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강가 풍경에 취해

어제 이른 새벽부터 안개를 들이쉰 탓일까. 아니면 허약한 몸이 그것도 촬영이라고 부대껴 지쳐 버린 탓일까. 아니다. 며칠 동안 몸살 기운이 오락가락했다. 촉박하긴 하지만 기회라면 기회라고도 할 수 있는 출판 관련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하고 작품을 선정하고 아직 미완인 작품을 보강하느라 손가락은 신나게 춤추었다.

나는 온통 문자들의 세상에 흠뻑 젖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막상 그 세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보니 몸은 기력을 소진하고 맥을 추지 못한다. 그래도 할 일은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다리는 것이 일이라면 기다려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일 것이고, 쓰라림을 견뎌야 하는 것이 일이라면 그 쓰라림도 견뎌야만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터 너른 마당에 제비꽃이 피었다. 그 존재감조차 알 수 없는 작고 앙증맞은 제비꽃들이 마치 줄을 서듯 피어 있기도 하고 서로 껴안듯 둥그런 품을 지어 모여 피어 있기도 하다. 누가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저들은 무심한 곳에서도 아름답고 향기롭고 무엇보다 생명 그 자체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처럼 그것이 나의 일이라면 나는 그렇게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강가 마을 둔옥지에 비가 내린다. 보슬비가 흩날리고 있다. 새삼 새 소리도 빗소리와 어우러져 촉촉하고 싱그럽다. 멀리 서쪽 바다에서부터 강을 따라 거슬러 온 바람인지 강가의 물내음에는 눈물이 배어 있다. 나는 멀리 하늘을 바라본다. 나의 작업실 자유새의 둥지에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가 내 가슴에도 툭툭 떨어진다.

어제 짙은 안개가 낀 강가 풍경에 너무 도취해 있었던 탓이리라 생각한다. 강가 마을 둔옥지에 오늘도 비가 내리고 세상은 무덤덤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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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010-9021-2508.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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