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비춤]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촉발한 '무상복지 논쟁'은 잘 알려진 대로 무상이냐 유상이냐, 보편이냐 선별이냐는 대립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홍 지사는 여기에 '진보 좌파의 선동'이라는 식으로 이념 딱지를 붙여 진영 대결로 몰아갔지만, 사실 무상 대 유상, 보편 대 선별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복지 정책은 헌법적 기본권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을 기준으로 지금 당장 지켜야 할 항목이냐, 또 가장 시급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느냐, 그에 대한 동의 기반이 만들어져 있느냐 등 '적절성'을 중심으로 다루어야 하는데 현재 논쟁 구도는 괜한 감정적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가령 복지 선진국이라는 스웨덴의 경우 아동수당은 소득 하위 90%부터 지원을 시작한 바 있고, 호주 또한 소득 하위 70~80%를 포괄하는 준보편주의가 기본으로 알려져 있다. 경남을 포함한 대다수 지역에서 무난하게 돌아가고 있던 복지 시스템을 막무가내로 일방 후퇴시켜서 문제이지, 재정 능력 등 여건에 따라 복지 정책을 펴야 한다는 홍 지사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19일 경남도의회 제324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 상정된 '경남도 서민자녀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찬성 44명, 반대 7명(빨간색), 기권 4명(노란색)으로 가결됐다. 이날 새누리당 옥영문(거제1)·이상철(비례)·하선영(김해5)·황대열(고성2) 도의원 등 4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새누리당 소속인 최학범·박병영·박삼동·성경호 도의원은 기권했다. 이날 표결에서 새누리당 도의원 8명이 이탈했다. /김구연 기자 sajin@

무상이나 보편적 복지도 물론 나쁜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은 야권이 주도한 작품이지만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핵심 정책이다. 홍 지사 자신도 지난 10일 JTBC와 인터뷰에서 무상복지 자체는 좋은 것이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건 보수,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나도 340만 도민에게 전부 무상급식을 하고 싶다. 재정 능력이 된다면 복지는 얼마든지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

고령화와 조기 퇴직, 경제 불황 등 여파로 복지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가운데, 최근 복지 논쟁은 언젠가 터졌어도 터졌을 일이라는 시각이 많다. 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 역시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정부와 최대한 많은 지원을 받고자 하는 지자체 간 신경전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상태다. 해법은 없을까. 복지 전문가는 결국 '증세'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 정부가 제시한 비과세·감면 감축, 지하경제 양성화도 떠올릴 수 있지만 안착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등 쉽지 않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경제 성장에 의한 세수의 자연 증가를 기대할 수 없는 게 사실이라면 증세 등 조세구조 개편은 필연적"이라며 "증세의 물꼬를 터야 한다. 누진적 보편 증세면 좋겠지만 필요하다면 보수가 선호하는 소비세(부가가치세) 증세도 받아들여야 한다. 물꼬만 튼다면 이후 보편적 복지와 누진적 증세를 위한 사회적 조건은 보다 용이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답은 나와 있지만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 복지 확대를 강하게 주장하는 야권 역시 마찬가지다. 연말정산 논란 등에서 나타난 것처럼 외려 '세금 폭탄' '서민 증세' 운운하며 조세 저항을 부추겨왔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최근 <경향신문>에 쓴 칼럼에서 말뿐인 '복지 정책'을 넘어 사회적 힘을 결집하는 '복지 정치'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증세 없는 복지'를 빗대 '복지 없는 증세'론까지 내민다. 복지와 세금을 함께 사고하기는커녕 자신이 옹호해 이룬 복지 확대 성과마저 부정하는 꼴이다. 지금까지 야권과 시민사회는 정책으로 부자 증세를 선언해 왔을 뿐이다. 이제는 복지와 세금을 결합해 증세의 정당성을 확장하고, 복지를 누리게 된 중간 계층부터 누진 증세에 참여해 부자와 대기업을 압박하는 증세 정치가 요청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복지재정 분담 비율 현실화도 시급한 과제다. 한국은 광역과 기초단체가 전체의 50%가량을 책임지고 있으나 미국·일본 등 대다수 국가는 70~80%가 중앙정부 몫이다. 의외로 스웨덴이 우리나라와 구조가 비슷한데, 이는 복지 제도뿐 아니라 지자체 세금 징수권 보장 등 재정까지 분권화해 가능한 것이다.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시행 과정에서 특별히 재량권을 발휘하기 어려운 사업조차 지자체에 위임하고 재정적 책임을 함께 떠넘기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국민 기본권 보장의 성격을 갖는 복지 정책과 서비스의 경우 중앙정부가 재정적·행정적 책임을 적극 수용하고 이를 국가적 차원에서 관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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