배에 오르락내리락했다고 한다. 근데 또 그게 이곳 마을 사람들의 구경거리이기도 했단다.

옛것은 새것에 밀려갔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던 송도교가 시공 6년 만인 1972년 완공됐을 때 송도나루는 금세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다. 옛 송도교도 지금의 새 송도교가 들어설 때 이미 기능을 다했다. 나루도 옛 다리도 희미한 기록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남강은 의령군에서는 지정면 포외제를 따라가야 하고 함안군에서는 대산면 장포제를 따라간다. 남강 물길은 의령군 기강나루 앞에서 낙동강을 만나 창녕 남지들판 앞으로 흘러갈 것이다. 낙동강까지는 이제 9km 정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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