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농을 찾아서] (91)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강동규 사장

도심을 벗어나니 공기가 싱그럽다. 하루하루 다르게 짙은 녹색으로 변해가는 들녘 사이로 달리다 보니 벌써 농장에 도착한다.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강동규(53) 씨 시설하우스다. 우기를 앞두고 하우스 앞 배수로를 정비하던 강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건넨다. "취재할 것도 없는데 오셨네요. 일단 하우스부터 한 번 둘러보시죠."

◇하우스 규모에 놀라고 20m 토마토 줄기에 또 깜짝 = 강 사장과 함께 들어선 시설하우스는 규모가 엄청나 마치 커다란 성문을 열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규모가 크다 보니 하우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골과 골 사이로 붉은색을 띠기 시작하는 토마토가 고개를 내밀고, 수확한 토마토 상자가 골마다 10여 개씩 쌓여 있다. "3500평입니다. 오늘은 토마토를 따는 날이라 좀 바쁘네요. 유통과정에서 숙성이 되기 때문에 약간 붉은색을 보일 때 수확을 해야 합니다.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는데 올해는 가격이 작년만 못해 수익이 많이 줄어들 것 같네요."

그런데 토마토 줄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흔히 주변에서 본 토마토 줄기는 허리춤 높이에서 주렁주렁 달린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시설하우스 토마토는 그게 아니었다. 작은 배지에서 자란 토마토 줄기는 마치 칡넝쿨처럼 한참 땅을 따라가더니 솟구쳐 오른다. 강 사장이 내 호기심을 읽고 설명을 보탠다. "아직 다 자란 것이 아닙니다. 보통 한 단(토마토가 열리는 사이 간격)이 60㎝ 정도 되는데 30단까지 키웁니다. 최대 20m는 됩니다."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는 강동규 씨.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일본인 좋아하는 '데프니스' 재배, 작년 30만 달러 수출탑 수상 = 한 단에 3∼4개씩 30단까지 수확하면 수익은 어떨지 궁금했다. 강 사장은 지난해 토마토 농사로 7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단다. 이 중 상자 비용, 선별비(유통비), 운임 등을 빼고 자신의 통장에 입금된 액수가 5억 8000만 원이었다. 여기서 다시 각종 부대경비를 제외하면 25∼30% 정도가 순수익인데 작년엔 1억 800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작년엔 3억 4500만 원어치를 수출해 30만 달러 수출탑도 수상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많이 어렵네요. 엔화 가치 하락에다 과잉생산으로 토마토 가격도 내려 작년의 3분의 2밖에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엔저 현상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국내에서의 과잉생산을 막기 위한 정부차원의 대책은 없을까?

강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열변을 토한다. "농정 당국이 토마토를 수출 주력품목으로 키우겠다고 했는데 판로는 생각 안 하고 농민들에게 꿈만 잔뜩 심어 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작년 이맘때 세월호 참사가 터져 국내 경기가 위축됐음에도 토마토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과잉 생산으로 가격이 더 내려가네요."

올해 토마토 농사가 재미없다고 하지만 강 사장에겐 남들과 다른 뭔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강 사장은 "제가 재배하는 토마토는 '데프니스'라는 유럽 품종으로 과육이 단단한데다 저장성이 좋은 것이 특징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햄버거용 등으로 날것으로 소비를 많이 하는데 물컹하지 않은 데프니스가 그들 입맛에 맞습니다. 그렇지만 단점도 있죠. 일본서 원하는 토마토 크기는 130~210g인데, 여기에 맞추려면 수확량이 적습니다. 그래도 수출하는 처지니까 그들이 원하는 품종을 생산해야죠. 다만 우리는 상품으로 승부하자, 남들이 2000원 받을 때 우린 2200원 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강 사장의 이런 뚝심이 수출탑을 수상한 비결이었다.

◇파프리카 농사 15년, 토마토는 2년 차 농부 = 그런데 토마토 농사는 언제부터 시작했을까? 내공이 깊은 만큼 경력도 많을 듯했다. 강 사장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제 원래 전공은 파프리카입니다. 토마토는 작년 처음 심었습니다. 사실 이 시설하우스도 파프리카를 심으려고 했는데 설치 작업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파프리카 심을 시기를 놓쳐버려 토마토를 하게 됐습니다."

참 황당했다. 파프리카 대신 토마토를 심어 작년 순수익 1억 8000만 원을 올렸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강 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해가 됐다.

"아버지는 직장생활을 하시고 어머니가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당시 진주에서 공고를 졸업한 저는 삼성조선소에 다녔는데 내 적성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과감히 접고 어머니가 하시는 오이 농사를 거들게 됐죠." 그때가 1983∼84년이었다.

강 사장은 시설하우스에서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오이는 물론 바나나 피망 고추 등도 심었다. "86년 제 농사로 금산에서 바나나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1800평에 1년 농사를 지었는데 바나나 수입개방조치가 내려지더군요. 시설은 지어놓았는데 바나나 농사는 경쟁이 안 돼 지을 수 없고, 결국 피망하고 고추농사를 하게 됐습니다. 그나마 1년 지은 바나나를 판매했더니 1억 원이란 돈이 되더군요. 그래서 자본은 회수한 셈이었죠."

결국 바나나 수입개방으로 강 사장이 지금 토마토 농사까지 짓는 계기가 된 셈이었다. 그러다가 2000년 진주 금산면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시작했다. 그게 벌써 15년 전 일이다.

◇거액 들인 첨단시설 하우스에서 새로운 도전 = 강 사장이 현재 토마토 하우스를 짓는데 거금이 들어갔다. 초기 비용이 다소 많이 들었지만 농사라는 게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야 하는 일인 만큼 제대로 시설을 갖춰야 한다는 강 사장의 지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품질개선사업으로 정부 융자를 받았습니다. 3500평에 8억 5000만 원 정도 됩니다. 또 냉난방으로 지열을 이용하는데 16억 1800만 원(자부담 20%)이 들어갔습니다. 이 밖에도 땅 매입비가 별도로 들어갔죠."

강 사장은 농사를 지으면서 실패라는 말을 안 썼다고 했다. 한두 해 농사지을 것도 아닌데 한 해 실패했다고 농사를 망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소 선정 때에도 무조건 땅값이 싼 곳을 고르기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을 보고 판단한단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남들은 돈은 생각하지 않고 참 편한 소릴 한다고 하죠. 하지만 나도 남들처럼 고민이 많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농사로는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려 합니다."

강 사장의 이런 생각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짓는 아들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올해 한국농수산대학을 졸업한 작은아들(23)이 아버지의 일을 잇겠다고 농사일에 뛰어들었다. 작은아들은 지금 아버지가 15년 동안 일군 2400평 금산면 파프리카 농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남들이 뭐라 말해도 농업은 한 번 해볼 만한 사업이라 생각합니다. 보람 있고, 성취감도 큽니다.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지 잘 모르겠지만 아들이 뒤를 받쳐주니 든든합니다. 세월이 좀 더 흐르고 힘이 부치면 그땐 체험농장을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파프리카나 토마토 등을 분에 심어 체험을 하러 온 아이들에게 나눠주면 그 또한 우리 농업을 알리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남들과 다른 강 사장의 뚝심에 벌써 그의 성공이 가까이 다가왔음이 느껴졌다.

<추천 이유>

◇경상남도농업기술원 지원기획과 석정태 지도관 = 강동규 대표는 소비자가 원하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위해 지식을 공유하는 지역의 핵심지도자입니다. 파프리카 2400평, 수출용 토마토 3500평을 재배하면서 수출중심으로 공격적인 유통마케팅을 해 소득창출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첨단시설하우스를 설치해 복합환경제어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작물 특성에 맞는 환경관리와 일조 조건을 개선해 품질 좋은 토마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일본 수출과 대형매장 납품, 도매시장 판매 등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성실한 일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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