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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거스르지 않은 둑…치수란 모름지기 이래야

[남강 오백리] (26) 함안군 법수면 석교천∼악양 둑방

권영란 기자 kyr65@idomin.com 2015년 06월 05일 금요일

남강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형성된 의령군과 함안군을 톺아간다. 강 이쪽을 따라가다가 다시 강 건너 저쪽을 따라간다. 맥락 없이 들쭉날쭉하지만 물길을 따라가는 걸음은 자연스레 재다. 지난 25회 의령군 정암진에서 용덕면 용덕천까지 갔던 걸음은 되돌아 나와 정암철교를 건너 남강 반대편 정주로를 타고 간다. 남강 물길을 따라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함안군 군북면 월촌리 군북제. 둑에 오르니 대낮 햇볕이 정수리에 내리꽂힌다. 벌써부터 시작된 무더위에도 강변 늪지 버드나무와 풀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기세 좋게 푸르다. 햇볕 사이로 엷은 강바람이 묻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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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변 백산들에는 번호가 있다

3㎞가 훨씬 넘을 군북제는 석교천 앞에서 멈춘다. 석교천 미남교는 군북면과 법수면의 경계를 이룬다. 1998년 미남교가 놓이기 전까지는 군북면과 법수면 주민들은 서로 왕래가 쉽지는 않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물길을 따라 미남제에 이어 황사제에 닿는다. 강가의 논밭들은 침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높이, 좀 더 높이 쌓고서야 비로소 옥토가 됐다.

"옛날에는 저게 앞 들에 갈가마귀가 많이 날아들기도 했다는데…. 마을 생김이 꼭 기러기가 줄을 서서 날아갈 때 같은 기라. 그래가꼬 옛날에는 비아동이라 했다네."

황사마을 주민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다시 장백로를 따라 가는 길에는 함안 황사농공단지가 들어서 있다. 강변 유역 면 단위에는 농공단지 등 산업단지들이 제법 눈에 띈다. 다른 시·군에 비해 많은 듯하다. 농공단지 개발정책은 1983년 제정된 '농어촌소득원개발촉진법'에 따라 1984년부터 농촌지역에 유치된 것이다. 도농 소득격차를 줄이고 농촌공업화로 소득을 향상하겠다는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이 정책이 얼마만큼 실효성이 있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백산제 둑길에서 내려다본 남강 유역. 수확을 앞둔 보리밭과 흰 모래톱, 남강 물길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이다.

물길과 제방을 따라 법수면 주물리까지 이어지는 들에는 대규모 비닐하우스가 들어선 곳이 대부분이다. 들을 꽉 채운 비닐하우스 안에는 다양한 시설작물을 재배하고 있는데 얼핏 보니 수박넝쿨이 무성하다. 함안·의령은 수박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함안 수박은 당도가 높고 식감이 좋아 오래전부터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있다.

황사들, 사정들, 백산들로 이어지는 제방 아래 논밭은 그래도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망종을 앞두고 이제 수확을 앞둔 보리밭, 밭갈이 후 물을 채워놓은 무논, 이미 모내기를 끝낸 논 등…. 둑방으로 들어서다가 혼자 무논에서 일하고 있는 아재를 만났다.

"요는 기계가 못 들어와서 내가 앵기는 게야. 근데 이것들이 더 잘 자라. 아무렴 기계보다 내 손이 낫제."

다 심고 논가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모들을 들고 다시 가장자리를 메우고 있다. 사정제 둑방으로 가는 인적도 없는 길목에는 뽕나무 두어 그루가 검붉은 오디를 달고 있다. 가지로 툭툭 치면 후두둑 금방 떨어져 내릴 듯 잘 익었다.

사정리에서 백산리에 이르는 넓은 들은 강변 들을 메워서 경지정리 한 것이다. 넓은 들판은 하우스로 꽉 차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이다. 함부로 들어섰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겠다 싶다. 그래서인지 지나다보니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표지판이 있다. 들로 들어서는 도로변 입구마다 백산들1, 백산들2, 백산들3…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겨 놓았다. 그리고 하우스마다 번호가 붙여진 문패가 달려 있다.

"이기 다른 데는 없는 긴가? 아무래도 편하고 좋제. 하우스 자재나 종자 주문을 해도 안 헷갈리고 잘 찾아오제. 수확한 걸 내놓고 공판장에 가져갈 때도 안 헷갈리고…. 아닌 말로 일하다가 새참을 배달시켜도 잘 찾아오것제."

백산들3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만난 아지매는 툭 던지듯 이야기해놓고는 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외범이산 '콧등 명당'을 차지한 이는?

이물리(泥勿里) 나루터를 찾아가는 길에는 물길을 따라 동쪽 백곡교에 닿기 전이다. 옛 나루 근처에는 '나루터 가는 길'이라는 식당이 있고 물가에는 배를 밀어내리거나 묶어두는 흔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빈 나루터에는 큰 두루미가 목을 빼고 있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아간다.

이물리 나루터는 풍탄진(楓灘津)으로 불리었다. 이물리란 남강 주변이 거의 모래지만 이곳만은 유독 진흙이라서 진흙이(泥)자를 붙였다고 한다. 물길 흐르는 곳으로 백곡교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함안군 법수면 주물리에서 의령군 정곡면 백곡리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법수면 관계자에 따르면 이곳 나루터는 함안과 의령군 정곡면을 잇는 수로로 10배는 더 빠른 지름길이었다고 한다. 백곡교가 새로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큰 도선이 있어 승객을 태운 버스를 건네주곤 했단다.

강 건너 의령군 쪽 지형은 강변 둔치와 들을 끼고 평탄해보이나 이쪽 이물리 나루터 쪽은 하류에서 덤(벼랑)이 남강과 어울려 풍광이 뛰어나다. 옛적 번성했던 나루터였을 때 외범이산(外虎山) 덤이다. 나루터로 내려오기 전 외범이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놓여 있다.

외범이산은 일호산(日虎山)이라고도 부른다. 마치 수컷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형상이라 한다. 이곳에는 '콧등 명당'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부터 호랑이 콧등자리가 명당으로 꼽힌단다. 외범이산이 수컷 호랑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콧등 명당'을 찾으려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그런데 의령군 정곡면에 사는 가난한 선비가 '콧등 명당'을 차지했다. 선비가 부친상을 당한 후 묫자리를 구하러 다니다가 이곳 외범이산 중턱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어린 여우 한 마리가 포수에게 쫓기는 것을 보고 방갓으로 숨겨 주었는데 포수가 가고 난 뒤 여우가 그 은공을 갚겠다며 '콧등 명당'을 가르쳐 줬다는 것이다. 가난한 선비는 거기에다 부친 묘를 쓴 후 만석지기가 되었다고 한다. '콧등 명당'을 차지한 옛 이야기 속 선비는 아니겠지만 정곡면에는 재벌 삼성가의 산실인 호암 이병철 생가가 있다.

악양 둑방, 남강을 고스란히 품은 길

이물리 나루터에서 백곡교 아래를 지나오면 악양제 '악양 둑방'으로 곧장 이어진다. 몇 해 전부터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제방 둑길이 자전거도로, 또는 농로로 닦였고, 또 강변에 체육공원이나 체험시설들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 둑길은 5월부터 8월까지 내내 붉은 꽃양귀비, 파란 수레국화, 붉은 끈끈이대나물 등 빛깔 고운 꽃들이 지고피고 한다.

"여게가 마을이 된 거는 얼마 안 되제. 원래 늪지대였더기라데. 온통 갈대밭이고…. 사람 살기가 힘든 곳이었다더만 둑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농사를 지은 기라."

이한철(70) 씨는 법수면 윤외리 일대 마을은 대한제국 말기 제방을 쌓으면서 형성되었다 한다.

"악양제방을 등지고 집들이 나란히 이어져 있어. 옆집은 있어도 앞집 뒷집이 없다고 봐야제. 제방을 쌓기 전에는 사람이 안 사는 데였제. 악양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따온 거제. 우리나라에서 경치가 좀 좋다 싶으면 전부 중국 지명을 따온 게 많잖은가. 저기 산자락에 악양루가 있는데 거기 올라서면 경치가 한 마디로 기똥차제."

둑길에 올라서니 강변 유역 넓은 둔치는 초지로 덮여 있다. 그 뒤로 이제 수확을 앞둔 우엉밭이 이파리가 무성해져 연밭인 듯하다. 초지에는 여러 대의 경비행기가 놓여 있다. 전시용 모형비행기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란다. 성우항공에서 운영하는 경비행기로 실제 비행체험을 할 수 있단다.

악양 둑방길을 수놓은 꽃들과 둔치에 있는 경비행기.

"저렇게 작은 걸 어떻게 탈까 싶은데 타보고도 싶네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이곳 풍경은 정말 아름다울 것 같아요. 이곳 강이 남강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또 남강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네요."

둑길을 따라 바람개비가 줄을 잇고 작은 풍차가 있고 군데군데 쉼터 겸 몇 채의 정자가 있다. 정자에는 앉아 쉬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 비치돼 있다. 작은 도서관인 셈이다.

악양 둑방길. 풍차와 바람개비, 쉼터가 있다. 무엇보다 꽃양귀비, 수레국화 등 꽃들이 둑길을 수놓고 있다.

며칠 동안 경남지역을 여행 중이라는 임서현(38) 씨는 '악양 둑방'이 인위적으로 가꾸긴 했으나 강변 둔치와 습지, 군데군데 펼쳐지는 흰 모래톱 등 남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쉼터라고 말했다.

'악양 둑방'은 시멘트로 포장하지 않은 흙길이다. 자잘한 자갈과 보드라운 흙이 섞인 길은 맨발로 달리고 싶을 만큼 자연스러운 길이다. 이곳은 함안군이 2010년부터 법수면 악양 둑방 일대를 중심으로 '에코싱싱둑방마라투어'를 실시함으로써 조성된 것이라 한다. 둑방마라투어는 매년 5월에 하는데 지난해와 올해는 열리지 않았다. 지난해는 세월호 참사 직후였고, 올해는 하천종합정비계획으로 취소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말 법수면 고향으로 돌아와 사진작업을 하고 있는 이인환(41) 씨는 최근 틈틈이 페이스북에 남강과 법수면 둑길 등 이 일대를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다.

함안군 법수면 주물리 이물리 나루터로 가는 길. 나루터는 없어졌지만 근처 식당 이름이 이곳이 나루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곳 나루에는 버스를 싣고 다니는 큰 도선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 옛날 강가 마을 나루터를 다녀왔습니다. 삼십 년이 넘었는데 나루터는 여전히 있었고 이쪽과 저쪽을 오가는 배는 없었습니다."

이 씨는 남강은 그나마 4대 강과 달리 물의 흐름을 따라, 강의 원래 모습에 따라 비교적 잘 치수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잘 보면 물가 우거진 수풀도 그대로 하나의 생태를 잘 이루고 있습니다. 굽이치는 곳은 굽이치게 놔두고 강을 따라 둑을 쌓아 범람을 막고 농토를 가꾼 곳이지요. '함안 둑방길'은 물길을 따라 쌓은 오래된 제방이라 곡선도 우아하고 주변이 자연 그대로여서 인위적 공원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이 씨는 수십 년이 흘렀는데도 유년기에 봤던 남강과 지금의 남강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곳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꼭 필요한 만큼만 손을 댔다고 말한다. 그는 서슴없이 이곳 '함안 둑방길'은 치유의 길이라고 말한다.

물길을 따라 굽어 돌아가는 '함안 둑방길'은 함안천이 남강과 합수하는 곳까지 이어진다. 제방과 물길 사이 강변 유역에는 더러는 누런 보리밭이 펼쳐지다가 푸른 우엉밭이 펼쳐진다. 마음대로 자리 잡은 물버들, 미루나무, 뽕나무 등이 천지사방으로 자라고 있고 그 사이로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희고 보드라운 모래흙길이 나있다. 이곳은 함부로 손대지 않아 여전히 남강 원형이 살아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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