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장님]진주시 상봉동 41통 하태경 통장

진주시 상봉동 40통과 41통은 화인아파트(420여 가구)를 양분하고 있다. 입주한 지 20년이 넘고, 오랫동안 사는 주민이 많아 서로 의지하며 사는 아파트단지다. 41통장 하태경(여·54) 씨는 4년째 통장을 맡고 있다.

하 통장은 밀양이 고향이지만 17년 전 남편 직장을 따라 이곳으로 이사왔다가 눌러 앉았다. 중간에 잠깐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가 다시 화인아파트로 돌아왔다.

하 통장은 "아파트가 조용하고 주민들 간의 정이 넘친다. 대소사를 챙길 뿐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십시일반으로 돕는다. 오래 살다 보니 정이 들어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아파트 자랑을 빼놓지 않았다.

하 통장은 두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어느날 저녁 무렵 한 주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애들만 있는 집에 누가 초인종을 눌러 문을 열어달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애들이 놀라 울며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8년째 풍물 배우는 하태경 통장. /김종현 기자

급히 그 가정으로 달려갔더니 웬 여자가 문 앞에서 벨을 누르고 있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녀는 실태조사원이고 그날까지 조사를 마감해야 하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를 끝내지 못한다며 안절부절못했다.

밖에 나갔던 부모가 돌아와 잠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양쪽을 달래 무사히 조사를 마친 적이 있다.

또 한 퇴직 공무원 집에 김장을 전달한 사연도 소개했다. 여든이 다 된 한 퇴직 공무원은 어느날 하 통장을 붙들고 "아내가 치매가 심해 음식을 하지 못한다. 혹시 동에서 김장 담그기 할 때 우리집도 한 통만 줄 수 있겠느냐"며 사정했다. 원래 김장 담그기는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라 해당이 안 되지만 동장에게 사정 얘기를 해서 매년 김장 한두 통을 전달하고 있다.

하 통장은 "통장이 하는 일이 그런 것 아닌가요.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해결해주는 것이 통장의 임무"라고 말했다.

하 통장은 조용해 보이는 외모이지만 봉사활동과 동사무소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선다.

하 통장의 봉사활동 경력은 10년이 넘었다. 우연한 기회에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시작했는데, 10년 이상 활동했다. 그곳에서 4년 동안 총무 일도 했다.

상봉동 주민자치센터에서 한국화를 배웠고 8년째 풍물을 배우고 있다. "갑자기 상쇠를 맡은 사람이 빠지면서 실력도 안 되는 사람이 얼떨결에 상쇠를 맡아 6년째 하고 있다"며 겸손하게 말했다. 하 통장은 사물 중에서 징만 빼고 장구, 꽹과리, 북을 배웠다. 진주 풍물경연대회에서 개인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파다. 그때 김덕수 씨가 사인한 꽹과리를 부상으로 받아 아직 고이 간직하고 있다. 매주 2번 열리는 풍물교실은 빠지지 않고 있으며, 이들과 함께 진주 풍물경연대회에 나가 은상도 받았다.

하 통장은 "풍물을 잡으면 아직도 설렘이 있다. 신명나게 한바탕 놀음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며 "부끄럼이 많은 성격이었는데 지신밟기 행사를 하면서 앞소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성격이 바뀌었다. 남에게 복을 빌어주면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수익금을 좋은 데 쓰니까 보람도 있다"고 말한다.

상봉동에 17개 봉사단체가 있으며 매년 한 단체가 주관단체를 맡아 상봉동에서 주최하는 지신밟기나 경로잔치, 김장 담그기 등을 총괄한다. 지난해에는 통장협의회가 주관 단체를 맡았고, 통장협의회 총무였던 하 통장이 중책을 역임했다. 하 통장 스스로도 지난해는 무척 바빴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 통장은 "나이가 들면 악기 하나 정도는 배워야 한다. 최근에는 남편에게 하모니카 배우기를 권유했는데 얼마나 노력했는지 1년 만에 수준급이 됐다.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밝게 변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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