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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물에 잠겼던 들판…부농 꿈꾸는 곳으로

[남강 오백리] (21) 진주시 집현면 덕오교 ~ 대곡면 대곡리

권영란 기자 kyr65@idomin.com 2015년 03월 27일 금요일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샛강이 남강과 만나고 있다. 진주시 집현면 덕오교에서 1013번 도로를 따라 대곡면 대곡리에 이르기까지는 지내천, 향양천, 대곡천, 반대편으로 진성천, 대필천 등이 남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몇 차례의 경지정리와 하천유역 공사로 너른 들은 홍수 재해를 막기 위해 높고 긴 제방을 두르고 있다. 들에서는 강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바둑판처럼 곧게 질러놓은 길들 사이를 헤매며 강둑에 올라서야 비로소 강 하류에서 볼 수 있는 모래톱과 웃자라는 물버들 습지 풍경이 눈 안에 들어온다. 진주 도심을 빠져나온다 싶은 이번 구간에서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하는가를 슬쩍 엿볼 수 있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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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면 월아리 들판과 남강

1013번 도로를 타고 덕오교를 지나고 월아교에 닿으면 오른쪽 강변 유역에는 너른 들이 펼쳐진다. 마을 이름을 따 월아들, 단목들, 송곡들이라고도 하지만 통틀어 단목들이라고 한다. 들에서 흙을 밟을 수가 없다. 농로는 시멘트로 포장했고 햇볕에 눈이 아리도록 반짝이는 것은 죄다 비닐하우스이다. 1969년 남강댐이 완공되면서부터 이곳 일대 하천유역은 확 달라졌다.

북쪽 골짜기 안쪽에서 향양천이 흘러 들판 가장자리를 따라 남강으로 이어진다. 향양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향양제는 1968년 축조된 둑이다. 이 둑을 쌓기 전에는 홍수 피해가 잦았다. 주민들은 떠내려가는 농작물이나 나무를 건지기 위해 헤엄을 쳐서 들어가기도 했다.

김종훈(42·진주시 신안동) 씨는 이곳 대곡면 월아리가 고향이다. 김 씨는 남강에 얽힌 고향의 추억이 제법 많다며 하나씩 풀어내었다.

"모심기를 도와주기 위해 남강 둑 근처에 있는 논에 갔다가 누나들과 함께 남강에 나가 재첩을 잡기도 하고 백사장에서 축구를 하기도 했지요. 1983년인가, 세계 U-20 청소년 축구대회 8강전이 있었는데 그때 형이 가져갔던 라디오로 우리나라가 우루과이전에서 이기자 온 백사장을 뛰어다니며 소리치고 그랬던 일도 있네요."

단목삼거리 지금은 폐교가 된 단목초등학교 터가 있다. 1948년 대곡초등학교 단목분교장으로 개교될 때만 해도 현재 1013번 도로 오른쪽으로는 전부 백사장과 강이었다고 한다. 남강댐 이후 경지정리가 되면서 의령군으로 이어지는 1013번 도로가 닦이고 강변 유역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으로 개간됐다. 단목초 교가를 보면 '저 멀리 지리산에 흰 구름 돌고, 감돌아 굽이치는 남강기슭에 , 산정기 수정기의 기상을 받아, 나날이 피어나는 우리 단목교…'로 이어지고 있다.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는 남강이 자연스레 담겨 있다.

김 씨는 "도로 하나를 두고 왼쪽은 학교이고 오른쪽은 들판이라, 어른들은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전교조회 때 시상식을 하고 단체로 글을 읽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다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강 건너 금산면에서 시작된 비닐하우스 농사는 이곳 월아·단목리로, 그리고 대곡들로 이어져 당시로서는 쉽게 볼 수 없고 먹기 힘든 귀한 과일들을 맛볼 수 있었던 곳도 이곳 단목들이었다. 당시 바나나, 파인애플 등 특화작물을 하우스에서 한창 재배할 무렵이었다.

침수 예방을 위한 제방은 수십 년 전보다 더 높아지고 더 단단해졌다. 강바람과 흙먼지 속에 다녀야 했던 둑길은 이제 농로겸용 자전거도로로 닦이고 둑길 곳곳에 자전거 거치대와 쉼터가 마련돼 있다.

마진 한실로 이어지는 제방에는 농로겸용 자전거도로가 닦여 있다.

단목들은 비닐하우스로 꽉 차고

단목 삼거리 주변에는 수천 평에 이르는 숲이 있었다 한다. 1921년 진주∼의령간 지방도가 개통되면서 숲이 두 개로 분할되자 주민들은 안숲, 바깥숲이라 불렀다. 단목초등학교가 설립되면서 안숲은 사라졌고, 바깥 숲은 1969년 경지정리로 인해 농지로 편입됐다. 지금의 비닐하우스 들판을 보면 숲이 있었던가 짐작하기 어렵다.

박숙희(53·진주시 하대동) 씨는 단목들에서 2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고 있다. 매일 아침 자동차로 15분 정도 거리의 이곳으로 출근한다.

"이 일대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대곡면이 아니라 금산면 가방리 일대입니다. 당시는 비닐이 없으니까 동백기름을 먹인 종이를 사용했다더라고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나무로 이어 삽으로 흙을 파서 하우스를 지었다네요. 개천예술제면 금산면에서 비닐하우스 변천사를 가장행렬에서 보여줍니다. 1980년대까지는 수박 멜론 등을 많이 심었지요. 댐이 생기기 전에는 이곳 모래땅을 밭으로 일궈 고구마 등을 심었다더라고요."

박 씨는 진주시 진성면 온수리가 친정이다. 그리고 시집와 30년 동안 농사를 짓는데 최근에는 이 일대가 전부 고소득 작물인 시설하우스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요즘은 우리 집만 해도 딸기, 애호박을 주력 재배하는데 수확한 것은 초전 공판장으로 바로 가져가면 됩니다."

단목들은 남강댐 완공을 앞두고 1968년 강을 따라 길이 약 2600m 제방 축조를 하면서 생긴 들이다. 단목들 제방에서 쑥을 캐는 아지매를 만났다. 문산띠(75)는 이곳에서 살다가 지금은 진주시 초전동 아들네에서 살고 있다며 1960년대 초 시집왔을 때를 기억한다.

"내가 시집오기 전에 여게 사격장이 있었다카더라.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일하다가도 기겁을 하고 숨었다쿠네."

비닐하우스로 꽉 찬 단목들.

1953년에 사천공군부대 파견대가 주둔하여 단목들 남강하천부지를 중심에 두고 사격장을 설치했다. 매일 비행사격으로 농사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이고 도로를 드나드는 모든 차량을 통제해 출입마저 자유롭지가 못했던 것이다. 1956년 사격장은 이전했다.

"비가 50㎜만 와도 온 들이 다 잠겨버렸어예. 보릿고개 넘기고 수확 좀 하려면 잠기고… 그러니 어데 먹고살만한 집이 있겄어예. 제방 쌓고 경지정리 하면서 고마 비닐하우스단지가 들어서기 시작했제."

진주교도소, 1989년 대곡면으로 이전

단목들과 송곡들을 차례로 지나면 1013번 도로는 남강과 멀어진다. 야산들이 버티고 있고 그 뒤로 대곡면이 이어진다. 월아리 단목리 사람들이 대곡장으로 가는 길은 장터고개를 넘어야 했다. 장터고개는 낮에도 지나기 무서울 정도로 어둡고 습해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 장터고개를 넘고 유곡삼거리가 나오면 이내 대곡면 소재지이다. 이곳은 북동으로는 의령군으로, 남동으로는 진성 마산으로 가는 나들목이라 그런지 제법 번화하다.

"비닐하우스 농가가 많아서 예전에는 다방, 식당도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지예."

대곡면 사무소에서 의령군 화정면으로 이어지는 1013번 도로를 따라가면 진주교도소가 나온다. 1908년 진주감옥관으로부터 출발한 진주교도소는 1915년 2월 현 상봉한주아파트 위치에 청사를 신축·이전했다. 1946년에는 진주형무소, 1961년 12월 23일에 진주교도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리고 1989년 현 소재지인 진주시 대곡면 광석리로 청사를 신축·이전했다.

"진주교도소는 일제 때부터 시내 있으면서 진주형무소라 했는데 시설이 안 좋아 재소자들이 치를 떨던 곳이었다더만 진주 시내 한가운데 그대로 두기에는 그랬지요."

눈으로부터 멀어지니 사람들은 진주교도소가 어디에 있는지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런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이 한창일 때였다. 양심수 석방과 수배 해제를 위한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국 순례단이 진주에 도착했고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요구하며 시민 걷기행사가 있었다.

"그때 대곡교도소에 양심수가 몇 명 있었거든요. 그래서 양심수석방 행렬이 진주에 왔을 때 300여 명이 진주시청에서 대곡교도소까지 왕복 걷기를 하는데 마침 여름이었던 기라요. 금산교에 이르러서는 강둑을 따라 가다가 단목 지나 장터고개를 오르는데 어찌나 힘이 들던지…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어요. 멀기도 참 멀더라고요."

당시 순례행렬에 참여했던 신영희(47·진주시 가좌동) 씨의 기억이다. 그해 양심수 석방을 위한 행렬은 대곡교도소 정문에 도착해 집회를 하고 다시 걸어서 진주시청 앞으로 들어와야 했다. 얼추 왕복 20km 되는 거리였다.

이제야 돈이 되는 마 농사

대곡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난 1007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월강교에 닿는다. 달빛 어린 강, '달강'이다. 월강교는 대곡면과 진성면의 경계에 있는 다리다. 이 다리를 건너면 진성면 가진리로 진주시 반성면에서 흘러온 반성천이 이곳에서 남강과 합류한다. 가진리 가좌마을 제방에 서면 넓은 습지가 펼쳐진다.

하지만 남강 물길을 따라가려면 월강교를 건너지 않고 마진·한실로 이어지는 1040번 도로를 타고 가야 한다. 도로는 대곡마을에서 끝난다. 제방 둑길도 대곡마을까지 농로겸용 자전거도로로 이어졌다가 역시 막히는 곳이다.

제방으로 난 농로겸용 자전거도로를 따라 대곡마을 둑길 쉼터에 이르렀다. 들판에는 열댓 명의 사람들이 오후 새참을 먹고 있다. 대부분 머릿수건을 둘러쓴 아지매들이다.

대곡마을 모래땅 들판에서 만난 마 심는 아지매들. 잠시 새참을 먹고 있다.

"지금 심는 기 마 아입니꺼. 이거는 이리 모래땅에서 잘 자랍니더. 우엉도 마찬가지고. 우엉은 지금쯤 애기 손바닥처럼 싹이 나올끼고."

주우재(64·대곡마을) 아재는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지만 요즘처럼 시세가 좋은 때는 없다며 일하는 것도 신이 난다고 말한다.

"옛날부터 짓던 농사라예. 근데 몸에 좋다는 기 소문이 안 나서 모리더만 몇 년 전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하니 마, 우엉 불이 납니다. 땅속식물이라 약도 안 치고 좋다아입니꺼. 인자사 30년 농사 지은 거 보상받는 거 같네예."

마는 사질토양의 대표적 작물이다. 이곳 대곡리는 물론이고 지수면에서 재배한 마는 전국적으로 제법 알아줄 정도로 맛과 영양성분이 뛰어나다.

새참으로 인절미와 쑥부침개를 먹던 아지매들이 같이 먹자고 서로 손짓을 한다. 제방에 서서 남강을 보니 이미 봄빛이 밀려들고 있다. 멀리 강 건너는 지수면 압사리에서 용봉리로 이어지는 모래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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